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배 파탈´ 신드롬
드라마 ´화려한 유혹´의 정진영, 치명적인 중년 매력으로 인기
젊어보이게 입는 ´꽃중년´ 넘어 매너·지성미·품위 등 갖춰야
“영혼의 근심은 인생의 얼룩과도 같다는 말이 있지. 어쩌면 그 얼룩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어.” 회사원 최혜영(32)씨는 최근 어느 화요일 밤, MBC 드라마 ´화려한 유혹´을 시청하다가 이 대사를 내뱉는 배우 정진영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 할아버지, 매력 있다~!”
대한민국이 ´할배 파탈´의 치명적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이 정체불명 조어는 ´할배+파탈´. 할아버지를 가리키는 강원·경남 방언과, 남자를 감미롭게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악녀(惡女)를 뜻하는 프랑스어 팜 파탈(Femme fatale)의 합성어다.
드라마 ´화려한…´에서 대한민국 정계를 흔드는 최고 권력을 가진 68세 강석현 전 국무총리를 열연하는 정진영이 ´할배 파탈´의 선봉에 서 있다. ´할배´는 맞지만 치명적 매력이 뚝뚝 흐른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극 중 강 전 총리는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악행도 불사하는 흠 많은 인물. 하지만 흥분한 정적(政敵)을 상대할 때, 사랑하는 여인을 대할 때 드러나는 단정한 몸가짐과 예의를 갖춘 말투에서 지성미가 뚝뚝 묻어난다.
강 전 총리와 결은 다르지만 보수 논객(論客) 전원책 변호사를 향해서도 ´할배 파탈´이란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젊은 층과는 사뭇 다른 보수적 견해와 주장을 펼쳐 ´꼰대´(늙은이라는 은어) 소리도 듣지만 논리와 유머,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태도에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옷차림, 머리 모양, 안경 등 겉모습을 가꿨다. 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게 핵심이었다. 한때 우리 사회를 휩쓴 단어 ´꽃중년´엔 몸에 꼭 맞는 하늘색 정장에 화사한 오렌지빛 모자를 쓴 패셔니스타 5060의 모습이 겹쳤다. 하지만 이젠 외모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내면에 무엇을 축적했는지, 나 아닌 남을 어떻게 대하는지 같은 매너, 태도, 지성미에서 매력을 찾는다.
여기엔 ´품격´을 향한 갈망이 있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는 “독설과 악에도 사람마다 격이 있고 질이 다르다는 걸 우리 사회가 구분할 판단력이 생겼다는 뜻”이라며 “아주 긍정적인 흐름으로 볼 수 있고 소중히 여겨야 할 조짐”이라고 했다. “그동안 먹고살기 바빠 상대를 존중하고 기품 있게 대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일상에서 욕하고, 행동이 상스럽고, 예의가 없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 사회상에 대한 반대급부로 품위 있게 상대를 대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할배 파탈´에 녹아들었다”는 분석이다.
영국 드라마 ´다운튼 애비´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 그랜섬 백작 등 등장인물들이 그려내는 귀족적 품위에 미국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시카고 선타임스는 “설사 진흙탕에 빠져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캐릭터들 덕분에 이 드라마가 사랑받는 것”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인간의 품격´이 올 초 국내외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집중하는 이 책에서 저자는 “인격은 내적 투쟁 과정에서 길러진다”고 했다. “자제력을 발휘한 수천 번의 작은 행동, 나눔, 봉사, 우정, 정제된 즐거움 등을 통해 더 절도 있고, 사려 깊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얘기다. ´할배 파탈´의 핵심을 꿰뚫는 말이다.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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