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가슴에 있는 친구

강숙려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0-12-21 08:39

려 /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장


세상에는 종류의 벗이 있다고 했다.

그대를 사랑하는 , 잊어버리는 , 미워하는 벗이라 했다.

 

 다람쥐 형제가 놀다간 나뭇가지에 밤사이 눈이 와서 소복이 쌓여있다. 뜨거운 커피

놓고 새삼 유년 시절의 애틋한 그리움이 솟구치다 보니 이런저런 모습들이 떠오르는

침이다. 벗이란 무엇으로 남는가! .

 

 애틋이도 잊어 사랑으로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우린 어린 시절 아래 윗동네에서 자랐었

. 철없던 시절 개울에서 물장구도 치고 가재도 잡으면서 푸른 여름을 보냈으며 가을 햇살

익은 사과처럼 싱싱한 유년과 더불어 사춘기를 맞았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은 어디에서

나온 심사였는지 서로를 보면 쑥스럽고 부끄러워져 숨고 슬슬 피해 다니곤 했다.

사춘기의 미묘한 감정이 만들어 내는 숨바꼭질이었을 것이다. 숨으면 찾아내고자 하는 술래

처럼 먼발치에서 가슴을 설레기도 하면서 끝내 찾아낼 없도록 꼭꼭 숨곤 했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내면서 우리들은 고향을 떠나 진학하게 되었었다. 부산으로 진주로 흩어

지면서 하나둘 잊어가고 있었다. 새로운 곳에서는 새로운 만남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오뉴월 햇살처럼 젊은 날의 세월은 길기도 하였다. 나는 터널을 빠져나온 후의 새처럼

참으로 새로운 하늘을 사랑에 빠졌고 지금까지의 모든 들이 사랑을 위하여

존재한 것으로 여겨졌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존재를 변화시키고 이제는 추억만 남긴다.

 

 그토록 애절히 사랑을 호소하던 K, 한마디 말도 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창가에 편지를

밀어 넣던 J, 언제 어디서나 내가 가는 곳에는 눈물 가득한 크다란 눈으로 바라보고 섰던 S,

종이학을 접어서 내가 다니는 길목에 뿌려두던 M, 민방위 훈련 깜빡 생각에 총알을

맞을 하였다면서 대학 노트 권을 내밀었었다. 깨알처럼 주일간 훈련 자기 연정

담은 마음이라 하였다. 결국 연서마저도 받지 않아 그를 슬프게 했지만 사랑을 위하여

젊음은 눈물겹도록 집착하고 자기표현과 감정을 전하려 하였었다. 꿈많은 처녀로서 누구나

그러했듯이 또한 젊은 날의 자존심을 대쪽 같이 새우며 푸른 초원에서 바람처럼 날아올

같은 아름다운 왕자를 꿈꾸며 결백하게 마음을 가꾸고자 했다. 그날에 펼칠 예쁜 마음을

위하여 이슬처럼 맑아 있고 싶었던 것이다. 드디어 나는 기다리던 왕자를 만났고 행복한 젊은

날을 꿈처럼 살았었다. 세상은 공평한 것인가. 신은 질투가 많다고 하였던가. 이제는 신이

임져야 부분만 남은 것이다. 나는 홀로 나비가 되어 날다가 서러운 마음을 노래하는 시인

되었고 세월은 그렇게 갔다.

 

 

 어느 나를 찾아낸 M, 눈물처럼 다가왔다. 손을 잡고 연민의 가슴을 눈물로 바라보

반백의 철민. 잔설을 이고 저명인사가 되어 있던 철민. 그러나 앞에서 울고 있는 철민은

물장구치고 돌맹이 들치며 가재 잡던 개구쟁이 사내아이 철민이였고 중학교 입학하

영어 알파벳을 적어서 손에 쥐어주고 달아나던 까까머리 소년 철민이었다. 가을

들녘에서 보랏빛 구절초 아름을 안겨주며 멀리 이사 가게 되었다고 눈물처럼 말하던

철민이었다. 다시 찾은 친구는 그토록 아름다운 우정으로 나를 대우해 주었다. 그는 내게

힘이 되려 노력하고 있었다. 행여라도 나의 자존심을 다치지 않으려 최선의 배려를 하는

보면서 나는 모르는 그러나 속마음이야 어찌 고맙지 않았겠는가.

 

 친구란 친구로서의 인연으로 살아야 하나 보다 싶었다. 그렇게 봄은 가고 여름도 가고

가을도 어김없이 순리대로 오고 갔다. 세월이 약이라고 아무도 치료해 없는 것들은

세월이 알아서 감싸 주었다. 내가 세월을 계산하는 데는 아직도 이상한 버릇이 있다. 그래서

가끔 자신에게 되묻곤 한다. “아직도 그것 밖에 안되었어? 혹은 “벌써 그렇게나 되었나?

의문사에 대한 시간 계산으로 기분을 나누고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자의

마음일 때와 후자의 마음일 기분이 달라져 있고 내가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를 혼돈하지

않아야 하기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하여 길을 떠나곤 했다. 혼자 길을 떠나다 보면 홀가분하여

좋기도 했지만 때론 돌아오는 길목에서 눈물이 때가 허다했기에 그런 날이면 곁에 앉아

주던 없던 자리여도 친구란 좋은 것이구나 여겨지던 날이 있었다. 술도 못하고 부루

곡도 춘다고 질책도 받았지만 조용한 물가 찻집에서 애잔한 눈물의 시간을 넘길

있게 지켜보아 주기만 하여도 위안이 되던 날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세월은 가고 머리에

이슬이 내리는 희수의 언덕에서, 향수에 젖듯 아름다웠던 귀한 벗들이 가슴에서 소리를 낸다.

 

 나를 잊어버리지 않는 , 미워하지 않는 , 그리하여 사랑하는 벗이 하나쯤 있다면 가슴에

휘파람을 일으키는 허허한 삶에서 위안이 되는 일일 것이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장미의 유월 2021.07.05 (월)
강숙려 / 사)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장미의 향기가 아름다운 것은자기만의 색을 가진 그 까닭이다.사람에게 향기를 입히고 싶은 그 까닭이다. 피어나는 장미의 유월사람들은 모두 장미가 되어 활짝 피어나고먼데 그곳에도 장미가 피고 있을지마냥 궁금한 유월은 달큰한 향기를 보낸다. 장미에 가시가 있는 까닭은하나쯤 지키고 싶은 이유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까닭이다.바라볼 수 있는 눈을 주신 신에게 감사하지 못하고내 손에 쥐고...
강숙려
강숙려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많은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또는 흘러가며 더러는 잊혀지고 더러는 오래오래 더불어 우정을 나누며 살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슴을 맞대고 흉금을 털어놓을 수 있고, 정당하게 충고할 수 있으며 때맞추어 도우며 함께 걸어갈 친구를 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봄비처럼 촉촉이 만물의 소생을 도우듯 가슴을 열어 맞을 수 있는 친구 한두 명 있다면, 인생은 풍성한...
강숙려
...
강숙려
가슴에 있는 친구 2020.12.21 (월)
강숙려 /  사)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장세상에는 세 종류의 벗이 있다고 했다.그대를 사랑하는 벗, 잊어버리는 벗, 미워하는 벗이라 했다.  다람쥐 형제가 놀다간 나뭇가지에 밤사이 눈이 와서 소복이 쌓여있다. 뜨거운 커피 한 잔을 놓고 새삼 유년 시절의 애틋한 그리움이 솟구치다 보니 이런저런 모습들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벗이란 무엇으로 남는가! .  애틋이도 못 잊어 사랑으로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우린 어린 시절...
강숙려
코비-19의 너무 길어진 시간이 이제 인간의 존엄성까지 잃어가게 하고 있다.곳곳에서 들려오는 비양심적이고 폭력적인 사건들은 이 시대가 주는 반항이 아니겠는가?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성세대도 어렵지만 차세대들에게 닥칠 염려를 우리는 아니할 수가 없다.모든 문명이 발전의 과정으로 치솟고 옛것을 떠나 새것만 추구한다면 세상은 어디로 갈까? 남는것은 물질과 가꾸지 못하는 양심 쓰레기뿐이지 않을까 하는 맘이 든다. 세상에는 새로운...
강숙려
저만치서 2020.08.10 (월)
세월은 꼭 기나긴 기찻길 같지만때론 잠깐 스쳐 간 안개 같기도 하고또랑물 하나 첨벙 건너온 것 같기도 하니내게도 노랑 파랑 무지개 떴던 날도 있었던 일이제 고희에 앉아서 꽃동네 꿈 쯤은 꾸어도 되리누가와 말하면나는 꽃처녀라 향기라 사월의 푸른 잎새라 하리누가와 책責하면용서하라 나도 참 너 같았느니라 하리저만치서 앞서가는 노을에촘촘히 꽃 편지 띄운다.(202002)
강숙려
침묵의 언어 2020.03.09 (월)
  “세상에 눈보다 게으르고, 손보다 빠른 것은 없단다. 아이구 내 손이 내 딸이구나.” 젊은 엄마 목소리 귀에 쟁쟁한 한나절   한 소쿠리 깔 양파를 들여놓고 저걸 언제 다 까나 마음이 한 짐이더니 눈물을 한 종지 흘리고 서야 엄마 그리워 눈물인지 아픔인지 가슴 가득 아려온다   창밖만 응시하고 계신 아흔일곱의 내 엄마 아파야 가는 저승길 나풀나풀 댕기머리 시절 그리우신가 오래전 먼저 가신 아버지 그리우신가 말 없는...
강숙려
처음처럼,첫 마음으로 시작하고자 하는 순수다첫 사람을 만나고첫 경험을 나눌 때 빛났던 태양흠하나 없이 하얀 날은 순수의 첫 날이었다 영원을 꿈꾸던 순수는 말간 물거품으로 날아갔다 해도그늘을 두지 말거라 그늘이 없는 하늘은 어지럽다봄날은 늘 그러했듯이 바람 부는 곳으로 가고가고 보면 오는 것이 쓰다 할지라도그리하지 아니할지니사람은 원래 외로운 것이다 별은 왜 눈물을 흘릴까첫눈 내리는 강변에서 피리를 불자 순수를...
추정강숙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