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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는 아들 둔 죄

이기문 기자 rickymoo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7-04 14:22

그는 평생 자신이 안정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경기도 소도시에서 태어나 평생을 공무원으로 일하다 작년에 퇴직했다. 공무원 봉급으로 남매를 키우며 조그만 아파트(69.4㎡)를 마련하고 고향에도 소형 아파트를 한 채 사뒀다. 은퇴하면 친구들 만나 막걸리 한 잔씩 나누며 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주위 사람들에게 "혹시 경비원이나 청소 용역일 없느냐"며 일자리를 부탁하고 다닌다. 지난 1월 아들 결혼시킬 때 집값 대주느라 대출을 받은 뒤, 그 빚을 감당 못해 허덕이는 김성호(가명·60)씨 이야기다.

"요새는 결혼이, 자기가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시켜주는 것이더라고요. 아들이 결혼할 여자를 데려왔기에 나중에 조용히 '얼마 벌어놓았느냐'고 묻자 달랑 1000만원 있다고 합디다."

결혼 얘기가 본격적으로 오가면서, 김씨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는 결국 보험금을 담보로 5000만원을 대출받았다. 대출받은 돈에 퇴직금까지 탈탈 털어 1억원을 아들에게 건넸다. 그 돈으로 아들은 서울 변두리에 소형 아파트(43.0㎡)를 전세로 얻었다.

아들은 분가하고 아들이 남긴 빚은 김씨 곁에 남았다. 공무원 연금 말고는 딱히 수입이 없는 김씨에게 월 30만원 넘게 나오는 이자는 큰 고통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이자는 내가 낼 테니 장차 원금은 네가 갚아라"고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본인 앞가림하기도 바빠 못 갚을 테니, 결국 내가 갚게 되지 않겠는가'라고 각오하고 있다.

중앙부처 공무원이었던 그가 경비원 자리를 알아보기로 한 것은 아내가 노후생활에 불안해하는 모습이 안쓰럽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아들에게 집값을 대주긴 했지만, 요즘 세상에 그렇다고 아들에게 손 벌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김씨 주변의 상황도 비슷했다. 최근에 은퇴한 친구 두 명이 각각 택시기사와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둘 다 아들 장가보내고 살림이 어려워 눈높이를 대폭 낮춰 급하게 일자리를 구했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평생 샐러리맨으로 살다가 아들 집값으로 노후자금을 날린 중산·서민층 아버지들이 적지 않다"며 "이들 중 경비원이나 청소용역 같은 생계형 일자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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