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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을 이기는 법

김윤덕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3-08-21 11:22

경남 통영의 이 작은 횟집은 콧대가 높았다. 예약을 하려니 이틀 후에나 자리가 난단다. 전국 식도락가들에게 소문난 맛집인 데다, 여름휴가 절정기였다. 유명하다니 외관도 휘황찬란할 줄 알았는데,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간판에 그 흔한 네온사인도, 광고 문구도 없다. 오색 전등 현란한 이웃 식당에 비하면 오래전 폐업한 가게처럼 보였다.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앞치마를 두른 백발 노인이 심드렁하게 쳐다본다. 직원이 따로 없이, 칠순의 노부부가 음식을 만들고 서빙을 하고 설거지를 했다. 밥상은 단출하지만 정갈했다. 막 삶아낸 문어와 새우, 게와 고둥이 하얀 김을 뿜었다. 식용유에 노릇노릇 부쳐낸 호박전은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조금 더 먹을 수 있을까 하여 접시를 내미니 주인 내외,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회를 먹고 매운탕을 주문했다. 날이 더워 8월 말까지 매운탕은 안 끓인단다. 미안해하는 기색도 없다. 대신 전복죽을 내왔다. 고소하고도 걸쭉한 진국에, 매운탕값 돌려달라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음식값을 치르며, 왜 직원을 두지 않느냐 물었다. "일주일을 못 붙어 있어요. 힘들대. 우린 쓰끼다시(밑반찬)도 손님 도착할 시간에 맞춰 만들거든요. 오죽하면 며느리가 도망갔으려고." 음식이 좀 식으면 어떠냐고 하자, "밥장사는 건성으로 하면 망해요" 한다. 통영 오면 또 오겠다 하니 펄쩍 뛰었다. "아이고, 다시 오지 말아요. 오는 손님 쫓아낼 수 없으니 두 늙은이 죽을 맛이라오."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이 횟집은 서비스 무개념 식당이다. 주는 대로 먹어야 하고, 리필은 어림없다. 90도로 숙여 인사해도 모자랄 판에 손님더러 다시 오지 말란다. 내 돈 내고도 '(주시는 대로) 감사히 먹었다'며 절을 했으니 식당에서라도 '갑(甲)'의 지위 누려보려던 자존심이 뭉개졌다.

그런데 유쾌했다. 손님이 왕이라며 무조건 굽실대지 않는 을(乙)의 뚝심이 통쾌했다. 최근 갑을 공방전을 타고 쏟아져 나온 '을의 생존 전략서'들이 하나같이 몸 낮춰 갑의 환심을 사는 법에 대해 열변할 때, 횟집 노부부는 눈 하나 깜짝 않고 갑을 휘어잡았다. 오랜 시간 다져온 맛의 공력과 '이걸 안 먹고 배기나 보자' 하는 자신감으로!

따지고 보면 을의 비애는 자초한 바도 있다. 서비스 제일주의, 비굴에 가까운 과잉 친절 말이다. 그 지나친 낮춤이 갑의 횡포를 야기하고, 직업의 귀천의식을 고착시킨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처럼 갑이 되기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반칙으로 승자 된 사람에게 '그것도 능력'이라며 박수를 보낸다.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치는 건 요원한 일일까.

노부부가 횟집을 연 지 20년이 넘었는데, 유명세를 탄 건 요 몇 년 새란다. 과잉 홍보, 과잉 친절에 신물난 사람들에게 '진짜'를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 걸까. 마케팅 업계에서 요즘 뜨는 전략이 '숨기는 마케팅' 'VVIP 마케팅'이고, 아예 간판을 달지 않는 식당도 등장했다 하니, 세상 물정 모르는 '척'하는 이 노부부야말로 진정한 고수인지 모른다.

김윤덕 여론독자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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