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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치매' 알린 큰형 전화에...

권승준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2-12-31 13:59

[다시, 가족이다] 정읍 '떡수리 오형제'
각자 생업 접고 힘합쳐 떡가게… 형제가 돌아가며 어머니 모셔
데면데면하던 사촌들 11명도 가게 일 거들면서 친해져

"둘째야,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 나 혼자 모시기 어려울 것 같다."

1996년의 일이었다. 서울 구로구에 살던 김용철(51)씨는 동생 용희(48)씨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41세 때 남편을 잃은 뒤 오형제 뒷바라지를 해온 어머니 이금예(72)씨가 덜컥 치매에 걸린 것이다. 고향 전북 정읍의 봉제 공장 등에서 하루 16시간씩 20년 넘게 일한 어머니였다. 아들을 알아보기는커녕 대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장남 용철씨는 네 동생에게 'SOS'를 쳤다.

오형제는 서울, 경기도, 광주광역시 등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큰형의 하소연을 들은 형제들은 "같이 모시자"고 뜻을 모았다. 용철씨는 "동생들이 먼저 제수씨와 아이들을 설득해서 어머니 모시러 가겠다고 나서더라"고 말했다.

 “어머니 기억 잃지 마시라고 옛날 사진들 모두 모은 이 앨범을 자주 보여 드렸죠.” 전북 정읍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김용철(왼쪽)씨 오형제가 집에 모여앉아 어머니와 형제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앨범을 보며 웃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큰형 김용철씨, 넷째 용식씨, 다섯째 용원씨, 둘째 용희씨, 셋째 용복씨. /김영근 기자
처음 내려간 건 둘째 용희씨였다. 서울에서 떡집을 운영하던 용희씨는 1996년 3월 서울의 가게를 접고 정읍 시내에 새 가게를 알아봤다. 좋은 가게 자리가 있었지만, 돈이 모자랐다. 셋째와 넷째가 나서 돈 1억원을 건넸다. 6개월 뒤 셋째와 넷째도 정읍에 내려왔다. 같은 건물에 셋째 용복(45)씨는 수퍼마켓을, 넷째 용식(43)씨는 떡집을 열었다. 다음해에는 첫째 용철씨와 막내 용원(41)씨도 정읍으로 돌아왔다.

지금 용철씨 오형제는 동네에서 '떡수리 오형제'라고 불린다. 어머니를 모시면서 큰 다툼 한번 없었다고 한다. 형제는 1∼2년씩 교대로 어머니를 모셨다. 둘째 용희씨는 "내가 '어머니가 지금 아프신데 가게가 바쁘다'고 하면 형제들이 가게 일을 봐준다"고 말했다. 간병에 지쳐 부부 갈등이 생길 때도 서로 구원투수가 된다.

형제는 1주일에 한 번씩 '나들이 날'을 정해 어머니를 모시고 교외로 데려갔다. 집에만 있는 것보다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다. 한번은 형제 모두가 어머니를 모시고 어릴 적 살던 정읍 솔티마을에 갔다. 치매를 앓은 지 8년이 넘은 때였다. 형제가 어릴 때 살던 집터를 보던 어머니가 형제들을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들을 다 여기서 낳았어."

용철씨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치매가 악화한 후 어머니가 예전 기억을 찾으신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형제들의 일과는 하루가 끝날 무렵 가게를 마치면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모이는 것이다. 용복씨는 "다른 형제가 어머니 모실 때는 괜히 미안해서 한 번 더 들르게 된다"고 말했다.

오형제는 용철씨가 작년 7월 악화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자는 말을 꺼냈을 때 16년 만에 다퉜다. 어머니는 합병증으로 호흡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넷째 용식씨가 반대했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집에서 돌아가시게 하자"고 말하며 울었다. 형제는 1시간 넘게 말이 없었다. 용철씨가 입을 열었다.

"넷째야, 그러면 어머니가 더 일찍 돌아가신다."

지금도 형제는 매주 한 번씩 어머니를 보러 간다. 정읍 요양원의 간호조무사 김모(40)씨는 "오형제가 한 번씩만 와도 1주일에 5일은 면회가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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