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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의 멍에는 배신인가

정봉석 phnx604@hotmail.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4-08-13 10:24

해외에서 쓰는 고향 역사(21)

사랑의 배신이나,친구의 배신이나,부하의 배신이나,그 순간에 임하는 배신의 느낌은 '화'하다.

심순애에게 배신당한 이수일의 느낌이나, 믿었던 심복 브루투스(Brutus)에게 배신 당한 유리 씨저(Julius Caesar)의  반응, 해하(垓下)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에 휩싸인 고사성어의 주인공 초패왕 항우의 심정, 그리고 궁정동 안가에서 심복 김재규에게 당한 박정희의 첫 느낌은 쓰라린 분노라기보다 온 몸이 '싸' 하고 '화'한 느낌이라 해야한다.

"싸하고 화하다"는 느낌은 어두운 느낌이 아니라 환한 느낌이다. 김지하가 말한 "흰 그늘"과 같은 미학적 구조를 가진 그런 감성의 일종이라 할만하다. 뜨거운 물에 팔뚝을 약간 데었을 때나, 시멘트 바닥같은 데 엎어져 찰과상을 입었을 때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박하를 솜에 묻혀 살갗에 발랐을 때 찌릿하게 기분좋은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기원전 202년, 초패왕 항우가 한신에게 쫓겨 해하(垓下:지금의 안휘성 영벽현)에서 최후의 결전이 임박한 전야의 달 밝은 밤에, 장량이 초나라 군사로 하여금 고향 생각이 절로나게 하는 퉁소를 처절하고 처량하게 애간장이 녹게 연주하자, 전투 의욕을 상실한 초나라 군사 거의가 한나라 진영으로 탈영하여 초나라 노래를 불렀을 때, 항우의 반응은 그가 사랑한 미인 우희(虞姬)에게 노래를 불렀다고 사마천은 항우본기에 적고 있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만 하지만               力拔山兮氣蓋世
시운이 다하니 천리마 추(騶) 또한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구나!          時不利兮騶不逝
천리마 추야 네가 나아가질 않으니 난 어찌해야 하느냐                     騶不逝兮可奈何
우희야 ! 우희야!  나 이제  어찌해야 하느냐!                                    虞兮虞兮奈若何
 
기원전 43년 정적 폼페이의 흉상이 있는 집회소에 자기의 심복 부하이자, 양아들인 브루투스를 만나러 들어간 유리 씨저는 칼을 든 암살자들의 무리속에 그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고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그리고 그 유명한 세 단어의 말을 내뱉었다:
브루투스 너마저?(Brutus! you too? Et tu, brute?)

그리고 1979년 10월 26일 저녁 9시 반,박정희가 궁정동 안가 밀실 보료에 기댄채 마지막 남긴 말은 "나는 괜찮아.." 그 말뿐이었다니....

세 사람 다 분노하기보다는 담담한 철학자의 자세로 차분하게 최후를 맞았으니 배신의 순간에 느끼는 감정은 '싸하고 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1728년 4월 3일 고제 소사평에서 정희량,이웅보, 나숭곤 등을 포함하여 반군 두목급 21명 전원이  자기편 부하 장수들인  정빈주(鄭彬周),여해달(呂海達),염마당(廉馬堂:이름으로 보아 마당쇠로 기운센 하인으로 참전한 듯. 그렇다면 혹시 정희량의 하인은 아닐까?)등의  완력으로 제압당하여 모조리 체포당하는 집단 배신은 위의 세 경우와는 전혀 다른 참담하고 쓰라린 비통의 순간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명항이 거느린 2천 기보병 혼성의 훈련도감 소속  정예 서울 관군이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아니한 4월 2일은 벌써 경상도의 2만 관군이  총 출동하여  고제면 일원을 완전히 이중 삼중으로 개미새끼 한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는 포위 상태였고, 각 고을의 군사를 거느린 수령들은 이들 노다지 전리품을 앞에 놓고 서로 눈독을 들이고 으르렁 거리며 군침을 삼키고 있었으니....

오랏줄에 굴비엮듯 줄줄이 묶여진 그들은 차라리 굶주린 이리 떼 앞에 끌려온 양떼들이라 해야 좋았을 것이다. 이 순간은 나로 하여금 문득 64년도 중3 겨울방학 땐가, 부산에 머물던 중 감상한 커크 더글라스와 쟝 시몽즈가 주연한 로마 노예 검투사들의 반란을 그린 "Spartacus"영화를 생각나게 한다. 발칸의 검투사들이 로마 귀족들의 노리개로 전락하여 상대방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짜릿한 흥분을 제공하기 위해 인간이하로 학대당하는  대우에 불만이 폭발하고  노예들이 총 궐기한다. 검투사들을 주축으로 한 노예 반란군이  노예 해방을 위해 로마 본토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전개되며,  마지막 대회전에서 노예군은 크라수스가 거느린 로마 군단에게 궤멸된 후 포로가 된 수십명의 노예검투사(gladiator)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크라수스가 "누가 스파르타커스냐? 일어나!" 명령하니. 맨 먼저 주인공인 커크 더글라스가  일어난다. 그가  " I am Spartacus!"라고 하자, 나머지 그를 따르던 부하들이 하나씩 둘씩 일어나 "I am Spartacus"라고 외치며 나중엔 전원이 자기가 스파르타커스라 주장하며 같이 죽을 것을 결의한다. 이윽고 커크 더글러스의 눈엔 비장한 감동의 눈물이 고인다.... 그 감동의 순간을 그린 장면에  나또한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두 눈에 이슬이 맺히고   목구멍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장면이지 현실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동물의 세계일  뿐이다.

반군들의 입장이라면 관군에게 포위된 절체절명의 순간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염두에 둔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고, 진압군이라면 살기어린 눈빛으로 적의 목을 얼마만큼 자기 주머니에 베어 챙기느냐를 노리는   또 다른 동물적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사면초가의 해하 싸움에서 한신에게 밀린 초패왕 항우는 분전에 분전을 거듭한 끝에 쫓기는 몸으로 필마단기로 오강(烏江:안휘성 화현을 흐르는 양자강 줄기)에 이르자, 그를 존경하는 뱃사공이 그에게 단하나 뿐인 배를 타고 건너 도망하여 후일을 도모하라고  권하지만 그는 완곡히 거절하고 그가 탄 천리마 추를 그에게 사례하고 단검하나만 가지고 싸우다가 한신의 부하가 된 옛 부하 여마동(呂馬童)을 보자, "한왕 유방이 내 머리를 베어오는 자에게 천금을 내리고 만호의 식읍을 준다고 하니 나 오늘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마"하고 자기의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만다. 그 즉시 한나라 기병들 사이엔 항우 목을 서로 차지하려 서로 죽이는 살륙전이 벌어지고 결국 다섯 장수가 네 팔다리 목을 서로 나누어 차지한다.유방은 약속대로 그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식읍과 후작 벼슬내린다.
이것도 초패왕 항우의 초나라를 패망시킨 유방이 허락한 공신책록이라 할 수 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태조 이성계의 개국공신 책록이후  총 28차례의 공신책록이 있었고 무신란 공신책록은 조선의 마지막 공신책록이 되었다. 무신란 진압에 대한 공신은 영조가 그해 4월 26일 직접 훈호(勳號)한 '수충갈성결기효력분무공신'(輸忠竭誠決幾效力奮武功臣)이라 하는데 1등에 오명항 1명 2등 박문수 등 7명 3등에 이보혁등 7명 총 15명이며 그외 직 간접으로 조그만 공이 있는 사람은 원종공신(原從功臣)이라 하여 6,000명에 달하는 방대한 인명이라  아예 조정에서 공신록권을 만들어 출판한다.

이는 그만치 무신란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다는 걸 반증한다. 영조는 동년 7월 28일 이들 공신들을 경복궁의 회맹단(會盟壇) 앞에 모이게 하여 백마의 피를 입술에 바르며 충성을 맹세하는 춘추전국시대의 의례를 거행하고 그들의  노고를 크게 치하하는 연회를 베푼다. 원종공신은  참전했다는 일종의 증서같은 것이지 실질적 포상은 없지만, 그 후손들이 벼슬길에 나서면 우선 임용의 특전이 있었다. 역시 영양가는 15명에 들어가는 분무공신이 되어야 짭잘하다. 참고로 2 등에 책록된 경기도 안성의 김중만의 경우를 보면 밭 15결(4만5천평),논 9결(120마지기 상당),노비 34명이 하사되었다. 그는 이인좌군을 죽산에서 결사대를 조직해 이만빈과 함께 적괴 박종원을 죽이고 잔적을 섬멸한 군관 출신인데 하루아침에 대박이 터지는 부귀영화와 나중엔 종2품 충청도 수군절도사까지 지낸다.

요즘말로 하면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후 진압군으로 참전한 주요 지휘관들에게 을지무공훈장을 비롯한 막강한 서훈과 병사들에겐 모두 충정 휘장을 수여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계속)



<▲안의 향교에 있는 명륜당 안의가 폐현되기 전부터 있던 향교는 안의가 면이 아니라 현임을 증명해주는 유일한 증거인 셈이다. 5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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