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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민 시절" - 홍호경(카니 홍) / 옵션스 이민자 봉사회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2-00-00 00:00


"옛 이민 시절"

홍호경(카니 홍) / 옵션스 이민자 봉사회

신규 이민자 상담차 방문한 J부인은 한탄조로 이렇게 호소한다. "이민을 와서 살다 보니 점점 아래 등급으로 떨어져 내려가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받은 교육을 전혀 인정받지 못할 뿐 아니라 언어소통에도 불편이 많다보니 하게 되는 하소연으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듯 했다. 또 한국에서 회사 부장직에 근무했었다는 한 중년 남성은 도저히 구멍가게를 운영할 수는 없다며 불평을 하다가 결국 한국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어려운 이민 생활을 겪었고 또 지금도 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 안타까운 처지들에 공감은 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 왠지 석연치 않은 감정이 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 이민이라는 중대사를, 주변의 달콤한 이야기만 성급히 받아들이고 결정을 내리면서 이에 대한 정신적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캐나다에 도착해버리는 일부 이민자들에 대한 안쓰러움일 것이다.

한국에서 살던 집을 팔면 간신히 이민행 비행기표 값이 되던 그 옛날이라고 해보아야 고작 이십 여 년 전의 일이다. 한국의 외환관리규제 때문에 일인당 미화 2백 달러(당시는 캐나다화가 미화보다 가치가 높던 시기였다)씩을 가지고 이민 왔던 그 당시에는, 당연한 가족들의 생계대책 확보의 심각성이 어떠한 정신적 안일함도 용납하지 않았었다.
Mac's 가게를 운영하던 김 선생은 다섯 달 난 아기를 보아 줄 사람이 없어 금전계산기 아래에 라면 상자를 놓고 그 안에 아기를 넣어둔 채 어렵게 가게를 운영하시고 계셨는데 그 분은 한국의 유명대학에서 교편을 잡으시고 계셨던 전직 교수님이었다. 갓 이민 온 한 젊은 부부는 사방에 수소문하며 막노동이지만 취직자리를 힘겹게 구했으나 네 살 배기 딸아이를 보아 줄 사람을 구할 수가 없게 되자, 샌드위치로 점심을 싸주고 '엄마,아빠 금방 올께, 착하지' 하며 첫 출근을 하게 됐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가 엄마를 찾아 길도 모르는 집 밖으로 나갔는데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부모 가슴에 못을 박아놓고 세상을 떠났다. 지금도 얼핏 생각이 나면 눈물이 주르르 쏟아지는 슬픈 이야기다. 요즈음 한국식품점에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새우깡','육개장','짜장면' 등을 바라 보면, 김치는커녕 고춧가루도 구하기 어려워서, 어쩌다가 어느 집에 한국에서 부쳐온 고춧가루가 도착하면 한 공기씩 나누어 갖고 신주단지 모시듯 하던 생각이 난다. 영어학원도, 수학학원도, 유명한 과외선생도 없었던 시절이지만 영특하고 씩씩하게 자라던 우리 한국 어린이들은 모두가 우등생들이었다.

어려운 옛 이민시절 이야기를 해서 요즈음 이민 오신 분들을 규탄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다만 이러한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들이 현재 상황의 풍요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어서 그래도 어려운 이민생활을 이겨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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