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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3-10-04 09:58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텃밭을 가꾸는 게 꿈인 아버지의 오래된 숙원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아버지와 나는 집을 직접 설계하고 집을 짓기로 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오늘 이야기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자연스레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을 뿐이다. 이야기의 주제는 그 때, 집을 지을 때 실감했던 공간에 대한 이해다.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이 실제로 적용되어 느꼈던 신기하고도 묘한 경험이기도 한 이야기다.

집이 세워지기 전, 공간은 그저 이차원적인 평면에 지나지 않는다. 바닥공간만이 유일한 대상지가 되는 것이다. 설계에 따라 측량작업이 이루어지고 기초 콘크리트가 쳐진 바닥에 실제 크기의 방과 거실, 주방, 욕실 등이 선으로 그어진다. 벽을 세울 자리가 표시됨과 동시에 공간이 정의된다.

바닥에 선을 긋고 나서 그 공간 한 가운데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자의 경험을 공감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인 사이즈의 방과 욕실, 주방 임에도 불구하고 금이 그어진 그 공간은 너무나도 좁아 보였다. 특히나 화장실이 될 공간 속에 서 있노라면 이 정도의 공간으로 화장실이 제대로 만들어질까 하는 걱정이 앞설 정도였다. 거실도 주방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벽이 세워지고 지붕이 얹어지자 그 작기만 하던 공간은 처음 계획했던 필요한 공간의 크기로 변했다. 주방도 거실도 같은 현상을 보였다.

공간에 대한 이해가 이론이 아닌 실제로 와 닿은 순간이었다. 그 경험 이후부터 2차원의 설계도면들이 점점 더 입체적인 공간으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공간을 더 넓게 보이기 위한 한 방법으로 벽을 세운다?’

경관 기법 중에 ‘차경(借景)’이라는 말이 있다. 바깥의 경관을 시각적으로 끌어당겨 오는 경관기법으로 일부 공간을 외부로 열어줌으로써 현재의 내가 위치한 공간을 확장시키는 방법이 있는데 때론 벽을 허물어 공간을 크게 만들 수 있고, 때론 벽을 쌓아 올려 공간을 크게 만들 수도 있으니 아이러니 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도심의 작은 주택정원. 울타리도 없고 나무 한 심겨져 있지 않은 잔디밭으로만 조성된 앞마당을 떠올려보라. 공간이 작을수록 공간의 정의가 제대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 때는 외부의 더 큰 공간으로 그 공간의 일부가 오히려 흡수된다. 넓은 잔디밭이 아니라 오히려 좁은 잔디밭으로 보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럴 땐 적당한 높이의 울타리 하나만 돌려 두어도 공간의 경계가 정의되면서 공간의 크기 역시 재 정의 된다. 거기에 울타리 가장자리를 따라 키 작은 관목을 몇 그루 심어준다면 실제로 보여지는 바닥면적은 줄어들겠지만 시각적으로 느끼는 공간의 크기를 더욱 커진다.

하지만 무조건 벽을 높인다고 공간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바닥의 면적과 벽의 높이에 대한 상관관계가 있으니 한계치를 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Andy's Landscape 대표
www.andyslandscape.ca

앤디의 조경 이야기

칼럼니스트:앤디 리

E-mail: E-mail:andy@andyslandscape.ca

Web:www.andyslandscap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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