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무작정 상경

김유훈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5-03 09:34

김유훈 /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무작정 상경” 이란 말은 과거 한국이 가난했던 60-70년대에 흔히 쓰이던 표현이다.

농촌 인구가 80%가 넘었을 시절 가난을 벗어나고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서울과 대도시로 일터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이 시절 “쨍하고 해뜰 날”이란 노래를  부르며 온갖 고생 끝에 자리를 잡게 된 사연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시골 마을에서 한명이 서울로 가서 정착하면 주변에 처녀 총각들이 개나리

봇짐을 싸들고 무작정 도시로 상경을 하였다.  

오늘날 미국과 카나다 이민이 이와 비슷하다 하겠다.  명분은 아메리카 드림 이라 하지만

언어, 인종 그리고 문화가 낯선 땅에서 생존을 위해 온갖 고생을 하며 민들레 홀씨가 되어

이 땅에서 꽃을 피우듯 지금은 이백만 북미주의 교민들이 자리잡고 살게 된 것은 기적과 깉은 일이다.

 

이들이 이민을 올 수 있게 된 계기는 미국과 캐나다의 교민들이 고국을 방문하여 친구나 친지를

만나면 이민 바이러스에  감염이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아내가 고국방문 때 친구들을 만났다. 그후  3명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내 생각에는 아무리 코로나가 무섭다 해도 이민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된다 .

왜냐하면 전 재산을 가지고 가족의 장래를 담보로 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곽선희 목사님의 강의나  설교 때마다 외국의 이야기를 듣고 유학을 오게 되었다 .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이민은 내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었고 넓은 세상을 알게 된 계기라고 본다.

 이민은 과거 한국에서 가졌던 화려한 학벌, 인맥, 체면 그리고 자존심 등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가진 것이 많이 있다면 몰라도 주어진 현실 앞에서 책임져야 할 가족을 위해 험한 일을

마다 않고 일해야 살아갈 수 있다. 

 지난 29 년간의 캐나다 생활은 “무작정 상경”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생존을 위하여 좌충우돌하며 트럭커 기술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19 년 동안

 나와 함께 했던 낡은 트럭에 몸을 싣고 미국과 미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밤낮없이 그리고 눈길,

빗길, 산길을 마다 않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칠순의 노인이 되고 말았다.  

트럭커의 삶은 힘들긴 하였어도 나에게 값진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북미주 넓은 대륙 곳곳을

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많았다.  뿐만아니라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이러한 사연들을 가슴으로만 간직할 수 없어  글로 쓴 것이 수필이 되어  내 인생의 선물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무작정 상경”이 때로 아픔과 고통이 있었지만 나의 글과 강연을 통해서 이민자 들에게 생소했던

트럭커의 길을 안내해 주었다는 보람이 있다.  그동안 목사라는  권위와 체면을 다 내려놓고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나는 해외 교민이며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그 정체성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그래서아침에 눈을 뜨면, 고국의 소식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살아온지 어느덧 30년이 흘렀다.내가 그동안 트럭을 타고 미국과 카나다 전역을 돌아 다닐 때 과거엔는 CD를 통하여한국의 가요를 들으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었다. 다행히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해YouTube를 볼 수 있게되어 고국의 소식을 소상하게 보고 듣게 되었으며 실시간 댓글로의사를 소통할 수 있음은 우리...
김유훈
김유훈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해외에서 바라본 대한민국은 대단한 국가이다.  불과 60 여년만에  전세계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우리의 어린시절 6.25 전쟁 이후 대부분이 가난했고 서울의 청계천과 산동네에는 판자촌이 대부분이였다.  지금 청계천 주변에는 고층빌딩들로, 판자촌은 고층아파트  마을들로 변한 모습은 고국을 방문할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이렇게 대한민국의 역사가...
김유훈
무작정 상경 2021.05.03 (월)
김유훈 / (사) 한국문협밴쿠버지부 회원 “무작정 상경” 이란 말은 과거 한국이 가난했던 60-70년대에 흔히 쓰이던 표현이다.농촌 인구가 80%가 넘었을 시절 가난을 벗어나고자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더 나은 삶을위해 서울과 대도시로 일터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이 시절 “쨍하고 해뜰 날”이란 노래를  부르며 온갖 고생 끝에 자리를 잡게 된 사연들이수없이 많이 있다....
김유훈
김유훈(사)한국문협 밴지부우리의 학창시절에 반드시 외워야했던 국민교육헌장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하며 시작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절대 빈곤의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 잘 사는 것이 온 국민들의 꿈이며 희망이였다. 그리고 “새마을 노래”와 “잘 살아 보세”란 노래를 방방곳곳에서 전 국민이 부른 결과 대한민국은 민족이 중흥되었고 잘 살게 되었을 뿐 만 아니라 지금은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다...
김유훈
김유훈(사)한국문인협 밴쿠버 지부 회원 한 해의 끝자락에서 돌이켜보니, 금년은 내가 살아오며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시간을 지나온 것 같다. 중국 바이러스(covid-19)로 인해 전 세계가 공포속에서 지내며 수 많은 희생자들이 나왔다. 특히 소규모 자영업자들, 각종 운동선수들은 물론 공연 기획자들과 많은 연예인들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국경을 폐쇄하여 사람들이 오갈 수 없어 여행업계는 거의 파산직전에 이르렀다. ...
김유훈
내가 지금가지 살아오면서 금년 (2020)처럼 온 세상이 혼란했던 기억은 없었다. 지난 해부터중국에서 부터 시작된 우환 폐렴(Covid-19)이라는 역병이 전 세계를 휩쓰는 까닭에 나라마다 큰어려움에 빠졌다. 미국과 카나다를 오가는 길까지 막혀버린 이때에 다행히 생활 필수품을 실은트럭들은 국경을 오갈 수 있지만 내가 속한 회사는 목재 등 건설자재를 나르는 회사인 까닭에물동량이 확 줄어들어 나는 트럭의 핸들을 잠시 놓고 지내게 되었다.그동안...
김유훈
     연극의 3대 요소를 희곡, 배우, 그리고 관객이라 한다. 특히 관객을 말하려면 무대가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어있다. 이는 오늘날의 배우, 가수, 그리고 목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즉 배우의 시나리오, 가수의 노랫말, 목사의 설교 노트가 희곡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대에  관객이 있어야 배우는 연극을, 가수는 신이 나서 노래 할 수 있으며, 목사는 교인들이 많이 있으면 더 힘 있고 영적인...
김유훈
아내의 취미생활 2020.03.31 (화)
 금년은 나의 결혼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23살의 새색시가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긴 할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아내는 지금도 변함없이 열심히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지난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였으며 은퇴 후, 지금은 작은 스모크 숍을 운영하고 있다. 아내는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지만 쉬지 않고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과거 한국에서는 목사 사모로 일은 안 했지만 취미생활은 열심이었다. 지점토 공예, 수채화 그리기, 그리고...
김유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