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AFP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AFP 연합뉴스

프랑스와 터키 양국 정상이 외교상 전례 드문 거친 설전을 주고받으면서 이미 냉각된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반(反)이슬람’ 노선을 강조하자, ‘이슬람 수호신’ 역할을 자처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공격적인 표현을 동원해 마크롱을 비난했다.

24일(현지 시각) 에르도안은 TV 회견에서 “마크롱은 이슬람과 무슨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자국 내에서 소수 종교(이슬람교)를 믿는 수백만명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국가 정상에 대해선 ‘정신 감정을 먼저 받아보라’는 말밖에 할 게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20일에도 마크롱을 겨냥해 “자신의 실패를 감추기 위해 이슬람을 공격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이런 험한 말을 퍼붓는 이유는 마크롱이 최근 “이슬람 분리주의와 싸우겠다”는 방침을 강조한 데 따른 것이다. 마크롱은 지난주 무슬림 극단주의자 소년에 의해 프랑스 중학교 교사가 참수된 사건과 관련해 “자신들의 법이 공화국(프랑스)의 법보다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상이 문제”라며 이슬람교를 비판했다. 앞서 지난 2일 마크롱은 히잡을 비롯한 종교적 상징물을 공공장소에서 착용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를 한층 강화한 법안을 소개했다.

‘정신 치료’가 필요하다는 에르도안의 독설에 대해 엘리제궁은 성명을 내서 “지나침과 무례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리는 모든 면에서 위험하기만 한 에르도안의 정책이 폐기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엘리제궁은 터키 주재 프랑스 대사를 파리로 불러들여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는데, 이런 조치는 양국이 외교 관계를 맺은 이후 처음이라고 일간 르몽드가 보도했다. 지난해 연말에도 마크롱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내부 분열에 대해 “나토가 뇌사 상태”라고 비판하자, 에르도안은 “먼저 당신이 뇌사 상태가 아닌지 확인하라”고 했다.

두 정상이 감정 싸움을 벌이는 이유는 이슬람교를 둘러싼 자국 내 민심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반복되는 무슬림들의 테러에 분노한 국민을 다독이기 위해 강경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맞서 이슬람 보수파를 지지층으로 삼는 에르도안은 이슬람교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이달 들어 교전을 거듭하고 있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을 놓고도 마크롱은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 편에 서서 에르도안이 같은 이슬람교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을 돕는다고 비판했다. 마크롱은 리비아와 시리아 내전에서도 반(反)이슬람 세력을 지원하고 있고, 이런 마크롱을 에르도안은 “이슬람의 적”이라며 비난한다.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놓고도 두 정상은 충돌하고 있다. 올여름 터키는 동(東)지중해에서 천연가스 탐사 활동을 하며 그리스와 영유권 분쟁을 벌였다. 인근 해역에서 그리스와 공동으로 천연가스 시추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프랑스는 그리스 편을 들며 터키를 압박했다.

마크롱이 이슬람교에 대해 강경 발언을 이어가자 중동에서는 프랑스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요르단, 쿠웨이트, 카타르 등에서 프랑스산 치즈나 잼을 더 이상 판매하지 않겠다는 상점들이 목격됐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파리=손진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