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백야의 나라로 간다3

김해영 시인 haeyoung55@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09-10 09:27

칠쿳 트레일 만나러 가는 길

-    화이트호스에서 다이아 트레일 헤드까지

 7월 22일, 5시부터 일어나 아침을 먹고 간식까지 챙긴 후 짐을 꾸린다. 떠나기 전 매직펜으로 계단 턱에 “유콘 강과 더불어 흐른다, 오늘도... ."라는 문구와 넷의 이니셜을 남기고 사진 한 컷. 먼저 다녀간 한국 투숙객들이 부엌 대들보에 남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메모도 찰칵. 그리고 아듀스!
걸어서 십 분 거리에 있는 화이트패스&유콘 정류장으로 향한다. 거북이처럼 큰 등딱지를 멘 팀원의 얼굴에 발간 물이 들어있다. 미지의 땅을 향한 설레임일까? 불안감일까? 상기된 얼굴이 마치 신대륙을 찾아나서는 탐험가 같다. 버스에 오르니 일흔 살 가까운 운전기사가 따뜻한 웃음으로 맞는다. 여기 사람들은 다 햇볕 같은 웃음을 물고 산다.

8시 30분에 출발한 버스는 알라스카 하이웨이(북)에 살짝 들었다가 길을 바꿔 클론다이크 하이웨이(남)로 접어든다. 달음박질을 치며 따라오던 유콘 강이 호수처럼 잔잔해졌다가 다시 허연 이발을 드러내고 이리처럼 포악해진다. 그만큼 지형이 험악하겠지. 지금은 이리 순한 양처럼 보이는 이 신작로를 다듬기에 얼마나 노고가 많았을까? 겨울철엔 이 고갯길 넘어가기 힘들겠지.

별 오지랖 넓은 걱정을 다 하면서 카크로스(Carcross, 카리부떼가 지나다니는 길목이라서 붙여진 이름, 인구 120명.)에 닿는다.‘세계에서 가장 작은 사막’이라는데  사막 기척이 없다.







그러나 하이킹 마지막 날, 이 지역을 지나며 사막지대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정차해 있는 꼬마 기차와 오래된 목조선박 한 척이 돌아오지 않을 옛 손을 기다리고 있다. 15분 정차하는 동안 원주민 그림이 외벽에 그려진 커피숍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신다. 한 팀원이 “어학 연수를 온 한 한국처녀가 이 곳 총각과 결혼해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근무한다.”고 소식을 전한다.

인연이란 참 묘하다. 그녀는 끌리듯 이 백야의 나라에 왔을 테고, 또 그에게 자석처럼 끌렸겠지. 그녀를 만나보고 싶지만 그 또한 인연이 닿아야 가능한 일. 두 젊은이가 불볕 같은 사랑을 나누는 카크로스의 카리부 사인판을 뒤로 하고 떠난다.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의 풍경이 사뭇 달라져 작은 연못 같은 초록색 웅덩이와 나즈막한  언덕이 봉긋봉긋 솟은 곳에 버스가 멈춘다. 프레이저(Fraser, 캐나다 BC주)란다. 바람이 제법 불고 있는 호수에 노란 카약이 내려지고 헛둘헛둘 고함소리 가득하다. 프레이저를 지나자 버스는 고바위를 힘들게 오른다. 






드디어 화이트패스를 넘나보다 싶은데 갑자기 회색 운무가 휘감는다. 은발의 기사는 염려 한 가닥도 없이 맨 앞자리에 앉은 아내와 잡담을 나누며 거북이 운전을 한다. 안개 알갱이가 점점 알사탕처럼 굵어진다. 첫 날부터 비를 만나다니. 눅눅한 땅에 텐트치고 밥 해 먹을 생각에 심란해진다.

하지만 하느님 하시는 일을 어찌 막누? 12시에 닿지 못해도, 비가 와서 잠자리가 눅눅해도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길이 없지. 큰 숨 한 번 쉬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서밋(바람 몹시 치는 서밋에 돌탑 필드가 있다.)을 지나며 오른편에 로그 캐빈, 칠쿳 트레일 입구 등의 팻말이 지나간다.

긴 굽이길을 내려가며 날씨는 다시 화창해지고 건너편 산턱에 굼실굼실 화이트패스 기찻길이 보인다. 저걸 놓느라고 수천 마리의 말이, 수백 명의 사람이 희생되었다지. 골짜기를 맴돌고 있을 그들의 넋을 위로하는 사이 버스는 기이한 모양의 다리를 통과하고 있다. 세계에서 3개(프랑스, 페루, 클론다이크 하이웨이)밖에 없다는 이 다리는 한 축만 땅에 고정을 시키고 맞은편은 6 개의 대형 케이블로 이은 세모꼴 다리. 지진에도 끄떡없다고.

다행히 예정대로 11시에 스케그웨이 도착, 가슴을 쓸어 내린다. 정류장 다음 블록에 있는 트레일 센터에 들러 허가증을 받고 20분 간 오리엔테이션. 트레일 상황과 한 주간의 기후, 린드맨 호수에 흑곰이 나타났다는 소식 등. 그러다 듣는 중요한 새 소식. 캐나다 국립공원 쪽 아웃하우스에는 휴지가 없다!

그  깊은 록키 산중에도 휴지가 있었는데 웬일?. “미국 아웃하우스는 디스포잘 식(썩히는 방식)이고, 캐나다 쪽은 모든 오물을 헬기로 실어내가기 때문에.”라는 레인저의 설명을 듣고도 이해가 안 된다.

에이, 이건 국제 창피다. 어쨋든 사흘치 휴지를  챙겨야 하는 상황. 준비물 리스트에 없었는데도 세 명은 휴지까지 준비, 나머지 1 명을 위해 호텔 화장실에서 휴지 한 두루마리를 훔친다. 전원 생필품 완비!

이십여 분 남은 시간 동안 주먹밥을 먹고 트레일 헤드로 가는 셔틀버스를 타러 그랜드 호텔로 간다. 하얗게 바랜 통나무 건물(사적지)의 인포메이션 센터를 지나 셔틀버스를 탄다. 명랑 쾌활한 총각이 우리 넷과 패들링 가는 부부 한 쌍을 태우고 스케그웨이 시내 투어 10 분, 그리고 클론다이크 하이웨이를 밟다가 다이아 로드로 들어선다. 







골드러시 지역이어서일까? 이름이 스머글러 코브(Smugglers Cove, 밀수꾼 포구)인 긴 물길에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나 있다. 그 끝 난구 베이(Nangu Bay)에 좌초된 배가 세월의 이끼를 입고 누워있다.

더운 바람 훅훅 끼치는 구불구불한 산길 나란히 하얀 거품 문 강이 달음박질치고, 맞은편 산은 큰 뭉게구름 같은 빙하를 이고서 부채질을 해준다. 다이아 로드 12km 지점에서 타이야 강(Taiya River)을 건너는 다리 앞에 승합차가 멈춘다. 또 볼거리 하나 있나보지. 싶어 꾸물럭거리는데 “여기가 칠쿳 트레일 헤드.”란다. 어디어디? 거창한 게시판도, 웰컴 사인도 없다. 그저 차 두어 대 세울 만한 곁길 뿐.
청년의 손가락 끝을 따라 보니 작은 숲길이 있고 그 앞에 낡은 나무 팻말 하나 서있다.  







명성치고는 참 소박하다. 하기야 칠쿳 트레일에 입장하면서 레트 카펫을 밟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으니 살아서 칠쿳 트레일 입구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러운 일 아닌가? 배낭을 추켜 메고 그 조촐한 표지 앞에 서서 막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시작되는 모기떼의 습격!

* 노스 익스플로러팀 경로 : 밴쿠버-화이트호스–스케그웨이-다이아-칠쿳 트레일-스케그웨이-주노-앵커리지였으나

다른 선택: 밴쿠버–주노–스케그웨이–다이아-칠쿳 트레일-화이트호스-앵커리지의 경로도 좋다.
*트레일 센터에 전원이 예약날짜 12시까지 가서 허가증을 수령하고, 오리엔테이션을 받아야 함.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    캐년 시티에서 쉽 캠프까지 잘 자고 일어났다. 평정심 덕분일 줄 알았더니 모기 램프 덕분인 듯. 둘러 메지도 못할 만큼 짐을 많이 꾸려 걱정스럽던 팀원의 배낭에서 나온 램프가 텐트 앞에 놓여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조금 불편해도 묵묵히 따라주는 팀원들과의 남은 일정이 훈훈할 듯.  7월 23일, 트레일 이틀째 아침은 흐릿하다. 기상예보는 하루...
김해영 시인
-트레일 헤드에서 캐년 시티 캠프장까지여름산에서 모기와 블랙플라이, 덩치 큰 호스플라이까지 가세를 한 모기 군단을 만나면 당해낼 장사가 없다. 오죽하면 화이트 패스를 넘던 말들이 모기에게 물려 수 천 마리 떼죽음을 당한 후 칠쿳 트레일로 경로를 바꾸었을까? 오늘 아침 클론다이크 하이웨이를 올 때 들여다 본 데드호스 밸리(Dead Horse Valley)가 떠오른다. 그러나 칠쿳...
김해영 시인
-    화이트호스에서 다이아 트레일 헤드까지 7월 22일, 5시부터 일어나 아침을 먹고 간식까지 챙긴 후 짐을 꾸린다. 떠나기 전 매직펜으로 계단 턱에 “유콘 강과 더불어 흐른다, 오늘도... ."라는 문구와 넷의 이니셜을 남기고 사진 한 컷. 먼저 다녀간 한국 투숙객들이 부엌 대들보에 남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메모도 찰칵. 그리고 아듀스! 걸어서 십 분...
김해영 시인
  비씨 주에서 고개를 들면 올려다 보일 것 같은 유콘 테리토리 수도, 화이트호스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9시 30분. 전에는 오로라를 보러 겨울에 왔는데, 오늘은 백야의 여름밤을 만난다. 예나 지금이나 화이트호스는 환하고 밝다. 사람보다 야생동물이 더 많다는 유콘답게 몇 안 되는 사람끼리 서로 눈 맞추며 발걸음 나란히 공항을 빠져 나간다. 초를 다투는 미래의...
김해영 시인
 칠쿳 트레일(Chilkoot Trail),그 군둥내 나는 이름을 들은 지 7년만에 ‘노스 익스플로러(The North Explorer)’팀을 꾸려 백야의 나라로 향한다. 2005년 웨스트 코스트 트레일 노상에서‘칠쿳’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 이름이 고리타분해서 마치 선사시대 유적지같았다. 파보면 보물이 나올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쏠렸으나 선뜻 나설 수 없었던 건 유콘과 미국 알라스카에 걸쳐있어 ‘너무나 먼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그후 그리 오래 묵혔으니...
김해영 시인
현재 밴쿠버에는 몇 개의 한국어 학교가 주말(토요일)에 운영된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학교/직장에 다니다가 토요일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와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정오쯤 귀가를 한다. 학생과 부모 똑같이 힘들다. 왜 그럴까? http://careers-in-business.com/hr.htmhttp://careers-in-business.com/hr.htm우물우물 한국말 잘 하는 애들인데 느긋한 주말을 즐기지도 못하게 이리 성화를 부릴까? 한국어를 학교까지 가서 굳이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을까? 있다. 한국인인 이상...
김해영 시인
출퇴근길에 늘 눈길을 끄는 곳이 있다. 삭막한 네모 건물 사이에 팔각정 같은 학교 건물, 훌쩍 넓은 운동장 가 정글짐에 풍선처럼 매달린 어린아이들, 그리고 그들이 뿜어내는 초록 웃음… .성 프란시스 재이비어 학교(St. Francis Xavier, 밴쿠버 이스트 1번가에 자리한 Mandarin Immersion School)를 지나칠 때마다 부럽다 못해 심통이 났다. 왜 중국어 이머전 스쿨은 있는데 한국어 이머전 스쿨은 없지? 중국 아이들은 잘 닦인 신작로를 달리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만...
김해영 시인
남의 나라에서 사는 어려움 중 가장 큰 게 말 못하는 서러움일 것이다. 들어도 못 듣고 알아듣고도 선뜻 맞춤한 대답을 못해 속상하기 짝이 없다. 남의 나라이지만 내 나라처럼 활개치고 사는 방법이 있을까? 있다. 내가 영어를 배워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이다. 이 나이에? 아무리 잘 해도 폼나게 영어로 말하다가 꼭 어느 대목에선 “What?” 소리 듣는데? 저나 나나 똑같이 발음하는 것 같은데 악센트 하나 틀려 못 알아들으면 분통 터진다.그러니 영어...
김해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