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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14-06-13 16:44

사람들의 정원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 역시 나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각계 각층의 사람들. 제각기 다른 피부색. 젊은 사람, 나이든 사람. 그러고 보니 나는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느 일이던 항상 새롭고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정원을 만드는 일은 그래서 그런지 지루해질 틈이 없다.

요 며칠, 계속 생각에 맴도는 특별한 고객이 있다. 캐럴 아줌마다. 할머니라 부르기엔 너무 아름다운 소녀의 미소를 지닌 분이라 아무래도 할머니라기보다는 아줌마라고 칭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캐럴은 몇 해 전의 큰 수술 이후 급격히 몸이 쇠약해졌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 역시 도우미의 도움 없이는 일상 생활이 힘들 정도로 몸이 쇠약하다. 게다가 두 번의 건설업자 사기에 집 안팎은 마무리 되지 않은 일로 엉망이었다. 풀과 나무가 울창했다는 정원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남아 있지 않고 다 파헤쳐 있고, 쌓다 도망간 옹벽은 1년도 되지 않아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피곤한데 업자들까지 속을 썩이니 그 맘은 어땠을까. 엉망이 된 채로 1년을 그냥 두었다고 한다. 더 이상 사람에게 상처 받기도 싫었던 모양이었다.

두 부부와의 디자인 협의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우선 도우미가 일하러 오는 평일 낮에만 접견이 가능했다. 그 시간 이외에는 현관에 나와 손님을 맞는 자체가 어려울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일하다 말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가서 몇 번의 이야기를 나눴다. 약속을 한 날 전날 밤에 엠뷸런스에 실려가 몇 일 동안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돌아와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캐럴은 정원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정성을 다했다. 캐럴은 화사한 여름 꽃을 특히 좋아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디자인 해준 나무 하나하나를 확인했고 나도 정성껏, 그리고 신나게 꽃과 나무들을 소개했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을 통해서 마침내 캐럴의 계획은 정해졌다. 좋아하는 꽃과 나무들, 그리고 처음 만나게 될 꽃과 나무들에 대한 설명을 듣는 캐럴의 눈동자는 마치 소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초췌해진 얼굴과 몸에서 어떻게 저렇게 순수한 소녀의 모습이 나올 수 있는지 놀라웠다. 나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캐럴은 내가 작업하러 올 때까지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 역시 하루라도 빨리 캐럴의 정원을 만들러 가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한번 행복해하는 그녀의 초롱초롱한 소녀 눈빛을 보고 싶다. 어서 가서 화사한 봄날의 꽃에서부터 시작해 여름 내도록 그녀의 미소가 멈추지 않도록 만들어 줘야겠다.


Andy's Landscape 대표
www.andyslandscape.ca

앤디의 조경 이야기

칼럼니스트:앤디 리

E-mail: E-mail:andy@andyslandscape.ca

Web:www.andyslandscape.ca

  • Andy's Landscap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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