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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한인문협 2014 신춘문예- 수필부문 가작]김근배, 메밀 꽃 질 무렵

김근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3-24 15:18

추석 연휴를 맞이하여 정처 없이 떠났다.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강변이 있기에 유심히 보아 둔 워커힐 아래 길을 계속 달리니 양평, 춘천 등 모두 주옥같은 한국의 정이 깃든 길이다.

강원도 가는 길… 전부가 아름다운 우리나라 이지만 그래도 강원도가 있다는 것은 한국의 축복이다. 춘천에서  원조 닭갈비를 먹고 막 국수로 입가심을 하고 가다보니 옛날 군 복무시절  9시간 걸려서 가던 양구 가는 길의 이정표가 보인다. 너무나 잘 닦여진 길을 달리려니 옛날 인민군이 또 내려온다면 전차를 방어한다고 특수 시설까지 해 놓은 적이 있는 전방인데 이젠 길이 캐나다 보다 더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워하던 박 수근 미술관으로 향했다. 그러나 박수근 미술관에 박 수근의 그림은 한 점도 없다. 그림이 너무 비싸져서 살 돈이 없으니 그런가보다. 살만한  제대로 된 화집조차도 없다. 공모해서 우승한 건축물인데 전시실도 적고 돌만 우람하게 쌓아 놓았다.

미술관의 분위기에 젖어보고 싶어서 두리번거려 봐도 꿈을 갖고 먼 길을 달려왔건만 정서를 달래 줄 클라식 음률은커녕 커피한잔 마실 갤러리카페 조차 없다. 짙은 탄색의 투박하고 우울한 그의 그림만큼이나 우울한 방문이다. 그렇지 뭐... 찌들고 가난한 생을 마쳤던 불쌍한 박 수근을 애절해하면서  또 뒤로 하면서 다시 달렸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없이 허허벌판에 미술관만 하나 덜렁 세워 놓으면 되나?

"메밀꽃 필 무렵"으로 가서 마음을 촉촉하게 달래보리라... 가는 길~~ 전  재산 다 털어서 일찍이 바닷가로 떠난 친구 녀석이 하는 양양 "카리브 민박집" 에서 반갑게 쓰리 인 원 커피를 한잔했다. 금년 여름에는 신종풀룬지 뭔지 때문에 겨우 본전 장사만 했다는 투덜거림을  들으니 붉은 낙조로 물든 바닷가 내 꿈을 먼저 빼앗아 갔다고 무척 부러워 했었는데 그 맘도 슬그머니 사라진다.

 다시 원주를 거쳐 "메밀꽃 필 무렵의" 가산 이 효석의 고향 봉평마을로 향했다. 우리 문단 가운데 가장 낭만이 흐르고 서정적인 글을 탄생시킨 곳답게 가는 길 언저리 모두가 가슴을 울렁이게 만들더니 들판과 산과 강줄기 그리고 흙들의 각기 다른 색깔의 조화들은 내 나라 속인데도 무언지 다른 고국을  떠난 자의 노스탈쟈를 자극한다. 그  무덥던 여름의 뜨거운 기를 꺾어 놓고 이제 평화롭게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가을의 정취를 은은히 풍겨내는 봉평마을...

 드디어 입구에 다달으니 "메밀 꽃 필 무렵"을 하얀 글씨로 적은 장승 몇 개가 다리 입구에 서있다. 장승을 보니 소설의 주인공 장똘뱅이 허 생원하고 너무나 잘 어울리는 무대의 동내라서인지 나그네의 설음이 복받친다. 글씨가 들어가게 증명사진을 몇 장 찍고 앙증맞은 다리를 건너서 메필 꽃마을로 들어섰다. 축제 때는 너무 붐빌 것 같아서 일정을  늦췄는데 여전히 인산인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문학을 사랑하고 이 효석의 발자취를 찾아서 그 고장을 찾고....??

그러나 왼쪽의 약간은 져버린 메밀꽃밭을 지나서 마침내 (이 효석 생가)라고 쓴 팻말을 보고 오른쪽으로 꺾었다. 바로 앞에 경복궁 근정전만한 대궐 같은 기와집이 처마가 날아갈듯 서 있다. 이 효석의 집 일리는 만무이고 깜짝 놀라서 살펴보니 금방 새로 지은 식당이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낡았지만 서정이 애잔하게 넘쳐흐르는 아담한 기와집이 나온다.

 아 !! 이 효석집이다! 독일에서 본 괴테의 하우스는 나와 아무 상관없구나. 우리의 -메밀꽃 필 무렵-이다. 잔잔한 감동이 물결친다. 담에는 소시랑이, 호박 등이 얹혀있고 영락없는 "메밀꽃 필 무렵"을 풍기는 집이다. 그 집에 잘 어울리게 붙은 또 하나의 별채 비슷한 건물이 있어서 들어가 보니 조촐한  메밀국수 식당이다. 그러나 그 집은 이 효석과  잘 어울린다. 이 효석이 필치를 잠시 멈추고  먹고 쉬던 집 같은 기분이 든다. 한참을 머뭇거리며 그가 살았을 시대와 당시의 분위기를 만들어 가면서 들뜨고 또 생각하고 우물쭈물 즐겼다. 이 풍요로운 가을바람 속에 흔들거리는 메밀꽃밭을 거닐고 바라보고 향기를 맡으면서 글을 썼겠구나...  상상하니  이 동네에서 좀 살아본다면 나도 가슴 저미는 판에 박은 연애소설 한 편은 만들 수 있겠다 하는 객기가 솟는다.

 잡티가 견딜 수 없는 맑은 공기의 동내다. 다시 나오는 길, 기분 잡치고 마는 그 대궐 같은 기와집 식당. 이 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먹고사는 그 동내 사람들은 꼭 입구 바로 옆에 그런 대궐 같은 졸부티 나는 식당건물을 지어서 조촐하게 낡은 기와집 이 효석을 모독해야 한단 말인가? 이 효석의 메밀꽃 책 한 권 살 곳이 없는 그 동내에 허생원이 금 새라도 나올 것 같은 동동주를  파는 주막에 이 효석의 책이라도  몇 권 꼽아놓으면 구색이 맞고 운치가 더 하련만... 24시간 문 열어놓고 장사를 해야 먹고 사는 치열한 나라라서 인가? 시인의 집. 역사박물관. 왕릉. 산사의 절. 계곡의 찜질방 옆 모두 식당뿐이다. 5 미터에 하나 씩 있는 식당.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귀처럼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만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 동내 사람들과 그런 집을 짓게 허가 해주는 관료들이 그의 책을 한 권 만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이 효석을 그렇게 대접하지는 않았으리라. 메밀꽃 질 무렵의 석양을 뒤로하고 떠나면서 그래도 언젠가 다시 와서 몇일 묵어보리라.... 무언지 모를  애잔함을 느끼면서 실현 가능성도 없는 상상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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