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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의사 가운 대신 아프리카행 티켓, 후회는 없을까

밴조선에디터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3-13 11:04

민사고-서울대 나와 편한 길 접어두고 하고픈 일 찾아 떠나 그래도 그 길이 행복 보증 수표는 아닐 수도

편집자 주

어느덧 기자 생활 9년차. 이대로 살면 행복할까 스스로 물었지만, 선뜻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었습니다. 대학병원 정신과 교수를 찾아가 봤습니다. 그런 고민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하더군요. 그 교수는 지난번에 이런 고민을 안고 썼던 노숙자와 인터뷰 기사를 봤다면서 “이상하게 힐링이 됐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용기를 내 어쩌면 기사라기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이 글을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인터뷰 대상은 중구난방이지만, 행복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져보려고 합니다.

민족사관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나왔다면 아무 걱정 없이 인생 편하게 살 수 있는 코스가 아닐까? 그런데 그런 코스를 밟고도 의사가 되지 않고 아프리카까지 가서 코로나 관련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왜 굳이 편한 길을 두고 그런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는 삶을 택한 걸까. 고백하건대 나도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 대뜸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고맙게도 반갑게 응해줬다.

◇아프리카서 코로나 위험 퍼뜨리는 난민 연구

지난달 서울 강서구 마곡 한 스터디룸에서 올해 마흔이 된 박영수씨를 만났다. 동문이긴 하지만 실제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 스타일부터 범상치 않았다. 박씨는 자신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연구를 하는 학자”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소외된 사람이 많을 것 같은 아프리카로 간 걸까.

박씨의 스펙은 화려했다. 학력만 해도 민사고, 서울대 의대, 서울대 인류학과 석사, 미국 스탠포드 인류학과 박사를 거쳤다. 국가고시에 붙어 의사 면허도 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 영국 런던대(유니버시티컬리지런던)에서 연구원 생활을 거쳐, 지금은 미국 해버포드 대학에서 교수 임용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스탠포드에서 에티오피아의 감염병과 보건사업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면서 아프리카와 인연이 시작됐다”고 했다.

박씨는 “재작년 말부터 아프리카 동쪽 우간다에서 어떻게 난민들이 코로나를 퍼뜨리는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우간다에선 이웃나라 콩고에서 벌어진 내전 때문에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모를 난민들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일이 빈번하다. 그 실상을 자세히 알아보려고 현지인과 함께 난민들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는 연구다.

나라면 당장 코로나가 걱정됐을 것 같다. 하지만 박씨는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대단한 위험을 무릅쓰는 건 아니다”라고만 했다. 조금이라도 더 의미심장하게 포장하고 싶었던 내가 괜히 머쓱해졌다.

박영수 씨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연구하던 시절. 안경을 벗은 모습이 조금 더 아프리카 탐험가 같은 느낌이다. /박영수 씨 제공
박영수 씨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연구하던 시절. 안경을 벗은 모습이 조금 더 아프리카 탐험가 같은 느낌이다. /박영수 씨 제공

◇아프리카행도 결국 ‘재미’를 쫓아간 느낌이었다

이 또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연구활동 중에 찍은 모습이다. 이 사진에서도 면도를 안 해서 그런지 확실히 탐험가 느낌이 더 난다. /박영수씨 제공
이 또한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연구활동 중에 찍은 모습이다. 이 사진에서도 면도를 안 해서 그런지 확실히 탐험가 느낌이 더 난다. /박영수씨 제공


박씨는 특히 에티오피아에 오래 머물렀다. 에티오피아는 6·25 당시 우리나라로 지원군을 보낸 우방이지만, 아직까지 내전이 이어지면서 혼란에 빠져 있는 나라다. 물, 전기, 인터넷이 끊기는 건 다반사고, 계엄령이 내려져 마음대로 집밖에 나가지 못할 때도 있었다고 한다. 위생 문제 때문에 말라리아나 피부병인 옴에 걸렸는데, 치료제를 구하기 어려워 낫는 데도 오래 걸렸다고 한다.

굳이 왜 그런 고생길을 택한 걸까. 박씨에게 물었더니 “일단 별로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자신의 삶에 대단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을 꺼리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뭔가 있어' 보였으니까, 질문을 이어갔다.

박씨는 “이런 진로로 마음을 굳히는 데 영향을 준 사건이 있기는 하다”는 말을 꺼냈다. 의대생 시절 의료봉사 활동을 하면서 어떤 노인을 만났다고 했다. 반지하 방에 홀로 살며 술과 담배만 벗 삼아 평생을 외롭게 살던 노인은 말년엔 암까지 걸렸다. 그런데 마침 박씨의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박씨는 “평소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는 뜻 깊은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커졌다”고 했다.

다소 면접용 멘트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계속 얘기를 듣다 보니 다른 이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어쩌면 ‘재미’를 좇아 이런 길을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박씨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가 너무 재밌었다”고 했다. 살짝 공부 노하우를 물어봐도 “너무 재밌어서 그냥 했을 뿐인데..”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달아 자극 받는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민사고에 진학했던 것도 영향이 있어 보였다. 박씨는 “동기 중에는 카이스트 수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경영학 교수를 하거나, 스탠포드 전기공학과를 졸업해 변호사로 활동하는 등 문·이과와 국내·외를 넘나드는 이가 많다. 통섭적인 교육환경 덕분이 아니었을까”라고 했다. 애초에 보고 자란 게 있으니까 의대에서 인류학과로 전향해, 미국, 영국, 독일로 유학길에 나설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박영수씨가 민족사관고에 다닐 당시 사진이다. 본인 얼굴을 동그라미로 표시해 보내줬다. /박영수씨 제공
박영수씨가 민족사관고에 다닐 당시 사진이다. 본인 얼굴을 동그라미로 표시해 보내줬다. /박영수씨 제공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이 길을? 솔직히 모르겠다”

박씨처럼 의미를 좇는 삶을 살면 더 행복할까? 박씨에게 먼저 지금 행복하냐고 물어봤다. 만나서 가장 듣고 싶었던 질문이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월급도 받으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행복한 게 맞는 것 같아요. 보통은 먹고 살기 위해 원치 않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겸손이 지나친 탓일까, 조금은 애매하게 들렸다. 그래서 그냥 “의사가 될 걸 후회하진 않느냐”고 대놓고 물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솔직히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이 길을 가겠다고 확신하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보통 무언가 다소 만족하지 못하는 면이 있더라도 살면서 의미 있던 선택 만큼은 그럴듯하게 포장하기 마련 아닌가.

박씨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얘기했다. 그는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라 가족이 너무 고생했다”고 했다. 박씨는 38개월 된 아들, 21개월 된 딸이 있다. 박씨가 오랜 시간 학업에 임하는 동안 , 아내가 뒷바라지와 육아를 도맡아야 했다. 당장 이번에도 그는 코로나 때문에 가족은 한국에 두고 혼자 미국으로 돌아간다.

“가족과 편안하게 보내는 게 행복일 수도 있잖아요. 의사로 살았다면 그런 행복은 더 쉽게 누릴 수 있었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선택에 아주 후회가 없다고 말하긴 어렵네요. 누구나 조금씩은 후회를 하며 살잖아요.”

그는 의사가 됐더라면 조금 더 여유롭게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박씨가 지금 받는 연봉은 7000만원 정도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의사를 했다면 훨씬 더 많이 벌었을 거다.

가족 얘기는 사적인 얘기여서 더 자세하게는 물어볼 수 없었다. 어쨌든 “후회가 없다곤 할 수 없다”는 것이 박씨의 결론이었다. 물론 행복이란 것에 정답은 없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아를 실현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행복에 가까운 상태 아닐까 막연히 생각했었다. 박씨는 분명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가족의 희생, 그리고 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선뜻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었다고 확답하진 못하고 있었다.

삶의 의미, 내지는 자아 실현이라는 지향점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바람에 가족, 연인, 친구처럼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을 놓치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물며 돈, 명예, 권력 같은 것들을 행복의 보증 수표로 여기고 목을 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적어도 박씨는 어떤 목표나 꿈을 달성했다고, 행복이 저절로 보상으로 주어진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도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그 마음에 새삼 행복이란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박씨가 “다시 태어나도 당연히 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라고 말했다면, 조금은 가슴에 덜 와 닿았을 것 같다.

◇그냥 끝내긴 아쉬워서···

인터뷰에 다 담지는 못했지만 박씨는 연구 과정에서 코로나에 대해 알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한참 들려줬다.

박씨는 “연구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커지면 코로나 방역망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2014년쯤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사태가 터졌을 때, 일부 나라에선 야생에서 사냥한 고기를 먹는 문화가 ‘에볼라 주범'이라면서 원시 부족들을 몰아세웠다. 그러자 해당 부족들이 반발하면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고, 방역 방침에도 반발했다. 이런 문제가 에볼라 사태가 길어지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박씨는 “우리나라는 뛰어난 시민의식으로 대체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잘 지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방역 수칙을 어긴 집단에 대해선 유독 엄격하지 않은가에 주목했다. 당장 대구 신천지 교인들, 이태원 성 소수자, 일부 교회 교인들이 떠올랐다.

‘나는 열심히 거리 두기 지키느라 고통받는데, 너는 왜 따르지 않느냐’는 신경질적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직접적인 혐오로 드러나면, 미움 받는 집단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음지로 숨어들고, 정부 방역에도 저항하게 된다. 박씨는 “쉽진 않겠지만, 정부가 소외 집단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보듬어서 방역망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해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뻔한 얘기 같지만, 당장 나부터 ‘코로나 혐오'가 크진 않았나 곱씹어 보게 됐다. 어쨌든 코로나 피해를 최대한 막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말이다.

최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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