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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한인문협 2014 신춘문예- 수필부문 입선] 김미경, 그녀의 숨비소리

김미경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3-24 15:24

 “일어들 나라. 해가 낮 되도록 잘 거가?”
새벽을 뒤흔드는 그녀의 함성이 또 시작됐다.

귀를 틀어막고 가랑이 사이로 이불을 다시 끼워 넣어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자세로 돌돌 말아 잠을 청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방문을 부술 기세다.

반쯤 감긴 실눈 사이로 전등 빛이 새어 들어오는 걸 보니 밖은 아직도 새벽어둠 속일 것이고, 날씨가 좋아 얼른 바다에 뛰어들 심사로 마음이 급하다는 그녀만의 오래된 일 처리 방식이란 걸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부산함이 싫고 차가운 새벽공기가 싫어서 가시나무 위에 우리를 걸어 놓는다 해도 잠을 청할 것 같은 일상을 하루 이틀 겪어온 터가 아니기에, 우리는 온몸과 마음으로 그녀를 얄밉게 밀어 낼 뿐 사리 분간이 가능해진 이후로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녀를 거스르지 못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곤 했다.

 첨벙 첨벙… “호오-이  호오-이”

검은 해녀복을 입은 그녀의 숨비소리와 비행기가 착륙한다고 안전띠를 착용하라는 승무원의 안개 같은 목소리가 오버랩 되면서 눈을 떴다.  (숨비소리 : 해녀들이 바닷속에서 숨을 참았다가 밖으로 나오면서 힘든 숨을 내뱉는 소리)

어제 저녁 그녀가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하고 싸늘하게 식어갔다는 국제전화를 받고 나서, 어떤 정신으로 고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아마도 지금쯤 남아있는 가족들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그녀의 죽음을 자신의 탓인 냥 귀결짓고 있을 터…  왜냐하면 가족 어느 누구도 가슴 깊숙이 진심으로 그녀를 끌어안아 주지 못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자신들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평생 소처럼 일만 하다 갔구랴”
 “꽃구경 갈 줄도 모르고, 밭일에 물질에 일 욕심으로 살다가 이렇게 가고 말았는가”
 “아이고 불쌍해서 어쩔고… 애써 벌어놓은 돈 써보지도 못하고…”

 멍하니 영정 사진을 바라보는 내 어깨 너머로 억장이 무너지는 이웃 어른들의 한탄 소리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때로 기억한다.  내 고향의 어느 해수욕장에서 그녀는 소라를 캐던 중에 해안 금지선을 넘어 수심 깊은 곳까지 떠 밀려와 허우적거리는 해수욕객 두 명을 구조한 적이 있었다.  비록 한 명은 파도에 밀려 유명을 달리했지만, 다른 한 명은 간신히 그녀의 손길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다.

 그 부모가 찾아와 삼대독자 아들 살려줘서 고맙다고 눈물 흘리며 잔치를 벌여주고 그녀의 두 손을 꼭 잡아주었던 모습은 삼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로 기억된다.

 그처럼 그녀는 마을에서는 전설적인 ‘상군’ 해녀였고, 그녀의 '호오-이 호오-이' 하면서 아름답게   해수면 위를 수놓았던 '숨비소리'는 동료 해녀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목청 소리가 크기는 했어도 그녀의 숨비소리는 동료 해녀들마저 안심시킬 만큼 편안하고 곱다는 칭찬을 들어온 천생 해녀였던 것이다.

 아침에 둘러메고 갔던 해녀 망사리 안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전복, 소라, 문어가 한 가득이다. 어쩌다 물 때가 좋아 작살이라도 지니고 가는 날이면, 육질이 좋기로 소문난 돌돔은 물론이고 청정바다에서도 귀하신 몸인 다금바리까지… 그 날 운 없는 녀석들이 줄줄이 꿰미에 꿰어져 뭍에 오르기 일쑤였다.
 "난 바당(바다)에만 들어가면 마음이 편안하다게…"

 틈만 나면 이렇게 말하곤 하셨다.  그녀에게 있어서 푸른 바닷속은 아마도 편안하고 알맞게 데워진 어머니 자궁 속과 같은 유일한 놀이터가 아니었을까?  진심으로 그녀의 솜씨를 인정해주고 언제나 포근하게 보듬어주는 그녀만의 유토피아 같은…

 그리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내 가슴의 한을 누가 좀 들어주소!' 하소연하는 것 같기도 한 그녀들만의 암호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

 이제 돌이켜 보면 자식으로서의 어리석음과 아쉬움이 내 가슴을 헤집는다.  그녀의 놀이터에서 자유의 오색 날개를 펴고 무쏘의 뿔처럼 거칠 것 없이 그렇게 헤쳐나갈 것 같던 그녀를, 왜 여태껏 따뜻하게 헤아려 주지 못했는지?  영정 사진 속 차갑게 다문 입술에서 금방이라도 '나 너무 원통허다' 고 원망을 쏟아내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모두들 몸을 움츠리고 있는 건지?

 어린 시절 우리는 그녀의 호랑이 같은 성격 탓에 감히 그녀에게 응석을 부려 본 적도, 어깃장을 놔 본 적도 없었다.  멋을 알고 남의 이목이 신경 쓰이던 사춘기 시절에 우리는 담장 밖으로 넘어가는 쩌렁쩌렁한 그녀의 큰 목소리를 얼마나 창피해 했던가?

 어쩌다 그녀가 모처럼 기분이 좋을 때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우리 세 남매가 집으로 가는 길이면 '오늘은 엄마가 분홍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화살기도를 드린 적도 많았었다.  

 세 남매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아까움이 없던 그녀의 인생…  가족을 위한 허위단심으로 외롭게 달려 온 그녀의 인생…  검푸른 너울을 이겨내던 삶의 훈장이 그녀를 그토록 거칠고 모질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녀가 가고 없는 지금에야 알아 차린다.

 지금도 수화기를 들면 "누게고?" 하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려줄 것 같은 착각도 잠시…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희미해진다.
 차가운 봄비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던 날, 앰블런스 안 싸늘하게 식어가는 혼미함 속에서,
"아고고, 진통제 좀 놔 도라게…"
 칠십 평생 깊은 바닷속에서 얻어진 만성두통에도 진통제 한 알 먹고 나면 가벼워졌던 경험에서, 그녀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넘어가는 길에서도 진통제 하나면 다시 일어날 거라고 믿었던 것일까?

 태어날 때부터 여자로서가 아닌 어머니로 태어나서 그 어머니로 자리를 끝까지 지켜줄 줄 알았던 그녀가 지금은 곁에 없다.  철없는 딸은 지금이나마 너무도 죄스러운 마음에 애써 매일 매일 그녀와의 추억여행을 떠나려 한다.

 아!  얼마나 외로웠을까?  살아생전 그녀가 느꼈을 고독이 가슴을 죄어온다. 문득 문득 그녀의 온기를 느끼고 싶을 때, 그녀를 한번 만이라도 만지고 싶을 때면, 이제 오히려 살아남은 우리가 고독과 슬픔을 체험하곤 한다.  그 슬픔이 솟구쳐 올라 올 때면 그녀가 평생을 내 뿜었던 숨비소리가 나도 모르게 나의 가슴 안에 절절하게 뿌려진다.

 “호오-이 호오-이” “호오-이 호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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