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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아빠에서 달콤한 아이스크림 아빠로

박준형 기자 ju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6-11 15:35

"돈은 잃어도 친구는 못 잃어" 고교 동창과 17년째 동업, 고승범씨
랭리의 유명 아이스크림 전문업체 배스킨라빈스(Baskin Robbins). 프레이저 하이웨이(Fraser Hwy.)를 지나가면 특유의 화사한 분홍색 간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이 가게가 관심을 끄는 더 큰 이유는 바로 교민 2명이 20년 가까이 동업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승범(53)씨는 IMF로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고등학교 동창 권종모씨와 함께 밴쿠버에 발을 들였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딸이 아빠 얼굴을 도깨비로 그린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고씨는 처음 이민을 생각하게 됐다. 때마침 고교 때부터 10년 넘게 우정을 쌓아온 친구 권씨와 함께 이민을 하기로 의기투합했고, 두 사람은 가족과 함께 삶의 질을 쫓아 머나먼 이국 땅에 오게 됐다. 고씨는 "아이가 아빠를 도깨비로 그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돈을 쫒으면서 살 수는 없었다"며 "친구와 우리만의 삶을 살아보자고 얘기를 나눈 후 삶의 질을 쫓아서 과감히 결정했다"고 말했다.

밴쿠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동업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고 배스킨라빈스를 인수하게 됐다. 그렇게 시작된 동업이 현재까지 이어져 20년 가까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여러가지 비결이 있었다. 사업 초기 작성한 동업계약서, 확실한 역할 분담, 가족 간의 돈독함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둘 사이의 믿음이었다. 17년간 크고 작은 다툼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고비를 헤쳐나갔다. "돈은 잃어도 친구는 잃어서는 안 된다"는 고씨에게서 35년 지기의 끈끈한 우정이 느껴진다.


<▲환한 웃음으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배스킨라빈스 사장 고승범씨.>

이민은 언제 왔나?

"밴쿠버에 온 지 18년 됐다. 1997년 영주권을 받고 1998년에 랜딩했다. 당시 나이가 35살이었다.

이민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당시 우연히 살기 좋은 도시 순위가 나온 신문기사를 보고 밴쿠버에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당시 큰 애가 유치원생이었는데 유치원에서 아빠 얼굴을 그리라고 했더니 도깨비를 그려놨다. 큰 충격을 받았다. 바쁜 직장생활로 인해 아이가 아빠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이가 아빠를 도깨비로 그리는 상황에서 더 이상 돈을 쫒으면서 살 수는 없었다."

동업을 하는 친구와는 어떻게 만난 것인가?

"고등학교 동창이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같이 다니고 직장도 같은 지역에서 다녔다. 난 한국 IBM에서 근무했고 친구는 SK의 전신 유공에서 근무했는데 둘 다 사무실이 여의도에 있었다. 어느날 10~15년 후 우리의 모습이 어떨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밴쿠버에서 살면 어떨지에 대한 얘기를 나누게 됐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바쁘게 살면서 고위직에 올라가느니 우리만의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주변에서는 좋은 직장을 버리고 왜 가냐고 만류했지만 삶의 질을 쫓아서 과감히 결정했다."

밴쿠버에 오자마자 바로 동업을 한 것인가?

"친구와 같이 얘기했던 것이 처음에 밴쿠버에 와서 6개월은 무조건 놀자고 했다. 그런데 2~3개월 놀다 보니까 일이 하고 싶어졌다. 처음에는 각자 다른 일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또 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배스킨라빈스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서 모든 사업 아이템을 알아보고 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됐는데 당시 학교 선배가 운영하고 있었다.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서 선배한테 인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선배도 인수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서 안 된다고 거절했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선배한테 연락이 왔다. 토론토로 이주를 하게 됐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가 인수했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

초기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처음부터 큰 돈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두 집에서 운영하면 수입은 반으로 줄지만 여유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2000년 초반 가게를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던킨도너츠(Dunkin Donuts)가 배스킨라빈스를 인수하게 됐다. 그러면서 던킨도너츠와 배스킨라빈스를 같이 운영해야 하는 정책이 생겼다. 그런데 두 곳을 함께 운영하면 비용이 훨씬 많이 든다.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 두 곳을 같이 운영한 다른 가게가 장사가 되지 않았다. 캐나다인들이 상당히 보수적이라 변화를 싫어한다. 던킨도너츠가 팀홀튼(Tim Horton)의 벽에 막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기존 배스킨라빈스 가게들이 굳이 던킨도너츠를 같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가게 매출도 오르기 시작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굉장히 운이 좋았다. 지금은 여름의 경우 종업원이 8명 필요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

배스킨라빈스의 장점은 무엇인가?

"일이 굉장히 편하고 재고 걱정이 없다. 여름에는 1주일, 겨울에는 2주일이면 다 팔린다. 오후에는 손님들이 줄 서서 기다릴 정도다. BC주에서 매출 1위다. 배스킨라빈스는 본사에서 보호를 해준다. 이미 배스킨라빈스가 있는 지역에서는 어느 정도 반경 내에 다른 배스킨라빈스가 들어올 수 없다. 이 근방에서도 배스킨라빈스는 이곳밖에 없다. 그래서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온다."

동업의 장점은 무엇인가?

"반만 투자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친구와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믿고 맡길 수 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다. 애들이 어릴 때는 오전에 항상 애들 학교에 데려다주고 가게 문을 열 수 있었다. 1~2년에 한 번씩 친구와 번갈아 가면서 한국도 방문할 수 있다."

아무리 고교 친구라도 동업을 하게 되면 부딪치는 부분이 있을텐데?

"기본적으로 서로 간섭을 안 하려고 한다. 서로 양보하면 된다. 그리고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둘이서 동업계약서를 만들었다. 의견 충돌이 생기면 동업계약서를 꺼내서 그것에 맞게 진행한다. 동업계약서에는 아내들을 사업에서 완전히 배제한다는 규정도 있다. 아내들이 많이 이해를 해줘서 가능하다. 또 우리 둘이 다른 성향을 갖고 있어서 서로 역할 분담도 된다. 친구는 숫자에 밝다. 그래서 재무나 재고 관리 쪽을 담당하고 난 영업 쪽이나 본사와의 업무 등을 맡아서 한다. 그래도 싸우게 되면 그 때는 골프장에 간다. 우리 둘 다 골프를 좋아해서 심하게 싸운 뒤에는 골프장에 가서 말없이 골프 치고 온다."

업무 분담이나 수입 분배는?

"우리는 모든 것을 정확히 반으로 나눈다. 근무도 하루씩 교대로 한다. 격일로 일을 하고 일주일이 7일이라 금요일은 하루를 반으로 나눠서 일한다. 금요일이 일주일에 한 번 서로 얼굴을 보는 날이다. 보통 가게는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여름에는 오후 10시, 겨울에는 오후 9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1년에 딱 하루 크리스마스에만 쉰다. 동업을 하니까 가능한 것이다. 12월 24일은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이날이 가족들끼리 모여서 파티하는 날이다. 이날은 1년에 한 번 둘이서 작심하고 술을 마시는 날이다."

다른 친구들이 보면 부러워하지 않나?

"서울 보성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우리는 고3때 같은 반이었다. 졸업 후에도 계속 만나면서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이 부러워한다. 우리는 가족들도 서로 친하다. 친구 아내와도 인연이 있다. 한국에서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동료였다. 그래서 아내들도 서로 굉장히 친하다."

그래도 한 번쯤 고비가 있지 않았나?

"한 번의 고비는 있었다. 지난해 친구가 새로운 사업을 하기 위해 이곳에서 손을 떼고 나갔다. 그래서 1년 동안 혼자 맡아서 했다. 당시 친구와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뻔했다. 하지만 돈은 잃어도 친구는 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원만히 해결됐다. 친구가 7월 1일부터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우리는 똑같이 하는 것이 원칙이다. 예전처럼 똑같이 반으로 나눠서 하기로 했다. 은퇴 후 다른 계획도 생각하고 있지만 배스킨라빈스는 앞으로 10년 정도는 더 할 생각이다."

사업 외에 개인적인 계획이 있다면?

"2000~2003년 자원봉사를 한 적이 있다. 랭리 가정봉사회에서 초창기에 일했었다. 앞으로도 한인커뮤니티를 위해서 다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특히 처음 이민와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잘해왔다. 주변에서 동업은 항상 안 좋게 끝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마음에 약간의 부담이 있다. 나중에 친구와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잘해나갔으면 좋겠고 절대로 가게 때문에 안 좋게 끝내고 싶지 않다. 돈 때문에 친구를 잃고 싶지는 않다. 같이 일을 하면서 안 좋은 면보다는 좋은 면을 더 많이 봤다. 문득 한국에서 떠나올 때가 생각난다. 당시 11월에 영주권을 받았는데 영주권 받자마자 IMF가 터졌다. 그래서 이민을 가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던 중 친구가 2개월 정도 먼저 떠났다. 당시 공항에서 '승범아, 너 올거지?'라며 돌아서던 친구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친구의 그 한 마디를 보고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박준형기자 jun@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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