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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과 갱조각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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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3-01 08:52

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캐나다에서 어린아이들과 살아가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원하던 것을 얻기도 하지만, 또 많은 것을 잃는다. 그중 하나가 한국인으로 서의 정체성이리라. 특히 어린 아이일수록 나와 가지는 문화적 배경의 간극이 진짜 좀 크다. 즉 내가 아는 한국과, 내가 아는 한국어, 내가 아는 한국 문화는 아이들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쉽다.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한국어로 대화를 하고는 있지만, 결코 아이들은 알 수 없으리라.

 이런 고민을 하는 터라 집에서는 꼭꼭 한국어로만 대화하고,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질문을 하면 한국어로 물어보라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 정도가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당연히 이 정도로는 아주 많이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를 보던 아이들이검정 고무신이라는 한국의 애니메이션을 접했다. 이 경험은 그리고 참으로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검정 고무신 1950년부터 1970년대 전반을 배경으로 하는 과거 한국의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다. 나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학창 시절인 90년대 곧잘 재미있게 보던 만화였는데, 유튜브를 통해 오랜만에 다시 보니 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 후 아이들과 함께 앉아 자주 TV로 함께 영상을 보며 도란도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아는 한 설명을 해주기도 했고, 아이들은 궁금한 것들이 엄청 많았던 것 같다.

 

“똥 퍼 아저씨는 저걸 어디다 버려요?”

“연탄 따뜻해요?”

 

주인공의 집에 셋방살이 하는 인분을 치우던 아저씨, 주인공의 부모들이 연탄을 갈아 끼우는 모습, 어린 주인공들이 집에 있는 고물들을 몰래 가지고 가서 엿과 바꿔 먹는 모습 등을 보며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했다. 내가 그간 수많은 말로 이야기를 해 준 것보다, 하나의 영상이 주는 감동과 이해의 크기가 훨씬 더 커 보였다. 그 중에서도 고물상에게 고물을 내어주고 엿을 바꿔서 먹으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더니, 아이들이 엿이 먹어보고 싶다고 하더라.

 

“엄마, 엿 저도 먹어보고 싶어요. 엿 맛있어요?”

 

 문득 아이들이 태어나서 지금껏이라는 것을 접한 적도, 맛을 본 적도 없음을 깨 달았다. 나는 어려서 바쁜 부모님 대선 할머니께서 봐주셔서 예스러운 음식들을 쉬이 접해왔고, 좋아했다. 엿이며, 한과, 약과, 떡 등의 전통 음식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회를 채 주지 못했던 것을 알았다. 아이들에게 한국적인 것을 배울 기회를 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엿이 너무 먹고 싶다고 졸라대었고, 나는 마침 엿을 살 기회가 있어 한국산 갱조각엿과 땅콩 엿을 구매했다. 아이들이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찾던 하얀 쌀 엿은 도통 구할 수가 없었다. 특히 엿을 잘라 구멍의 개수와 크기를 비교하던 것을 보며 엄마가 그 엿을 구해 오길 바라던 아이들에게는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다른 엿이라도 쥐여주며 맛을 보라 했다.

아이들은 엿을 보자 마자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마치 만화 속에서 보던 신기한 물건을 드디어 만났다는 성취감, 혹은 두근거리는 설렘을 갖는 듯 보였다. 둘이 상자를 받아들자마자 뜯어 그 자리에서 엿을 한입 가득 물고는 연신맛있다를 외쳤다. 별 기대 없이 준 것인데, 이렇게 좋아할 줄 몰라준 내가 약간 쑥스러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아! 엄마! 이리 와보세요! 이것 좀 보세요!”

 

그러다 아이가 갑자기 나를 찾았다. 무슨 일이 났는지 목소리가 다급해 가보니, 아이가 입에서 엿을 꺼내 보여준다. 그 엿에 치아 하나 단단히 붙어 나왔다. 그간 엄마에게 알려 이를 뽑는 것이 두려워 숨기려 들던 큰아이의 이가 엿에 꽉 끼어 빠져버렸다. 하루 만에 엿도 맛보고, 엿에 치아를 하나 빼는 일도 겪었다. 모두 너무 황당하게 웃긴 상황이라 크게 웃음이 터졌다.

 

“엄마, 저 앞으로 이 안 뽑아 주셔도 돼요. 그냥 엿 먹으면 이가 빠지니깐요.”

 

 물론 아이의 결론은 아주 멋대로 흐르긴 했지만, 이 하루로 아이들과 같이 공유하는 한국적인 그 무언 가가 하나씩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또 우리는 멀어져가는 간극을 줄이려 TV 앞에 앉아 제2, 3검정 고무신을 찾아본다. 내일은 어떤 경험을 아이들에게 나누여줄 수 있을까. 별거 없지만 작고 소중하게 기대가 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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