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머니는 전쟁 통에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다. 열일곱 살 때 시집가서 막노동하는 남편과 6남매를 키웠다. 우리 나이 일흔에 동네
복지관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갸거겨' 외우느라 입술이 터지고 코 밑이 헐었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 받은 날
할머니는 문방구에서 공책을 사서 시(詩)를 쓰기 시작했다. 저녁상 치운 뒤 지난날을 떠올리며 하루 한 편씩 썼다.
지난 8월 31일 그동안 쓴 시 69편을 묶어서 '치자꽃 향기'(아이테르)를 펴낸 진효임(71) 할머니는 "아이고, 나는 못 배운 사람이라 긴 글을 못 써서 시를 썼을 뿐이여!" 했다.
" 손녀가 버린 앉은뱅이 책상이 칠십 평생 처음 가져본 '내 책상'이었어요. 긴 세월 살면서 마음속에 기억이 쌓였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몰랐는데, 짤막짤막하게 쓰다보니 어느 순간 '아, 이것이구나' 싶어.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이 많지요. 그래도 차분하게 참아내면 다 살아져요. 산을 올라간다고 오르막만 있는 게 아니야. 숨찰 때 꾹 참고 견디면 다음 순간 평지(平地)가 툭 트이거든요."
할머니의 시의 '단골 소재'는 50년 넘게 한 이불 덮고 잔 남편 박만득(80) 할아버지다.
'우리 영감은/텔레비 리모컨을 안고 잡니다/젊었을 적 나한테도 그렇게는 안 했습니다 ―영감은 텔레비만 좋아해'(29쪽)
'영감이 또/발을 내놔봐라 합니다/영감이 덥석 내 발목을 잡습니다/발바닥에 달라붙은 해묵은 각질들이/뱀허물처럼 벗겨지면/나는/살살 하라니까, 인정머리 없는 영감!/발버둥을 칩니다 ―못생긴 내 발'(33~34쪽)
부부는 전북 남원에서 소를 키우다 1983~1984년 소값 파동 때 빈털터리가 됐다. 6남매 데리고 올라와 서울 양평동 달동네에 오래 살았다.
지난 8월 31일 그동안 쓴 시 69편을 묶어서 '치자꽃 향기'(아이테르)를 펴낸 진효임(71) 할머니는 "아이고, 나는 못 배운 사람이라 긴 글을 못 써서 시를 썼을 뿐이여!" 했다.
" 손녀가 버린 앉은뱅이 책상이 칠십 평생 처음 가져본 '내 책상'이었어요. 긴 세월 살면서 마음속에 기억이 쌓였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몰랐는데, 짤막짤막하게 쓰다보니 어느 순간 '아, 이것이구나' 싶어.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이 많지요. 그래도 차분하게 참아내면 다 살아져요. 산을 올라간다고 오르막만 있는 게 아니야. 숨찰 때 꾹 참고 견디면 다음 순간 평지(平地)가 툭 트이거든요."
할머니의 시의 '단골 소재'는 50년 넘게 한 이불 덮고 잔 남편 박만득(80) 할아버지다.
'우리 영감은/텔레비 리모컨을 안고 잡니다/젊었을 적 나한테도 그렇게는 안 했습니다 ―영감은 텔레비만 좋아해'(29쪽)
'영감이 또/발을 내놔봐라 합니다/영감이 덥석 내 발목을 잡습니다/발바닥에 달라붙은 해묵은 각질들이/뱀허물처럼 벗겨지면/나는/살살 하라니까, 인정머리 없는 영감!/발버둥을 칩니다 ―못생긴 내 발'(33~34쪽)
부부는 전북 남원에서 소를 키우다 1983~1984년 소값 파동 때 빈털터리가 됐다. 6남매 데리고 올라와 서울 양평동 달동네에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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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시집 ‘치자꽃 향기’를 쓴 진효임 할머니가 경기도 고양시 자택에서 자신의 시집과 그동안 쓴 습작 노트를 들고 활짝 웃었다. 할머니는 우리 나이 일흔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지난 8월 시집을 펴냈다.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com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209/25/2012092500127_1.jpg)
어렵사리 키운 아이들이 교사도 되고 회사원도 되고 출판사도 차렸다. 부부는 지금 경기도 고양시 조그만 아파트(66㎡)에서 결혼 안 한 셋째딸 박채정(42)씨와 산다. 금쪽 같은 딸이지만 얄미울 때도 있다. '"잡곡 취사를 시작합니다"/손가락만 누르면 알아서 척척척/딸보다 내 맘 더 잘 아는 똑똑한 전기밥솥 ―말하는 밥솥'(24쪽)
진 할머니는 "아예 까막눈은 아니었지만 살림하다 보니 내 이름 석 자도 가물가물했다"면서 "애들 학교에 가보고 싶어도 서류 쓰라고 할까봐 겁나 한 번도 못 갔다"고 했다. 한글 공부 시작하니까 주위에서 "그 나이에 공부는 해서 무엇 하느냐"고 했다. 할머니는 "살아 있을 때 하나라도 배우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했다.
할머니는 젊었을 때 '깜깜할 때 일어나 절구질하면/여름에는 쌀 한 줌 없는 보리밥/겨울에는 보리 한 줌 없는 무밥'을 얻어먹으며 호되게 시집살이를 했다. 그런 시어머니가 7년간 치매로 고생하다 2005년 95세로 별세했다.
' 대소변도 못 가리시면서 기저귀를 마다하시던 시어머니/꼼짝없이 붙잡힌 나는/옛날에 한 시집살이가 모두 생각났는데/시어머니가 나를 보고/엄니, 엄니 제가 미안허요, 용서해주시요 잉/공대를 하는 걸 보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우리 시어머니 시집살이도/나만큼이나 매웠나 봅니다. ―치매 걸린 시어머니'(107쪽)
지난해 일본에서는 시바타 도요(101) 할머니의 시집 '약해지지 마'가 100만부를 돌파했다. '나 말야,/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주면/마음 속에 저금 해 놓고 있어/외로워질 때 그걸 꺼내 힘을 내는 거야/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봐/연금보다 나을 테니까 ―저금'
시바타 할머니도 재봉 일 등을 하며 고생하고 살았다. 환갑 넘은 외아들(아마추어 시인)의 권유로 92세 때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 때 이 책을 냈다. 자비(自費)로 출판한 책이 일본 출판계를 뒤흔든 밀리언셀러가 됐다.
진 할머니는 "시바타 할머니 시를 읽고 '나도 그 연세에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감탄했다"면서 "나는 그저 나처럼 못 배운 사람들한테 용기를 내라고 시집을 냈다"고 했다. 진 할머니의 목표는 여든까지 시집을 세 권 내는 것이다.
일 제 강점기 때 초등학교만 졸업한 박 할아버지는 신문기자가 부인을 인터뷰하러 왔다는 말에 좋아서 어쩔줄 몰랐다. "마누라가 책 내서 좋으냐고? 좋지, 너무 좋지. 사랑한다는 말 해봤냐고? 평생 한 번도 안 해봤어. 그런 말을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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