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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황제 'Elvis Presley'

밴쿠버 조선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02-09-27 00:00

팝 컬쳐 /


재헌이의 팝 컬쳐 따라잡기

팝의 황제 'Elvis Presley'

1956년 처음 등장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그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적합하지 못하다', '저질이다' 등의 비난을 받았지만, 전 미국인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매력적인 외모, 파격적인 무대매너, 마력과 같은 목소리, 그리고 아무도 상상 할 수 없었던 춤. 당시 미국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며 방영 중이었던 'Eddy Sullivan 쇼'(이후 비틀즈, 롤링 스톤스 등이 출연)의 사회자 에디(Eddy)는 엘비스의 춤을 보고 '물란하다'고 여겨 그의 공연 모습을 허리 윗부분만 촬영, 미국 전역에 방영하였다.

1954년 흑인 감성을 가진 백인 가수를 찾고 있었던 샘 필립스(Sam Philips)에 의해 발굴된 엘비스는 흑인 음악을 가장 성공시킨 백인 가수로, 락앤롤 음악을 들고 나오면서 온갖 비난과 찬사를 함께 받았다. 그는 비틀즈, 마이클 잭슨 이전의 팝 음악의 기둥이자 대혁신을 일으킨 팝의 제왕(king) 이었다.

그는 1977년 8월 16일 그레이스랜드(Graceland)에서 사망했으며, 사망 원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디스코 열풍과 음악 산업화, 펑크 음악의 등장과 같이 록 앤롤 음악의 종점을 찍는 음악계의 상징적인 일이기도 했다. 2002년 엘비스 프레슬리의 25주기를 맞으면서 'Heartbreak Hotel' 'Surrender' 'Hound Dog' 그룹 JXL 의 'A Little Conversation' 의 리믹스 곡 등 30곡이 담긴 엘비스(Elvis) 앨범이 발매되었다.

엘비스는 131개의 앨범 및 싱글 음반, 33개의 영화 출연, 10억 만장 이상의 판매고, 114곡의 빌보드 'Top 40'를 기록했고, 보수적인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로 부터는 인정 받지 못했지만 대중에게는 팝의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남아있다.

정재헌 (juliochung@hotmail.com)
나이 24세. 브라질 상파울로 태생으로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현재 센트럴 미시간 대학(Central Michigan University)의 경영학 과정 재학 중. 음반 수집 및 음악 감상 매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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