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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블루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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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0-08-10 09:00

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푸른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어 보고 탐스러운 구름을
양손 가득 움켜잡는 시늉을 해 본다. 캐나다의 여름은 무르익고 세상은 온통 초록빛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은 마주할 때마다 경탄을 자아낸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연의 혜택을 받아 누리며 신의 은총이 우리의 삶을 채우고
있음을 확신한다. 순간, 주책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동생이 무척 보고 싶다. 요즘 들어 별일도 아닌데 마음이 울적해지고, 한 가지
일에 깊이 집중하기가 어렵다. 코로나19로 직장에 나가지 못하게 되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은데...... 마음이 느긋해 지던 목요일, 고마웠던 금요일, 하고 싶은 게 많아
고민이던 토요일도 사라지고, 단조로운 하루가 무한 반복되고 있는 기분이다. 코로나블루의
증상이 내게도 미친 것일까?
 
코로나블루는 코로나19와 그로 인해 생긴 우울감이 합쳐져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과 장기화는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을 집어삼키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마저 병들게 하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와 고립감, 경제활동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연일 커지고, 그에 따른 사람들의 보편적 우울감 또한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는 충격적인 소식은 심리적 불안을 부추기며 공포심을 조장한다.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스트레스가 코로나19로 회색빛 먹구름을 몰고 와 우리를 어둠 속에 침잠하게
한다. 이것은 악성 전염병의 창궐로 고통과 혼란 속에 놓인 전 세계 공통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전문가들은 정신적인 평온을 유지하도록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자기관리에 더욱 힘쓰라고
강조한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감염병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의 평상심을 유지할지 고민하며
코로나 사태 이후의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인지하지 못했을 뿐 나 또한 코로나블루의 늪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울적한 기분에 젖을
때가 잦았고, 깊이 잠들지 못하는 밤이 늘어갔다.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는 가족과 인정이
넘치는 이웃이 없었더라면 침울한 현재 상황을 이만큼이나 잘 견딜 수 있었을까? 고국의
부모님이 걱정되고 그리울 때면 그것을 먼저 알고 위로해 주는 남편이 있었고, 지루할 틈 없이
나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며 함께하기를 원했다. 그런 아이들과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베이킹에 도전했다. 음식을 만드는 일에는 도통 재주도, 흥미도 없지만,
그들과 놀이를 하듯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못난이 빵을 만들어 먹으며 잠시나마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이들의 얼굴 위로 그동안 만든 단팥빵, 크림빵,
모카빵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것 같아 절로 웃음이 난다. 평소처럼 얼굴을 마주 보고, 교제할
수는 없었지만, 이웃들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살아있음을 알리고 안부를 물어왔다. 똑똑 노크
소리에 나가보면 문고리에 큼지막한 봉지가 걸려있었다. 그 안에는 집에서 기른 상추, 깻잎,
고추가 들어있기도 했고, 갈비탕이나 감자탕, 달콤한 케이크와 달고나가 담겨 있기도 했다.
정성스러운 음식을 남겨두고 총총히 사라지는 이웃들의 뒷모습을 보며 뻥 뚫린 듯 허전했던
마음이 조금씩 매워졌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며 완성했다는 마카롱에 온기가 남아있는
꽈배기와 크로켓을 차에서 건네 주고 돌아서는 지인도 있었다. 어려울 때도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블루가 나의
일상을 불안과 우울로 규정하려 들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나로 다시 웃게 하고
살아나게 했다. 모두가 똑같이 어려움을 겪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분투 중이지만
우리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관심에 기대어 이 시련을 극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울했던 마음이 걷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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