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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아프지만 국민은 알아야 합니다”

이인열 기자 yiyu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0-10 15:47

"의정부에서 왔습니다. 29년간 간직해온 겁니다.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라고 생각해 아무 대가 없이, 아무 사심 없이 드립니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 편집국으로 파란 점퍼 차림의 70대 남성이 찾아왔다. 한 손에 하얀색 봉투가 들려 있었다. 김상영(金相榮·70)씨. 그는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당시 문화공보부 보도국 사진과 소속으로 현장에 있었다.

그는 이날 본지에 테러 당시의 처참했던 현장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컬러 사진 10여장을 기탁했다. 김씨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국민을 또 아프게 하지 말라'며 사진 공개를 금지해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보관해왔다"면서 "오늘 아침 신문에 아웅산에 희생자들의 추모비를 건립하고 국민 모금 운동도 한다고 해서 이 사진들이 모금 운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갖고 왔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진이 공개되면 유족은 또 한 번 기겁하고, 나는 공개하지 말라는 약속을 어기는 못난이가 될지 모른다"면서 "하지만 북한의 테러 실상 증거를 기록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다 숨져간 이들을 추모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도리이고, 대한민국의 존재 가치라는 생각에 기탁한다"고 말했다.

(위 사진)29년 전인 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양곤의 아웅산 묘소에 도착한 우리 측 각료와 수행원들이 북한의 폭탄 테러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이들을 청와대 경호원들과 미얀마 주재 대사관 직원들이 달려가 일으키고 있다. 아래 사진은 폭탄 테러 직전 모습. 아래 사진 현장이 위 사진 현장으로 처참하게 변한 것이다. 본지는 처참한 장면이지만 당시 상황을 증언하기 위해 이 사진을 흑백으로 처리해 공개하기로 했다. /김상영씨 제공
아웅산 테러 직후 현장에서 유일한 사진을 찍은 김씨는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수술 세 번 끝에 납탄 6개를 몸에서 제거했고, 그 후유증으로 왼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토록 급박했던 상황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러 역사를 기록했고, 이후 29년간 서랍 속에 넣어 보관해왔던 사진들을 본지에 이날 전달한 것이다. 김씨로부터 1시간 30여분 동안 당시 테러 현장의 급박했던 상황과 그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고 보관하게 된 과정, 또 이 사진을 본지에 기탁하게 된 이유 등을 들어 다시 정리했다.

1983년 10월 9일 아침. 미얀마 수도 양곤의 한 호텔에는 이범석 당시 외무부 장관, 김재익 청와대 수석 등이 모였다. 아침 식사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식사라고 나온 건 까맣게 타버린 토스트 몇 조각과 바나나뿐이었다.

아웅산 폭발 직후… 쓰러지며 셔터 눌러 - 29년 전, 아웅산 테러 현장에서 폭탄이 터지던 당시 김상영씨가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러 찍은 사진이다. 김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서 촬영한 사진이라 초점이 흔들려 있다. /김상영씨 제공
“아수라장이었어요. 눈앞에 장관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순간 ‘이거 정말 큰일이구나. 엄청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에서 ‘악’ 하는 비명, 울음소리…. 살이 타는 냄새가 그렇게 역겨울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카메라를 들고 마구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죠. 36장짜리 필름 한 통을 다 썼던 것 같아요.”

그렇게 찍은 초점 잃은 사진 한 장은 그가 갖고 온 사진 10여장 속에 있었다. 또 사진 중에는 신문에 실을 수 없는 불타고 있는 시신과 피투성이가 된 사망자와 부상자들의 아비규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김씨는 이후 다시 정신을 잃었다가 깨 보니 이번엔 천막 “이거라도 먹어야 우리가 삽니다.”

이 장관은 일행에게 바나나 조각을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후 차를 타고 아웅산 묘소로 갔고, 그 자리에서 이들은 북한이 저지른 폭탄 테러에 삶을 마감했다.

“대통령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에 도열해서 기다리는데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고막을 찢을 듯이 컸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죠.”

부상당한 한국 기자 - 29년 만에 공개되는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현장. 피 흘리며 쓰러진 당시 연합통신 최금영(2003년 작고) 사진기자를 미얀마 경찰 두 명이 일으켜 세우고 있다. /김상영씨 제공
정신을 잃었다가 깨고 보니 김씨 얼굴은 피범벅이었다(그의 미간에 파편이 박혀 있었다).

아래였다. 야전병원이었던 셈이다. 교민들이 소독약 대신 물로 상처를 씻어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허리춤을 더듬었다. 카메라가 있음을 확인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안면이 있는 청와대 경호원이 지나고 있었다. 경호원을 불렀다.

“소중한 것이 기록돼 있습니다. 내 사무실로 전달해주세요.”

카메라를 건네고 그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김포공항에서 깨어났다. 그의 카메라는 경호원의 손을 거쳐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다. 청와대 측은 “너무 끔찍하다. 국민을 또 아프게 하니 공개하지 말라”고 했고, 결국 테러 직전 도열해 있던 사진과 먼지로 뒤범벅이 된 사고 당시 사진 등 두 장만이 언론에 공개되고 나머지는 29년간 그의 서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다.

당시 조선일보 1면 1983년 10월 11일자 조선일보 1면. 큰 사진 속 머리에 붕대를 감은 사람이 김상영씨. 김씨를 비롯한 부상자들은 테러 다음 날인 1983년 10월 10일 밤 9시 KAL 특별기편으로 한국에 후송됐다.
김씨는 이후 청와대 경호원에게 “내 필름을 돌려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 보름여가 지나고 그의 사무실로 필름이 도착해 있었다. 이후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외신 한 곳에서 김씨에게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아웅산 테러 당시 사진을 갖고 있다던데, 평생 먹을 것 줄 테니 필름을 달라”는 것이었다. 김씨는 “(외신의 제안에) 별로 고민하지는 않았다”면서 “이 사진들은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쓴다면 모르지만 내 개인적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이를 공개할 생각도 했지만 점점 사람들이 이 시간을 잊어가고 있고, 별다른 계기 없이 알리는 것도 실없이 보일 것 같아 머뭇거려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현장에 몇몇 사진 기자가 있었지만 폭발 후 장면을 제대로 찍은 것은 이게 유일한 것”이라며 “일부 방송사가 대통령이 오는 것을 찍기 위해 아웅산 묘소 정문 근처에 있다가 폭발 장면을 찍은 동영상이 있지만 이 역시 현장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이 사진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사람은 경호원과 장세동 경호실장, 전두환 대통령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공개 결심을 한 이유에 대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했던 이들이 이역만리에서 죽었는데, 30년이 지나 우리 대통령이 그곳을 다시 찾아갔더니 추모는커녕 참혹했던 어떤 테러 흔적조차 없었다니…. 후세를 위해서라도 이래서는 안 된다”면서 “아웅산 테러를 놓고 조작 운운하고, 여기에 ‘옳소’ 하는 사람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없이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의정부의 작은 아파트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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