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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이 어렵다고요? - 로스 킹 / UBC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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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02-03-00 00:00

로스 킹 / UBC 한국어학과 교수

한국말이 어렵다고요?

한국사람을 처음 만날 때, 서툰 한국어로 인사를 드리면 상대방이 거의 예외없이 제일 먼저 던져 주는 말이 "우리 말 잘 하시네요!"이다. 한국 사람들의 반사적인 친절함과 예의 의식 때문이리라. 몇 초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역시 거의 의무적으로(그리고 위로해 주듯) 튀어나오는 말은 "한국말이 참 어렵지요?"이다. 언어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엄격한 언어학적인 면에서 볼 때 어떤 한 언어가 다른 어떤 언어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가지고 더 어렵거나 더 쉽다고 비교할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실천적인 면에서 검토해 보면, 어떤 나라 사람들은(더 정확하게, 어떤 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은) 어떤 외국어들을 더 쉽게 배우거나 더 힘들게 배운다는 것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유감스럽게도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학습자가 한국어를 배울 때 생기는 문제점이나 그 전체 과정을 검토해 본 연구업적은 없다시피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롭고도 시사를 많이 주는 통계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Monterey)에 DLI(Defense Language Institute)라는 기관이 있다. DLI는 미국의 고급 군인들과 간첩들한테 소위 '전략적 가치'를 가진 외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로, 미국의 모든 정보 기관들에서 통하는 1급부터 5급까지의 외국어능력 랭킹을 사용하고 있다. 1급은 아주 초보적이고 표면적인 외국어 능력 수준인데 비해 5급은 '대학교를 졸업한 native speaker'의 수준이다. (헨리 키신저 외무부장관은 자기의 독일어 액센트 때문에 영어로 4+급 밖에 못 받았다고 한다. 필자는 한국어로는 3+급이나 4-급 정도 될까?). 2+급이 나와야 월급 보너스 나오고 3급을 받으면 '직장 환경에서 목표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인데, DLI교육과정의 목표는 대상 외국어를 전혀 모르는 학습자를(그것도 듣기와 읽기 기능으로만) 2+급까지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외에 DLI에서 사용하는 또 하나의 랭킹이 있는데 이것은 대상 외국어의 난이도에 따른 것이다. 레벨 I 외국어는 비교적 쉬운 것으로 목적 랭킹인 2+급에 달하기 위해 400-600시간의 수업이 요구되는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등. 레벨 III은 제일 어려운 범주로, 평균 2200시간이나 요구되는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와 아랍어. 2200 시간! 그 얼마나 엄청난 투자인데, 한다고 해도 2+급 밖에 안 나오는 것이다(DLI에서는 이미 한국어로 2+급을 가진 졸업자를 수천 명을 배출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적어도 2가지 질문이 제기될 수가 있다. 첫번째는 한국어가 많이 들리는 환경에서 자란 캐나다나 미국 교포2세의 경우도 역시 한국어 정식 수업시간으로 2200시간 이상의 투자가 요구되는가 이다. 두 번째는 2+급에서 3-/3급까지 한 층 더 오르려면 요구되는 수업시간이(요구되는 투자액이) 얼마인가 하는 질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연구가 워낙 미개척 분야라서 이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이 없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해서 판단한다면, 질문 1에 대한 답은 '시간 좀 절약할 수 있지만 크게 봐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고 질문 2에 대한 답은 랭킹에 오르면 오를수록 요구되는 투자가 멱수적으로 (exponentially)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2200시간이라는 놀라운 통계는 북미에서의 한국어 교육을 위해 무슨 의의를 가지고 있을까? 한국어 교육을 올바르게 하려면 1)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해당 기관이 한국어 프로그램에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프로그램의 경우보다 적어도 3배나 4배 더 많은 투자를 해야 된다. 그런데 재정이 충분하다고 자랑하는 대학교 한국어 프로그램이나 한글학교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2) 학습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한국어를 배우려고 나설 때는 그 엄청난 투자를 할만 한 준비, 끈기력, 인내심과 motivation이 꼭 있어야 되는데 비한국계이든 한국계이든 간에 본인이 가르쳐본 학생들 중에 이런 정신자세를 가진 사람을 유감스럽게도 소수 밖에 못 봤다. 대학교 프로그램에서는 한 학년에 겨우 100시간의 수업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어교육과정이 면한 문제의 심각함을 알 수 있다. 3) 학부모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특히 한인 1세들이 자녀들이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워야 되는 처지에 놓이면(집에서 영어를 주로 쓰거나 한국어 교육을 소홀히 할 경우), 아이들이 얼마나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인지를 인식해야 된다. 또, 부모들이 사실 얼마나 엄청난 투자가 요구되는 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교육기관(UBC이든 한글학교이든)들에 대한 기대가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된다.

요약을 한다면 한국어 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여러모로 엄청난 인적, 물적으로 투자가 요구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한인이민사회 자체가 얼마만큼의 투자가 요구되는지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또 그 투자를 훨씬 더 열심히, 훨씬 더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효율적인 한국어 교육이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인들이 스스로 자진해서 이 중요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서서 대신 해줄 사람이나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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