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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낮 어린 여중생이… 지옥의 시간이었다”

임민혁 특파원 lmhcoo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6-11 09:49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사고 발생 직후 제일 먼저 내가 직접 나서 진심으로 사과할 것이다. 내 보스, 설령 국방부·백악관에서 말리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2002년 6월 13일 '여중생 미군 장갑차 희생사고' 발생 당시 주한미군 2사단장을 지낸 러셀 아너레이(Honore) 예비역 중장은 9일(현지시각)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한 호텔에서 본지와 만나 "한국 정서에서는 '설명'보다 '사죄'가 앞서야 한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가장 후회가 되는 부분이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아너레이 전 사단장은 한국을 떠난 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 당시 뉴올리언스에 설치된 합동 태스크포스 사령관을 지냈고, 현재는 뉴올리언스 인근에 거주하며 '재난전문가'로 강연과 방송활동을 하고 있다.

러셀 아너레이 예비역 미군 중장이 9일(현지시각) 미국 뉴올리언스의 한 호텔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뉴올리언스=임민혁 특파원

아너레이 전 사단장은 "딸을 잃은 부모들 심정에 비할 순 없겠지만 당시 우리가 '고의적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매도당하고, 도발(제2 연평해전)을 일으킨 북한보다 더 비난받는 것에 매우 큰 상처를 받았다"며 "하지만 미군이 수십년간 한국에 주둔하며 지켜온 '민주주의'가 잘 정착됐기 때문에 이런 목소리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효순·미선양이 장갑차에 치여 숨진 지 꼭 10년이 됐다.

"내 37년 군 생활 중 가장 큰 비극으로 각인돼 있다. 첫 보고를 받고 믿을 수 없었다. 전시(戰時)라면 항상 희생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비(非)전시에 군인도 아닌 민간인, 그것도 대낮에 어린 여중생들이라니…. 당시 월드컵에 훈련종료가 겹쳐 아주 들떴던 분위기가 '지옥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사고 발생 직후 공보장교에게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맡겼다.

"관행이었고, 상부에서도 사단장이 직접 나서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바로 나서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먼저 보였으면 사태가 그렇게 확산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 카트리나 사건 때는 내가 항상 직접 이재민들을 상대했다. 또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 나가는 장교들을 교육할 때도 '현지 문화를 습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대규모 시위로 확산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나.

"사고 발생 얼마 후 여중생들 부모를 만나 사과와 위로의 뜻을 전할 때 그들의 눈에서 깊은 슬픔을 볼 수 있었지만 '반미'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시위를 확산시킨 일부 정치인과 운동가들에게서 본 모습은 달랐다. 이 사건이 추모를 넘어 정치적 시위로 변질되고 반미세력의 주장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당시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인들에게선 어떤 말을 들었나.

"난 한국 정부, 지자체, 언론 등과 교류를 활발히 했고, 많은 '친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날 보호해주기를 원했던 게 아니라 '지금은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라도 해줬으면 큰 도움이 됐을 텐데…. 내 퇴임식 때도 거의 오지 않았다. 물론 민감한 사안이었고, 선거 국면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하는 부분이다."

―사고를 낸 미군이 모두 미군 법정에서 무죄를 받은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나.

"당시 시위대는 병사들을 한국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감정은 이해하지만 한미 간에 소파(SOFA)규정이 있는데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이 받은 판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당시 내가 그 병사들에게 '판결과 상관없이 앞으로 당신들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왜 한국서 반미감정이 생겼다고 보나.

"정말 누가 그 이유를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1971년에 위관급 장교로 처음 한국에 근무할 때는 어딜 가든 한국민들이 손을 흔들어주고 반겨줬다. 하지만 2사단장으로 재임할 때는 여중생 사고 전에도 특히 젊은이들에게서 차가운 시선을 느꼈다.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군복 입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잘 모른다. 많은 미군이 '우린 북한에 맞서 한국과 함께 싸우기 위해 왔을 뿐인데 왜 우리를 적대시하나'라는 고민을 했다."

―이 사건이 한미동맹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당시 사건이 확산되면서 한미동맹이 '긴장상태'까지 갔다고 본다. 외부 사람보다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면 더 큰 상처가 되듯이, 동맹 간에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한국을 떠난 후 여중생들 부모들과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었나.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지났어도 자식을 잃은 슬픔에 고통받고 있을 것이라는 걸 충분히 안다. 나도 딸 2명을 키운 입장에서 내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기회가 되면 그들에게 다시 한번 사죄를 하고 싶다."

―이 사건은 당신 삶을 어떻게 바꿨나.

"여중생 사건 전까지 난 정말 한국민과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병사들의 영어수업 봉사, 농촌 일손 돕기, 태권도 배우기 등을 통해 교류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의 모 지자체에서 날 초청했길래 이를 주한미군에 알렸더니 그쪽에서 '반미 시위대에 건수를 만들어줄 수 있으니 안 오시는 게 좋겠다'고 말해 비행기표를 돌려보냈다. 두 번 복무하면서 많은 애정을 기울였던 나라로부터 '기피 인물'이 된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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