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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 위한 결혼식 버렸더니… 하객과 울고웃는 축제 되더라

김효정 기자 soboru@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3-26 14:24

'후두둑 쏴아아!'

파릇파릇 새싹 돋은 두충나무 숲에 신춘(新春) 소나기가 벼락같이 쏟아졌다. 야외 결혼식 올리러 모여 있던 신랑·신부·혼주·하객들이 후닥닥 가까운 통나무집으로 뛰었다.

"나중에 기상청에 물어보니 그날 하루 천둥번개가 2만4000번 쳤대요. 하지만 낭패했단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때아닌 장대비마저 뜻밖의 이벤트 같았어요. 웃고 떠들고 난리 났지요."

작년 4월 30일 자연체험공간인 파주자연학교에서 결혼한 김연수(29·GS건설 직원)·하야시 히비키(林響·37)씨 부부 얘기다. 두 사람은 2005년 김씨가 일본 고베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할 때 사귀기 시작했다. 2009년 하야시씨가 한국 건축사무소에 취직했고, 지난해 6년 열애 끝에 부부가 됐다. 신랑 고향 마산, 신부 고향 고베에서 총 130명이 왔다. 파주자연학교를 택한 건 하야시씨였다.

"한국 결혼식 가보니 예식 시간이 너무 짧아 놀랐어요. 하객들이 먼 곳에서 오는데, 예식장에서는 그분들을 위해 뭔가 하려면 돈이 들었어요. 돈 들인 만큼 좋아 보이긴 하겠지만, 남는 게 있을까 싶더라고요. 보여주는 결혼식이 아니라 함께 즐기는 결혼식이 하고 싶었어요. 액수가 얼마든 추억 만들고 즐기기 위해 쓰는 건 좋지만 잠깐 화려하게 보이려고 쓰는 건 아까웠어요."

결혼식부터 신혼여행까지 총 1300만원 들었다. 우선 자연학교 빌리는 데 430만원 나갔다. 직접 키운 채소로 지은 식사가 포함된 가격이다. 하야시씨 어머니와 언니가 웨딩케이크를 직접 구웠다. 하야시씨에게 사찰음식을 가르친 한국 스승이 팔을 걷고 요리했다.

드레스·답례품·청첩장·부케·꽃장식 해결하는 데 총 220만원이 나갔다. 신랑·신부가 직접 청첩장을 그리고, 비무장지대 특산품 꿀을 사다가 작은 병에 나눠 담아 답례품을 준비했다. 신부가 친구 4명과 함께 밤새워 직접 부케를 만들었다. 하야시씨가 먼저 결혼한 일본 친구에게 물려받은 드레스를 입고, 평소처럼 손수 화장했다.

장대비에 쫓겨 실내에 들어온 뒤, 신랑·신부가 하객들 박수받으며 손잡고 입장했다. 신이 난 신랑이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성을 질러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신랑·신부가 연단에서 각자 준비한 서약문을 읽었다. 부모님께 감사 인사드릴 때 축가 부르는 친구들도 덩달아 목이 메 노래가 몇 번 끊길 뻔했다.

지난해 4월 경기도 파주 자연학교에서 결혼식을 올린 김연수(29), 하야시 히비키(37)씨 부부. 김씨가 신부 하야시씨와 동시 입장을 하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김연수씨 제공
피로연은 더 시끌벅적했다. 부부가 어린 시절 사진을 커다랗게 인쇄해서 들고 나왔다. 어려서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사진 속 악동 친구들이 어떻게 자라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얘기했다. 하야시씨가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찍은 사진을 번쩍 들고 "여기 찍힌 인물들이 이 자리에 다 와있다"고 소개하는 식이었다.

한국어와 일본어 통역으로 진행되던 결혼식이 나중에는 통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왁자지껄 어우러졌다. 한국어·일본어·영어로 곳곳에서 뒤죽박죽 인사가 오가고 웃음이 터졌다. 신랑 김씨는 "하객들이 흥이 나니 나중에는 신랑·신부가 잠깐 나갔다 와도 모르더라"고 했다. 한참 흥이 오른 친구들을 위해 인근 게스트하우스를 잡았다. 추가비용 150만원이 들었지만 아까운 줄 몰랐다. 처음엔 20명이 남겠다고 했는데 막판엔 30명이 춤추고 노래하며 밤을 새웠다. 오후 2시에 시작된 결혼식이 이튿날 새벽까지 축제처럼 계속됐다. 부부는 친구들 환송을 받으며 500만원 들여 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김연수·하야시씨 부부와 5개월 된 딸.
신랑 어머니 이신희(63)씨는 처음에 말렸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시골에서 농사지어 남매 키운 평범한 사람들입니더. 외아들이 예식장 아닌 데서 결혼식 하겠다니 난감하데예. '어르신들이 관광버스 빌려 타고 올라갈 텐데, 그분들 생각도 하라'고 했어예. 그란데 오신 분들이 입을 모아 '내 아들도 이렇게 결혼시키고 싶다'카니 자랑스럽지요. 내 아들 결혼식이지만 동화 같았어요."

부부와 절친한 김송수(25)씨는 "우리가 정말 두 사람 결혼의 증인이 됐다는 실감이 들었다"고 했다. 부부는 "요즘도 친구들 만나면 '너희들 결혼식 즐거웠다'는 인사를 받는다"고 했다. 비 오는 날 '그날 생각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예식장에서 하면 확실히 편하긴 하죠. 패키지로 쭉 가면 되니까. 한국 결혼식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면 오로지 혼자 힘으로 준비해야 하니 힘들었어요. 고생했지만 만족합니다. 비싼 데서 틀에 맞춰 결혼해도 이만큼 즐거웠을까요? 아닐 것 같아요." (김씨)

딸 하루(春)는 지금 생후 5개월이다. 부부는 "다시 태어나도 이번처럼 결혼식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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