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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세탁, 위장이혼...경찰도 속았다

원선우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2-18 10:14

악성사기범 6개월만에 542명 잡혀

그들은 어떻게 도망 다녔나?
-6월 신설 서울경찰청 전담팀 성과
사기범, 평균 도주 기간 450일 대포폰·대포차·대포통장은 기본
자기명의 서비스 일절 이용 안해

2005년 곗돈 8억원을 뜯어내고 잠적한 서울 마포구의 한모(여·71)씨는 7년의 공소시효 만료를 두 달 앞두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한씨의 집이 '빈집'인 줄 알았다. 택배나 우편물이 와도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9월 경찰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을 가장해 들이닥칠 때만 해도 한씨는 "내가 잡힐 줄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한씨의 행방을 알게 된 건 병원진료기록 때문이었다. 경찰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진료기록을 수사했고, 고령인 한씨가 마포구의 한 병원에서 정기 진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병원에서 대포폰 번호를 알아낸 경찰은 한씨의 위치를 추적해 거주지를 찾아냈고, 관리사무소 직원을 가장해 한씨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한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6월 신설한 악성사기범 검거전담팀이 장기 도주 중인 사기꾼들을 줄줄이 잡아들이고 있다. 18일 현재까지 542명을 검거하고 194명을 구속했다. 평균전과 6.7범, 최고 전과자는 44범이었으며 22번 수배된 사람도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사기죄 공소시효인 7년(2007년 법 개정 이후 10년)이 지날 때까지 은신하는, 평균 도주 기간 450일의 버티기족(族)이었다고 밝혔다.

사기꾼들의 도주 방법은 치밀하다. 자신의 이름으로는 어떤 서비스도 이용하지 않는다. 금융·통신·인터넷·케이블TV·마트 멤버십 등 일상적인 모든 것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대포폰·대포차·대포통장은 기본이다. 인터넷 아이디를 만들어야 할 경우, 다른 사람 명의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만든다. 고강도 다이어트로 살을 빼 외모를 바꿔 주변을 속이기도 한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2009년 금천구 시흥동에서 계를 운영하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4억여원을 뜯어내고 잠적한 손모(여·67)씨를 11월 구속했다. '은둔형'이었던 손씨는 경기도 성남의 한 빌라에서 홀로 살았다. 당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손씨 명의의 휴대폰·인터넷 아이디가 전혀 없고, 가족들도 손씨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부인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3년 만에 재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아들의 통화내역을 조회했고, 경기도의 한 유선전화 번호가 계속 나오는 것을 수상하게 여겨 아들 부부를 미행했다. 손씨는 3년 동안 아들 내외가 가져다주는 음식과 생필품을 받아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서울 광진경찰서가 10월 구속한 나모(47)씨는 살 빼기, 위장이혼 등의 수법까지 동원했다. 2008년 아파트 공사를 수주해주겠다며 7억6000만원을 챙긴 뒤 4년 넘게 도주하던 나씨는 부인과 실제로는 함께 살았지만, 부인은 경찰이 찾아올 때마다 "이제 남남이고 같이 살지도 않는데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말했다. 경찰은 "애초 건장했던 체구의 나씨가 살을 10kg 넘게 빼서 검거 당시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고 말했다.

10월 서울 성북경찰서에 붙잡힌 장모(46)씨는 '주도면밀형'이었다. 2006년 유학비 명목으로 35명으로부터 46억7000만원을 뜯어내고 잠적했던 장씨는 여러 사람 명의로 집·자동차·휴대폰·통장·카드 등을 마련했다. 검거 당시 장씨는 경기도 평택의 한 2층 330㎡(100평) 규모 전원주택에서 아내·딸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경찰은 "장씨가 여러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한적한 교외가 은신처로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검거 당시 공소시효가 넉 달밖에 남지 않아 '조금만 더 버텼으면 되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도 전국 각지에 두더지처럼 숨어 공소시효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배자들이 수천 명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남김없이 소탕해 사기범들이 살인범만큼이나 나쁘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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