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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4-05-16 11:26

라일락 향기가 지천이다. 작디작은 꽃송이 조롱조롱 모여 달고, 흰빛 푸른빛 몽우리 한 가득 가지 끝에 겨우 지탱해 매달고선 온 동네방네 기분 좋은 향기를 내뿜는다.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며~'로 시작되는 노래가사가 먼저 떠오르지만 라일락이라는 이름보다 더 멋지고 잘 어울리는 우리의 이름이 있다.
'수수꽃다리'

라일락 꽃이 어떻게 생긴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이름이 얼마나 잘 지어진 이름인지를 안다. 꽃의 모양새에 맞춰진 아기자기한 이름에선 왠지 향긋한 향기마저 담은 듯한 느낌을 받으니 누가 지어놓은 이름인지 참 잘 지은 이름이다.

마음의 여유.

라일락의 향기는 알아도 어느 나무가 라일락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존재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우리의 바쁜 일상은 그만한 작은 소박한 관심도 허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서 이 향기가 날까 바람에 실린 향기 따라 더듬어 나무를 찾아 보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 일까.

수수꽃다리의 향기에 놀라 '흐흡~' 큰 숨 한번 더 들이켜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두 번, 세 번 들이 마셔보아도 질리지 않는 그 향기가 어디에서부터 날아 온 건지 궁금하다면 한번 찾아보자. 향기만큼이나 감동스런 꽃태에 한 번 더 기분이 좋아지는 횡재를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꽃덩이에서 눈길을 떼어 놓기 힘들겠지만 약간의 여유를 더 가져보면 꽃덩이를 받치고 있는 가지 마다 소복히 매달린 작은 심장들을 만날 수 있다. 작은 심장이란 잎이다. 꽃피는 5월의 수수꽃다리에는 심장모양의 잎들 역시 밝고 건강한 초록 빛깔이다. 주렁주렁 매달린 심장은 힘차고 푸르다. 그런 강인한 심장을 나무 한 가득 달고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은은한 향기 풍기며 서 있는 수수꽃다리에는 '외유내강'의 내공이 있다.

숨겨진 가슴 아픈 이야기.
수수꽃다리 중에는 '미스킴라일락'이라는 반가운 이름이 있다. 미스킴라일락은 일반 라일락보다 작고 앙증맞아 정원용으로 매우 각광받고 있는 종이다. 미 군정시절 미국이 보낸 식물채집가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원산지 수수꽃다리인 '털개회나무'를 개량하여 만든 새로운 종이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주던 여직원의 성을 따서 '미스킴라일락'이라고 명명했다.

그런 유명한 나무에 미스킴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반갑기만 할 일일까. 그 속에는 가슴 아픈 우리의 역사가 숨어 있다.

우리 것을 지키지 못해 오히려 값비싼 '로열티' 물어가며 재 수입해야 하는 게 현실. 미스킴라일락은 그 대표적인 식물 가운데 하나다. 나무의 학명에 'korea' 혹은 'koreana'라고 붙은 것은 원산지가 한국임을 의미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저작권에 해당하는 '권리'는 정작 한국에게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미스킴라일락에는 이런 뼈아픈 교훈이 있다.
우리가 알지 못한 채 빼앗기고 잃어 버린 것들.
얼마나 더 잃어야 정신을 차릴까.



Andy's Landscape 대표
www.andyslandscape.ca

앤디의 조경 이야기

칼럼니스트:앤디 리

E-mail: E-mail:andy@andyslandscap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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