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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차가운 겨울 마음까지 얼어버린 쓸쓸한 사람들

박준형 기자 jun@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12-23 16:51

살기 좋은 도시 밴쿠버의 또 다른 얼굴 '이스트 헤이스팅스가'를 가다
길바닥에 나뒹구는 담배꽁초와 술병, 코를 찌르는 악취, 마약에 찌든 눈동자들, 반라의 차림으로 유혹의 손짓을 보내는 여성들.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밴쿠버의 이면, 이스트 헤이스팅스가(East Hastings St.)의 거리 풍경이다.


<▲이스트 헤이스팅스가의 사람들. 박준형기자 jun@vanchosun.com>

이스트 헤이스팅스가는 흔히 말하는 빈민가다. 밴쿠버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악명 높은 곳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기승을 부린 12월 초순의 어느날 헤이스팅스가 곳곳은 노숙인, 마약중독자, 알코올중독자, 매춘부 등으로 가득했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다.

낮 12가 조금 지난 백주 대낮이지만 이미 약에 취하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흐느적거리며 서성이고 있었다. 대부분 며칠은 얼굴에 물을 대지도 않은 듯한 외모에 군데군데 찢어진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다. 말을 걸어보려 다가갔지만 멀리서부터 욕을 하고 저리 가라는 손짓을 하며 적대감을 보였다. 그들의 옆을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 뿐인데도 마약과 쓰레기 냄새가 뒤섞인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마구잡이 낙서가 가득한 골목골목에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이 보였다.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한 남성은 웃통을 벗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약에 취해서인지, 술에 취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거리를 활보했다. 한 손에 담배를 쥐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흥정을 벌이는 사람들, 자리 다툼을 하며 말다툼을 벌이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이스트 헤이스팅스가 골목의 노숙인. 박준형기자 jun@vanchosun.com>

헤이스팅스가를 따라 걷다가 메인가(Main St.)에 이르자 길게 늘어선 줄이 눈길을 끈다. 교회에서 제공하는 무료 점심을 먹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유일하게 음식다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다. 헤이스팅스가 곳곳에 자리한 교회에서는 매일 이들을 위한 식사를 대접하고 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발걸음은 일제히 '드러그(Drug)'라고 적힌 곳을 향했다. 마약주사시설이다. 헤이스팅스가에는 정부에서 제공하는 마약주사시설이 있다. 이곳에서는 일회용 주사기와 알코올솜, 식염수, 고무밴드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 마약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오히려 안전하게 마약을 할 수 있는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시설 관계자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며 "마약을 제외한 일회용 주사기를 비롯한 각종 물품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을 열고 시설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일회용 주사기를 팔뚝에 꽂고 있는 사람들, 이미 환각에 빠져 횡성수설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대기실에는 수십 명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기다림에 지쳤는지 소리를 지르며 몸을 휘청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화려한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은 남성도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스트 헤이스팅스가 교회 앞에서 잠자리를 준비하는 사람들. 박준형기자 jun@vanchosun.com>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3시가 넘어가자 거리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밤을 나기 위해 일찌감치 자신만의 피난처로 자리를 이동했다. 이들에게 최고의 안식처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임시 거처다. 헤이스팅스가 주변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는 따뜻한 침상과 이불, 간단한 음료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하지만 거리의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기에 임시 거처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밴쿠버시(市)가 마련한 총 4곳의 임시 거처는 문을 열자마자 수용 인원을 초과했다. 나머지는 하는 수 없이 차가운 거리로 돌아가야 한다. 낡은 침낭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갈기갈기 찢어진 이불과 옷가지를 덮고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

거리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차갑기만 하다. 안타까운 마음에 "헬로"라고 웃으며 다가갔지만 "당장 꺼져"라거나 "돈 좀 달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던 한 남성은 갑자기 욕설을 하며 손에 있던 쓰레기를 집어던졌다.

오랜 거리 생활에 지쳤는지 마음까지 차갑게 식어버린 듯하다. 밴쿠버경찰(VPD)에 따르면 헤이스팅스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대략 300명으로 추정된다. 외롭고 갈 곳 없는 이들 300명에게는 차가운 바람이 더욱 스산하게 느껴지는 겨울이다.

박준형기자 jun@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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