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와 세바스티안
권은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2020년 봄, 캐나다에서도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전국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 필수적인 사회 경제 활동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활동이 금지되었다. 봄방학이 시작되던 3월에 닫았던 학교 문은 9월 새 학기에나 다시 열리게 되었다. 지난 6개월간의 생활은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는 실감하게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며 두 팔로 서로를 감싸 안을 수 있고, 얼굴을 마주 보며 웃을 수 있었던, 목청 높여 노래를 불러도 누구 하나 눈치 보지 않았던 그때가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곤 한다. 지금의 학교 풍경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온라인 수업을 선택한 아이들은 집에서, 대면 수업을 원하는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학교에 온다. 학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모든 교사와 아이들은 엄격한 방역 수칙에 따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하기에 전과같이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잘 쓰고 생활한다. 어른도 이렇게나 힘든데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할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마스크 쓰고 생활하기 힘들지 않니?” 하고 물으면 하나같이 괜찮다며 견딜 만하다는 몸짓을 지어 보인다. 지금의 일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학교를 옮겨 일하게 되었고, 갑작스러운 코로나 제재로 헤어지게 되었던 우리 반 아이들과도 쉽게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활동적이고 개성 강하던 꼬맹이들의 얼굴이 떠오를 때면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멀어지게 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몇몇 아이들이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는 소식을 동료 교사에게서 전해 들을 때면 더 그들이 생각나곤 했다. 우연한 기회에 전에 일하던 학교에 가게 되었다. 교실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낯선 시선에 눈길이 갔다. 열린 문틈으로 얼음처럼 굳어 있는 녀석이 보였다. 세바스티안이였다. 마스크를 했다지만 나는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작년에 우리 반이었던 쌍둥이 형제 중 하나였다. 그의 비취색 눈과 마주치는 순간 뜨거운 불꽃이 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리고 그에게 달려갔다. 아이의 눈이 반달이 되어 웃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아줄 수 없는 현실을 애탄 하며 우리는 마음으로 뜨겁게 재회했다. “잘 있었니? 너무 보고 싶었어?”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바스티안이 입을 열었다. “이제 돌아온 건가요? 우리랑 여기 있는 건가요?” 아이는 짧은 순간에도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너희와 함께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단다. 미안해.”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세바스티안은 그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맥스가 다쳤어요. 많이 울었어요.” 그리고 그는 맥스에게 내가 왔다는 소식을 전하러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에서 낯익은 얼굴들과 마주칠 때면 우리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소리를 지르며 반가워했다. “어, 주디? 주디……” 금발의 곱슬머리 헨리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한없이 높였다. 세미는 멋쩍은지 싱글벙글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자랐고, 사뭇 의젓해 보였다.
나에 대해 가장 궁금해했다던 맥스는 의외로 쭈뼛거리며 선뜻 앞으로 나오지 못했다. 맥스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많이 아팠니?”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놀이터에 갔다가 정글짐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고, 여러 번의 수술을 했었다고…… 깁스를 어제야 풀었다며 아픈 팔을 내어 보였다.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 보여서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얼마나 아팠을까 싶은 마음에 그의 작고 가는 팔을 잡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맥스는 괜찮다는 듯 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고는 물었다. “이제 우리랑 같이 있는 거지? 나는 선생님이 우리 집에 놀러 왔으면 좋겠어. 내가 전에 말했었잖아.”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장난꾸러기 쌍둥이 형제, 그들 때문에 진땀을 뺐던 지난날이 까마득했다. 처음 맡게 된 유치원생 아이들이 마냥 부담스럽고 힘겨웠는데 우리가 함께했던 날들이 마음 따뜻한 추억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고맙게도 솔직하게 드러내 보였다. 함께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상대의 애정과 관심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들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느끼고 있는 듯했다. 맥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어벤져스 중 헐크를 좋아하는 자신을 위해 초록색 종이로 마스크를 만들어 씌워 주던 검은 머리의 선생님을. 헐크 가면을 쓰고 헐크 스매시를 날리는 꼬마 히어로 맥스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져 주는 주디가 있었다는 것을. 내가 했던 크고 작은 행동들이 자신을 향한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듯 큰 소리로 울어내던 세바스티안. 그런 그를 세발자전거에 태우고 뒤에서 세게 밀어주며 달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는 금세 울음을 그치곤 했었다. 슬라임을 만들고, 블록으로 탑을 쌓고, 달리기 시합을 하며 보낸 지난 시간이 촉촉한 단비가 되어 굳은 마음을 적시는 듯했다. 잠깐이지만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기쁨에 가슴 벅찼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배웅하며 눈높이를 낮추어 인사를 건넸다. “건강해야 해. 높은 데는 올라가지 않는 게 좋겠지?” 쌍둥이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말을 했다. “우리랑 여기에 있으면 안 돼요?” 금발의 까슬까슬한 까치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린 곧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말해 주었다. 그들의 맑은 눈망울 속에 아쉬움이 찰랑거렸다. 쌍둥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천방지축이던 쌍둥이 형제가 낯설게 느껴질 만큼 훌쩍 자란 기분이 들었다. 일을 마치고 학교 문을 나오려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복도에 놓여있는 사물함에서 맥스와 세바스티안의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가방에서 노란색 스마일 스티커를 찾아 아이들의 이름 옆에 붙여 주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웃는 거야. 스마일 어게인’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사람과 사람이 시간과 공간, 마음과 추억을 나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 가운데에는 기쁜 뿐 아니라 슬픔도, 오해도, 피로도 있었지만 깊은 공감과 애정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더니 선생님의 수고와 사랑을 알아주는 꼬마 녀석들 덕분에 마음이 마시멜로처럼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다. 나와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의 아이들, 그들과 함께한 순간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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