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희 / (사) 한국문협 밴쿠버 지부
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다. cul-de-sac(컬드싹), 한번 들어가면 나갈 길이 없다는 골목길. 나는 이 길을 주머니길이라 명명(明明)한다. 주머니길! 얼마나 정다운 이름인가.
작년 펜데믹이 시작되던 즈음에, 골목 어귀 한 쪽의 숲을 갈아 없애고 자그마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공원이 생겼다. 이 골목길의 아이나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공원에서 공도 차고 나 같은 노인들은 산책도 한다. 공원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어떤 이웃들은 이런 저런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막상 아담하게 단장한 공원이 들어서자 그런 우려는 싹 사라졌다. 더우기 펜데믹이 시작되면서 이 공원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야외 공간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거리 두기 마스크 걱정 없이 활개 치고 공원 주변을 돌며 산책할 수 있어서 좋고, 애기들이 모래밭에서 삽질하고 좀 큰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그네를 타며... 공원은 이 동네 사람들에게 펜데믹의 스트레스를 해소 해 주는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다.
큰 손녀가 다섯살 때쯤이었다. 옆집에 살았던 미아네가 이사를 갔다. 미아는 열두 살이었는데 여섯 살 난 우리 큰 손녀와 잘 놀아 주었다. 미아는 동생이 없고 우리 손녀는 언니가 없어서 둘이는 친 자매처럼 잘 지냈다. 착한 미아네가 이사를 가 버린 후 며느리는 못내 아쉬워하며 어떤 이웃이 그 집에 이사 들어 와 살지 궁금하던 차였다. 어느 날, 이삿짐 트럭이 들어오고 뒤로 승용차가 잇달아 들어왔다. 며느리와 나는 문 앞에서 호기심과 약간은 설렘으로 새 이웃이 누굴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의 시선은 트럭을 따라 온 승용차에 고정했다. 이윽고 차에서 젊은 여자와 예쁜 여자 아이 둘이 내렸다. 나는 작은 소리로 며느리에게 “됐다! 또래 여자 아이들이야!” 하고 나직이 며느리에게 말했다. 며느리는 좀 수줍고 약간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어머니! 저 애들 너무 예뻐요 우리 애들 나이 같아요.” 하더니 곧바로 새로 온 가족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하며 새로 이사 온 것을 환영한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속으로 또래 아이들이 있는 새 이웃을 두게 된 것에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일었다.
새로 들어 온 옆집과는 아들 며느리와 또래 아이들 부모, 그리고 아이들의 나이가 고만 고만들 해서 어른은 어른끼리 아이들은 아이들 끼리 좋은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은 우리 집과 옆집을 마치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고 주말이면 이번 주는 우리 집, 다음 주는 그 쪽 집에서 간단한 주말 식사를 함께 한다.
오른 쪽 옆집 독신녀인 헤일리는 여름이 되면 아이들을 불러 모아 팝시클 하나씩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자기 앞에 불러 모을 수 있으니 팝시클을 준비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그리도 행복 해 했다. 우리 집 앞에는 든든한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어서 거기에 햄목 그네(그물 침대)를 매달아 놓았다. 아이들은 햄목을 타거나 바닥에 그림도 그리고 논다. 주머니길 땅바닥에는 늘 아이들이 그려 놓은 색색의 분필 자국이 여기 저기 흩어져 아이들의 꿈이 그려져 있다.
아들은 매년 7월 초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는 스트리트 바베큐 파티를 연다. 해마다 테마를 갖고 음식도 그 테마에 맞게 준비한다. 집 앞에 파티를 준비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들 몫이다. 그야말로 멍석만 깔아 준다. 텐트를 치고 긴 테이블을 놓고 음악을 틀어 파티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동네 사람들은 각자가 만든 색색의 음식을 갖고 나와 테이블에 진열한다. 테마에 맞는 음식들이다. 올해의 테마는 하와이언이다. 하와이언 꽃목걸이, 밀집으로 만든 치마, 일회용 접시 냅킨,모두 하와이 일색이다. 나는 짙은 빨강, 노랑, 초록 색의 잠옷 드레스에 흰 가디간을 걸쳐 입고 목에 하와이언 꽃목걸이를 하고 나갔다. 젊은이들 파티에 인사만 하면 그 뿐이니 시작 할 때와 식사 전, 눈치 것 들락거리며 아이들 체면을 세워준다.
저녁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동네 할아범들이 인사를 건넨다. 자기 할아버지가 옛날에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목화 농장을 했었다는 폴과 크로아치아 태생인 니키는 폴과 말동무가 잘 되어 매일 저녁 집 앞 의자에 앉아 담소하다가 내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를 잊지 않는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 인사 한마디가 대수로운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대수롭지도 않은 짧은 인사에서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은 내 산책을 동반하는 강아지에게도 인사를 한다.
나는 이 막다른 골목길 동네를 사랑한다. 이 골목에 들어오면 따듯한 주머니 안에 들어 간 내 찬 손이 따듯하게 덥혀 지듯 내 마음도 훈훈해 진다. 아마도 평화가 이 주머니 길 안에 들어 앉아 함께 살기 때문일 것이다. 땅 바닥에 무지개를 그리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 평화스럽고 사랑스럽다. 아이들의 그림 안에도 골목안의 평화가 살고 있다.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김춘희의 다른 기사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