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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4-01-09 17:31

오랜만에 잔디를 밟았다. 정원 한쪽 귀퉁이 잔디.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이끼가 한가득 이다. 이끼를 제거하는 것보다 잔디를 제거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아 보였다. 살짝 다가가 밟아보았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쪼그려 내려 앉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가까이 다가서자 그 잎과 자태가 매우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공간을 한가득 채운 푸르름이 너무 보기 좋았다.

우리 동네 밴쿠버는 이끼가 참 잘 자란다. 동네 작은 공원뿐 아니라 정원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식물이다. 잔디밭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할 땐 금새 이끼로 가득 찬 정원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매년 봄이면 이끼를 걷어내는 정원사의 요란한 기계 소리가 온 동네를 가득 채운다. 걷어내도 걷어내도 처치하기가 쉽지 않는 지긋지긋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끼는 문제아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세상 다른 한 곳에서는 묘한 일이 일어났다. 최근 서울시는 일명 ‘이끼 공원’을 조성하여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지난해 11월 말 문을 연 이끼 공원은 서울시의 공원들 한 곳 중에 작은 한 귀퉁이를 할애해 만든 그리 크지 않는 규모의 작은 공원이다. 특별히 특이한 점은 없다. 산책로 주변의 식재지 하부에 이끼를 이식한 것이 전부다. 서울시는 그 동안 자연상태로만 번식을 해 오던 이끼를 재배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시공법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나는 그 홍보문구에서 ‘서울시가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한 ‘서울시가 얼마나 깨끗해 졌는지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아주 청정지역이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이끼를 조성하고 관리 유지 하기 위해서는 매우 까다로운 관리시설이 필요한데, 사진으로 본 서울시의 이끼 정원의 모습에서 이끼보다 스프링클러의 헤드가 더 눈에 많이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귀한 대접 받고 있는 이끼에게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 약을 뿌리고, 걷어내고, 물론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을 때는 필요에 따른 관리가 따라야 하겠지만 이끼 자체를 문제아로 볼 필요는 없다.

수년 동안 몇 차례의 시리즈로 인기 받았던 미국 드라마 ‘스타게이트’를 보면 때묻지 않은 외계행성의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 이들 행성의 실제 촬영지가 주로 밴쿠버 인근의 공원들이다. 이끼 가득한 숲 속과 호수의 풍경은 분명 낯설지 않은 우리 동네의 풍경이다. 이처럼 이끼가 주는 기본적 이미지는 매우 친환경적이다.

이끼를 잘 사용할 땐 훌륭한 조경재료가 된다. 더구나 우리 동네에서는 타 지역에서보다 큰 어려움 없이 이끼를 잘 관리할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이끼 가득한 정원 하나 만나기가 쉽지 않다. 너무 흔한 것은 때론 너무 하찮은 게 보이기도 한다. 공기의 고마움을 잘 못 느끼듯이.


Andy's Landscape 대표
www.andyslandscape.ca

앤디의 조경 이야기

칼럼니스트:앤디 리

E-mail: E-mail:andy@andyslandscape.ca

Web:www.andyslandscap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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