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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부 일체가 의미하는 조선사회의 명암

정봉석 phnx604@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7-03 16:27

해외에서 쓰는 고향 역사(15)
조선사회의 지방지리지인 안의읍지나 함양군지의 빛바랜 책장을 넘기다 보면 효자열전과 열녀열전이 지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곧 이 조그만 고을 안의나 함양에 효자나 열녀로 국가의 인정을 받아 복호(復戶:세금이나 요역의 면제)의 은전을 주는 사회적 우대와,아주 감동적일 경우는 홍살문을 동네 입구에 세워 고을의 자랑으로 여기는 습속이 조선사회 500년을 풍미 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사람들에 대한 간략한 사연을 보면 효자는 거의 대개가 아버지나 어머니의 병환이나면 변을 받아 입에 넣어 매일같이 맛을 보고 예후를 살피는 상분(嘗糞)이나,명재경각의 부모를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입에 흘러넣어 소생시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그리고 돌아가신후 묘옆에 임시 움막을 짓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으로 때우며, 때를 맞춰 구슬피 곡을 하고 상(喪)을 마치는 려묘(廬墓)3년은 기본이다.

열녀들의 이야기도 대부분 남편이나 시아버지의 병구완에 조석으로 변을 맛보며, 극진히 조섭하는 얘기, 사별 후 평생을 수절하거나 때로는 남편이 죽고나서  자결하여 따라 죽는  순절(殉節)행위,그리고 임란시 왜놈들의 겁간에 반항하다 당한후, 자결하여 가문의 명예를 지킨경우도 종종 보이고 있다.

참으로 초인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한 미풍양속임엔 틀림이 없다. 오늘날 국가가 위의 이조사회와 똑같은 효자나 열녀의  지극정성이 나오면  장려금 10억을 주고 또 소득세를 평생 면제해 준다고 하자,  장담하건데 단 한 사람의 후보자도 나오지 않을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하지만 이들 효자나 열녀들은 무슨 국가의 장려금이나 홍살문을 바라고, 의도적으로 억지로 한 행위가 아니라 정말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발적 미행이라는데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500년 조선 사회에서  미칭인 효자, 효녀, 효부, 효행과 같은 단어의 앞에 붙는 관형사 "孝"자 만큼 더 중요한 덕목이 있을까. 가히 최고의 미덕이요, 지고의 절대적인 가치다. 그리고 이는 국가가 정교(政敎)의 근본이념으로 사사로운 개인의 영역인 "家"안에서 실천해야할 최고의 도덕적 기준으로 설정했다는 점, 이를  또한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함양의 일주 정여창 고택의 솟을대문 위에 덕지 덕지 붙어 있는 효자 정려현판들 충신의 집안에 학자가 나고 효자가나고..그것은 가문의 영광과 직결되었던 것이다. >


유교의 소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단 아홉 글자로 축약된 '국가통치기본원리'는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실로 어마마한 국가경영 비젼을 담은 위대한 청사진이자 국가경영학 그 자체이다.

임금은  이 청사진에서  바로 국가의 최고경영자인 CEO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주나라가 쇠퇴하고 사회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면서 중국대륙이 500년 동안의 큰 혼란기에 빠진 춘추 전국 시대에 온갖 사회질서회복의 이론을 전개한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이 출현했는데, 그 중 별 볼일 없던 소수 학파인 공맹의 유가가 궁리해낸  남상(濫觴)에 불과하다. 당시의 중원의 제패를 목표한 제후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학파는 유가가 아니라 법가, 종횡가, 병가, 묵가, 등  국가현안문제 해결 이론을 제시한 '해결사' 학파들이 절대적으로 우세했다(참고로 진시황은  한비자(韓非子), 상앙(商秧), 이사(李斯)와 같은 법가들을 등용하여 천하를 통일함).

그런데 거대하고도 엄격한, 미주알 고주알 숨이 막히는 법치사회인, 절대적 일인 철권 통치 제국인 진나라가  진시황 사후 30년만에 결단이 나고 유방이 초패왕 항우와 대결 끝에 한(漢)제국을 성립하면서 별볼일 없었던 유가가 뜨게 된 것이다.

초한지에도 나오지만, 한미한 개망나니, 주정뱅이, 촌무지렁이 출신 유방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수백년간 계속된 전쟁의 참화에 지치고 피폐한 백성들을 휴양(休養) 시키는 것이 급선무로 판단하고 수 만가지 법조목으로 얽어멘 진나라 법을 깡그리 폐지하고 약법삼장이라는 3가지 치안유지법(살인자, 도적등을 벌하는 법)만 선포하고,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는다는 "독존유술"(獨尊儒術)을 천명한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여간 흥미롭지 않다.이것은 곧 한, 중, 일 동아시아를 지금도 서양인들이 유교벨트(Confucian Belt)국가로 부르는데, 유교가 2,300년 동안 이지역을 지배한 정치 이데올로기에 다름아니라는 말이다.

통치자들은  이 유교를 가지고 백성들을 가르치고, 예로서 교화하는 것이 퍽 유용하고  "효"라는 개념을  정치적 목적에 사용하는 것도 짭잘하다는 틈새의  손익계산서를  함께 발견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나 반고의 한서(漢書)를 읽어보면 성군은 효로서 천하를 다스린다(聖君以孝治天下)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리고 내가 한학을 연마하는 차원에서 한 열번은 읽은 순 한문 삼국지에도 수 없이 나오는 관용구이기도 하다.

실지로 한나라에서 관리의 등용은 과거에 의하지 않고 소위 효렴(孝廉)제라는 추천제도였다(과거제도는 수,당때 시작). 말하자면 지방에서 부모님 말씀 잘듣고 극진히 모시는 깨끗한 효자들만 골라 등용하면 임금 말 잘 듣고 절대 복종할 것이라는 모종의 정치적 이해득실의  계산이 깔려있다고나 할까? 나는 지금 효순(孝順)이나,충효(忠孝)사상을 깎아 내리고 있는 불순분자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역사는 나라가 일방적으로 편찬한 관제역사서를 통해 배운 역사이거나, 일인들이 조선통치 목적상 어용 식민지사관을 가진 사람들을 동원해 만든 역사만 읽었지, 통시적(通時的 diachronic) 비평을 가한 문화사를 배우지 못한 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요즈음의 역사 교과서 문제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달라진다. 그래서 함석헌이 생각하는 국민이 되라고 말한 것이다.이런 관제 역사만 읽은 사람은  결국 우물안 개구리나, 소위 꼴통 보수로 남을 수 밖에 없어서 하는 말이니 오해는 없기 바란다.

유교를 기본 통치 이념으로 무장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가족을 중시하는  강력한 가부장적 사회라 할 수 있다.따라서 가족의 성원들은 모든 생활의 규범과 의식이 유교의 가르침에 철저히 따를 것을 강요당하는 순종과 복종이 불문율이었다. 따라서 "나"라는 개인보다는 가족 전체를 의식하는 "우리"가 우선하게 되다 보니, 가문의 명예가 우선이고, 우리라는 전체를 위해 개인이 무조건 끽소리 못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한국사람들은  일인칭 '나의'라는 소유격이 문법상으로만 존재하는 이상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집'이라 하지 '나의집'하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이지 '나의 아버지라' 하지 않듯...모든 것이 '우리'라는 강한 집단 의식이 500년 조선역사에서 온양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의식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도  '나의나라'가 아닌 '우리나라'라 하지 않는가?

서구 사람들은 'my country', 'my father'라 하지 'our country, our father'라 하지 않는다. 막말로 '아이쿠 내 돈 3백만원!'이라고 볼멘 아우성을 칠 때의 그 "돈"이나 개인소지품만 일인칭 소유격을 사용하지 나머지는 거의 '우리'라는 복수일인칭 소유격 "our"가 우선적 가치로 통하는 사회다.

이렇다 보니 위기를 당한 국가적 결속력은 강하디 강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한국이 전대미문의 IMF 금융위기를 최단시일안에 극복하고, 3천만 국민이 하나로 뭉쳐 목이 쉬도록 악을 써며 응원하여 월드컵 4강 신화를 쓸 수 있었던 것이니 이것이 바로 유교국가의 장점이자 장수비결인 것임을 그 누가 부인할 것인가. 전에도 지적했듯이 조선이 임란때 망하지 않고 300년더 수명을 연장한 비결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조선사회에서 가장의 권위와 권리는 가히 절대적이다. 막말로 "꼰대"의 권위와 위세를 알아주는 사회였다. 지금의 고개숙인 가장들, 마누라한테 '일식'이 '삼식' '외식'이로 매도되는 아버지들은 이조사회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하늘 같은' 존재였으니 가히 이조사회를  동경하며 "아 옛날이여!"를 뇌까리며 동경할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이나 가끔 원용하는 명나라 법전 대명률(大明律)로, 가령 자손, 처첩, 노비가 모반 반역이외의 죄상으로 부모나 가장, 주인을 관청에 고소하면 볼것없이 극형으로 다스렸다. 그 머저리 임금 인조때는 심지어 아버지의 역적음모를 관청에 고발하였다가 인륜을 해치는 강상(綱常)의 죄도 국가반역죄 못지않게 무겁다하여 사형시킨 일까지도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부모 존장에 대한 절대 복종과 희생정신에서 우러나오는 효행과 정렬은 국가에서 크게 장려하였음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그 권위를 국가에서 보장하는 가장은 집안에서 조상의 제사를 주재하는 제사장인 동시에, 가정의 관리, 가족의 부양, 분가, 입양,자녀의 혼인, 교육, 징계, 매매 등에 관한 전권을 가지고 가족성원을 통솔하는 집안의 임금인 셈이다. 민간의 계약은 가장의 서명없으면 무효이고 관청에서도 가장을 상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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