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골목안의 풍경

김춘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7-19 11:39

김춘희 / (사) 한국문협 밴쿠버 지부


  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다. cul-de-sac(컬드싹), 한번 들어가면 나갈 길이 없다는 골목길. 나는 이 길을 주머니길이라 명명(明明)한다. 주머니길! 얼마나 정다운 이름인가.

  작년 펜데믹이 시작되던 즈음에, 골목 어귀 한 쪽의 숲을 갈아 없애고 자그마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공원이 생겼다. 이 골목길의 아이나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공원에서 공도 차고 나 같은 노인들은 산책도 한다. 공원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어떤 이웃들은 이런 저런 불평을 늘어놓았지만 막상 아담하게 단장한 공원이 들어서자 그런 우려는 싹 사라졌다. 더우기 펜데믹이 시작되면서 이 공원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야외 공간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거리 두기 마스크 걱정 없이 활개 치고 공원 주변을 돌며 산책할 수 있어서 좋고, 애기들이 모래밭에서 삽질하고 좀 큰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그네를 타며... 공원은 이 동네 사람들에게 펜데믹의 스트레스를 해소 해 주는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다.

  큰 손녀가 다섯살 때쯤이었다. 옆집에 살았던 미아네가 이사를 갔다. 미아는 열두 살이었는데 여섯 살 난 우리 큰 손녀와 잘 놀아 주었다. 미아는 동생이 없고 우리 손녀는 언니가 없어서 둘이는 친 자매처럼 잘 지냈다. 착한 미아네가 이사를 가 버린 후 며느리는 못내 아쉬워하며 어떤 이웃이 그 집에 이사 들어 와 살지 궁금하던 차였다. 어느 날, 이삿짐 트럭이 들어오고 뒤로 승용차가 잇달아 들어왔다. 며느리와 나는 문 앞에서 호기심과 약간은 설렘으로 새 이웃이 누굴까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의 시선은 트럭을 따라 온 승용차에 고정했다. 이윽고 차에서 젊은 여자와 예쁜 여자 아이 둘이 내렸다. 나는 작은 소리로 며느리에게 “됐다! 또래 여자 아이들이야!” 하고 나직이 며느리에게 말했다. 며느리는 좀 수줍고 약간 내성적인 성격인데도, “어머니! 저 애들 너무 예뻐요 우리 애들 나이 같아요.” 하더니 곧바로 새로 온 가족에게 다가가서 악수를 하며 새로 이사 온 것을 환영한다고 인사를 했다. 나는 속으로 또래 아이들이 있는 새 이웃을 두게 된 것에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일었다.

  새로 들어 온 옆집과는 아들 며느리와 또래 아이들 부모, 그리고 아이들의 나이가 고만 고만들 해서 어른은 어른끼리 아이들은 아이들 끼리 좋은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은 우리 집과 옆집을 마치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고 주말이면 이번 주는 우리 집, 다음 주는 그 쪽 집에서 간단한 주말 식사를 함께 한다.

  오른 쪽 옆집 독신녀인 헤일리는 여름이 되면 아이들을 불러 모아 팝시클 하나씩 아이들 손에 쥐어 주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자기 앞에 불러 모을 수 있으니 팝시클을 준비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그리도 행복 해 했다. 우리 집 앞에는 든든한 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어서 거기에 햄목 그네(그물 침대)를 매달아 놓았다. 아이들은 햄목을 타거나 바닥에 그림도 그리고 논다. 주머니길 땅바닥에는 늘 아이들이 그려 놓은 색색의 분필 자국이 여기 저기 흩어져 아이들의 꿈이 그려져 있다.

  아들은 매년 7월 초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참석하는 스트리트 바베큐 파티를 연다. 해마다 테마를 갖고 음식도 그 테마에 맞게 준비한다. 집 앞에 파티를 준비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들 몫이다. 그야말로 멍석만 깔아 준다. 텐트를 치고 긴 테이블을 놓고 음악을 틀어 파티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동네 사람들은 각자가 만든 색색의 음식을 갖고 나와 테이블에 진열한다. 테마에 맞는 음식들이다. 올해의 테마는 하와이언이다. 하와이언 꽃목걸이, 밀집으로 만든 치마, 일회용 접시 냅킨,모두 하와이 일색이다. 나는 짙은 빨강, 노랑, 초록 색의 잠옷 드레스에 흰 가디간을 걸쳐 입고 목에 하와이언 꽃목걸이를 하고 나갔다. 젊은이들 파티에 인사만 하면 그 뿐이니 시작 할 때와 식사 전, 눈치 것 들락거리며 아이들 체면을 세워준다.

  저녁에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동네 할아범들이 인사를 건넨다. 자기 할아버지가 옛날에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목화 농장을 했었다는 폴과 크로아치아 태생인 니키는 폴과 말동무가 잘 되어 매일 저녁 집 앞 의자에 앉아 담소하다가 내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며 인사하기를 잊지 않는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 인사 한마디가 대수로운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대수롭지도 않은 짧은 인사에서 기분이 좋아진다. 사람들은 내 산책을 동반하는 강아지에게도 인사를 한다. 

  나는 이 막다른 골목길 동네를 사랑한다. 이 골목에 들어오면 따듯한 주머니 안에 들어 간 내 찬 손이 따듯하게 덥혀 지듯 내 마음도 훈훈해 진다. 아마도 평화가 이 주머니 길 안에 들어 앉아 함께 살기 때문일 것이다. 땅 바닥에 무지개를 그리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오늘은 유난히 평화스럽고 사랑스럽다. 아이들의 그림 안에도 골목안의 평화가 살고 있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김가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꽃 비, 오색 빛으로 나리다" 제목부터 흥미로운 불모(佛母) 금난 이운정의 작품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친숙한 경주 불국사 대웅전에 장식된 '단청'에 대한 것이다.예로부터 단청(丹靑)이 주로 사용된 곳은 왕실의 궁궐과 사찰의 전각이었다.중세 사회에 임금과 부처는 저잣거리의 평범한 범인들과는 다른 신분 체계의 지극히 존귀하고 높은 존재였다. 그들이 머무는 종교적 왕실 공간 또한 이에 걸맞게 매우 화려하고...
김가림
유진숙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넘겨주는 주인이 없어 슬프게 매달려 있다해도 지난 달력이 빛 바랜 채 걸려있다다 버려도 아깝지 않을 살림은눈부시게 깔끔히 정리된 체뽀얀 먼지 분 칠 삼아주인을 기다린다불 꺼진 깊은 밤엄마 누운 자리 누워 보니이불이 날 감싸 눈물이 난다요양원의 엄마도 깊은 밤 행여 울고 계실까 가슴이 시리다누구라도 가야 할서러운 마지막 길툭 떨어지는 꽃잎이아프지 않았으면...
유진숙
Poem in July 2021.07.26 (월)
Translated by Lotus Chung (번역시)로터스 정 (사)한국문인협회밴쿠버지부 회원July is to meIt brings gardenia flowersWhen it blooms white and disappearsFlowers fall quietly yellowWhile the flowers are fadingIt doesn't seem to cry,Actually, no one knowsIt would be tearful.Even while living in the worldI want everyoneIf I can treat you like meeting flowersThe fragrance he hasRethinking the joy of the day I first discoveredIf you can flutterMaybe at the lastImagine I might smell the scentIf I can love a little moreOur life itself will be a flower garden.Instead of July letterA...
로터스 정
골목안의 풍경 2021.07.26 (월)
김춘희 / (사) 한국문협밴쿠버 지부 회원  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다. cul-de-sac(컬드싹), 한번 들어가면 나갈 길이 없다는 골목길. 나는 이 길을 주머니 길이라 명명(明明)한다. 주머니길! 얼마나 정 다운 이름인가.  작년 펜데믹이 시작되던 즈음에, 골목 어귀 한 쪽의 숲을 갈아 없애고 자그마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공원이 생겼다. 이 골목길의 아이나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공원에서 공도 차고 나...
김춘희
이규창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Jackson Lake Lodge에서 2박하며 Teton의 만년설을 베이스 캠프지에서 보 듯 코 앞에서 실컷 맛보았을 때, 역시40년 山사랑인 친구에게 안겨준 자연의선물로 여겨져 크게 감격했습니다. 공원체류 3일째 되는 오후에 티턴을 떠났습니다. 옐로스톤 남쪽 입구까지 ParkWay를 40Km 달립니다. 고원지대의 상쾌함과 그동안 발원지를 향해 함께 달려온...
이규창
수평선 저 너머로 2021.07.19 (월)
남 윤 성  수평선 저 너머로인적 드문 이생의 무인도 한채외로이 저물어 가고  짝 잃은 철새 한 마리적막 강산 둥지 쪽으로어둠 밝힐 등꽃 한 송이힘겹게 물고 날아 간다.  허물 켜켜이 수시로 쌓이는 나날들무명(無明) 쪽으로 무시로 기울어어두워 지려는 내 안팎  저 영원한 나루로 향한 길더 저물기 전  내 안팎 두루 더 밝게더 흠없고 정결하게주의 신부로 부족함 없게  수평선 저 너머영원한 안식과...
남윤성
골목안의 풍경 2021.07.19 (월)
김춘희 / (사) 한국문협 밴쿠버 지부  우리 집은 막다른 골목 안에 있다. cul-de-sac(컬드싹), 한번 들어가면 나갈 길이 없다는 골목길. 나는 이 길을 주머니길이라 명명(明明)한다. 주머니길! 얼마나 정다운 이름인가.  작년 펜데믹이 시작되던 즈음에, 골목 어귀 한 쪽의 숲을 갈아 없애고 자그마한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공원이 생겼다. 이 골목길의 아이나 어른들은 저녁을 먹고 나면 공원에서 공도 차고 나 같은 노인들은 산책도 한다. 공원이...
김춘희
무창포의 추억 2021.07.19 (월)
권순욱 / (사)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회원코로나 팬데믹이 있기 바로 전인 2019년,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고국의 가을이었다. 조류간만의 차이로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자연이 보여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막내 동서의 주선으로 찾은 곳이 다름 아닌 무창포였다....
권순욱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71  72  73  74  75  76  77  78  79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