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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숙의 자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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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3-08 08:42

송무석  ()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어린 시절 들었던 문주란이 부른 ‘동숙의 노래’에 얽힌 사연을 회원분이 단체 카톡방에 올리셨다. 덕분에 노래가 나오게 배경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도 나오고 구로공단 가발 공장에서 일하며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던 순진한 여성의 비극적 삶이었다. 어쩌다 학원의 총각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글에 나온 대로 그러한 무수한 어린 소녀와 소년, 젊은이들이 가발로 시작한 한국 공업화, 근대화의 주요한 기여자임은 부정할 없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1980년대 중반에도 이어졌고, 나도 직접 경험한 있다.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미혼 여성만 1 명이 넘는 거대한 반도체 기업에서 품질관리 기사로 나는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품질관리부 소속 검사 요원도 500명이 넘을 만큼 세계 1위의 거대 반도체 조립업체였던 회사에서 나는 50명이 넘는 어린 소녀 검사원들과 함께 우주선에도 들어간 고신뢰도 제품 조립 라인의 품질 관리 담당자로 일했다.

 

그곳의 현장 근로자들은 아침 6시에서 저녁 6시까지 근무하는 주간 , 저녁 6시에서 다음 아침 6시까지 근무하는 야간 조로 하루 2교대로 6일을 일했다. 이렇게 1주일에 72시간씩 1 주간 근무를 하고 다음 달은 야간 근무를 하는 식으로 계속 근무를 하였다. 이들 생산 직원과 품질관리부 검사원인 젊은 여성들은 상당수가 중학교만을 마치고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은 회사에서 야간 학교를 보내 주었다. 덕분에 고등학교를 다닐 있었지만, 휴일도 일요일밖에 없던 시절 근무 시간을 마치고, 공부하러 학교에 가야 했다.

 

엔지니어들도 교대로 1달씩 야간 당직자로 근무하였다. 나도 이로 인해 1달간 야간 근무를 적이 있다. 처음에는 야간 근무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열흘쯤 지나니 자도 자도 졸려 과연 야간 근무가 얼마나 건강에 해로운지 체험할 있었다. 그러니, 년이고 달씩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를 돌아가면서 하는 생산직 직원들과 품질 검사원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달간의 야간 근무를 마친 여직원들은 화장도 하기 때문인지 피곤함에 겨워 안색이 누렇게 변해 있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던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반올림이라는 단체는 삼성전자 반도체 직원들이 겪은 백혈병 같은 직업병에 대한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보상을 요구했다. 이런 일이 삼성전자, 현대전자(현재 하이닉스의 전신) 반도체 부문이 생기기도 내가 다니던 회사 직원들에게도 있었다고 본다. 바로, 반도체를 화학 물질로 처리하던 여직원들이 이유도 없이 코피를 쏟는다고 했으니 그들도 이런 직업병을 얻은 것이 아닐까? 그뿐 아니라, 몰딩이라고 반도체를 패키징하는 작업자들이 가끔 졸다가 손을 프레스에 눌려 불구가 되는 일도 발생했다.

 

전태일이 분신자살하면서 근로자의 권익을 요구한 것은 1970년이었으니 10년이 넘은 세월이 지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1 명이 넘는 여직원들은 주당 72시간이 넘는 고되고 노동을 감수해야 했다. , 산업재해를 입고도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미국 Motorola, TI, GE 같은 업체의 제품을 위탁 생산했고, 과정에 받은 가공비가 결국 한국의 산업 자본이 되었다. 그러니, 고등학교도 다닌 어린 10 중후반과 20 초반의 여성들이 우리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되고, 고향 식구들의 생계와 교육비를 감당한 것이 아닌가.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온 이들은 야간 근무조로 근무하면 주간 근무조보다 많고 대졸 신입 사원의 급여와 비슷한 30 만원 가량의 월급을 받았다. 한참 멋을 나이인 스무 안팎의 젊은 여성들은 친구들과 공동으로 방을 얻어 자취하면서 자기들을 위해서는 거의 돈을 쓰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들은 바로는 달에 5 남짓만 자기들이 쓰고 나머지는 시골집에 내려보내 생활비와 형제들 교육비에 보탠다고 했다. 그러니, 꽃다운 아름다운 청춘의 시간을 온전히 희생해서 외화를 벌어 조국의 산업화에 기여하고, 자기 경제를 지탱하고 형제들이 교육을 받게 것이다.

 

당시 나는 담당 부서의 검사원들이 품질관리를 위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다고 30 일찍 출근하게 해서 교육을 하고 시험도 보게 했다. 이런 교육 시간은 근로시간으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도 따질 모르는 그녀들에게 새삼 미안하다. 그들 일부는 시험을 보았다고 속상해했다. 나는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없었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가끔 그들과 단체로 중국집으로 가서 월급으로 자장면, 짬뽕을 주고는 했다.

 

2년을 다니지 않고 퇴사할 여직원들과 송별식을 했는데 그들이 권하는 잔을 거부할 없었다, 모금의 술도 마시는 나였기에 차로 이어지는 회식 자리에서도 굳건히 동료와 상사의 술잔을 거부해 왔다. 하지만, 같이 일했던 그녀들이 권하는 맥주잔은 차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병이 넘는 맥주를 마시고 집에 오자마자 잠들고 말았다.

 

내가 회사 다닐 존재하지도 않던 TSMC 세계 반도체 조립 시장을 호령하고 있는데, 회사는 어찌 까닭인지 경영 부진으로 휘청거리다 다른 회사에 인수되고 말았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바쳐 경제 발전과 가족의 생계에 이바지했던 더없이 순진하고 인내심 크던 많은 젊은 여성들도 이제는 5, 60대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유복한 집안에 태어난 이들처럼 고등 교육을 받고, 편하게 살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들이 흘린 땀과 인고의 시간을 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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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석
동숙의 자매들 2021.03.08 (월)
송무석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어린 시절 들었던 문주란이 부른 ‘동숙의 노래’에 얽힌 사연을 한 회원분이 단체 카톡방에 올리셨다. 덕분에 이 노래가 나오게 된 배경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도 못 나오고 구로공단 가발 공장에서 일하며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던 순진한 여성의 비극적 삶이었다. 어쩌다 그 학원의 총각 선생님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 글에 나온 대로 그러한 무수한 어린 소녀와 소년...
송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