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받고 위조 서류로 속여···한인 피해자 ‘분통’

손상호 기자 ssh@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한 한인 사업가가 거액의 투자금을 받은 후 위조 서류로 같은 한인 투자자를 속이고 돌려주지 않아, 법원이 400만 달러를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7월 9일 BC주 대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앤드류 메이어 판사는 피고 정욱진(영어명 에릭) 씨에게, 투자를 받고 반환하지 않은 총 390만9169달러와 18만5000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원고 김헌배 씨에게 배상할 것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중고차 사업을 하던 정욱진 씨는 본인 사업체가 위치한 사무실의 임대주인 김 씨로부터 약 18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그러나 정 씨는 체크와 이메일, 인보이스 등을 조작해 김 씨를 속였고 도주까지 했다. 그리고 돌려주지 않은 투자금과 손해 배상금을 배상하라는 판결에도 정 씨는 가진 돈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료 사진(출처=Getty Images Bank)

중고차 사업에 거액 투자 제안

가해자 정욱진 씨는 약 2년 전까지 코퀴틀람 노스로드 한인타운에서 중고차 관련 사업을 한 인물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된 것도 지난 2005년 정욱진 씨가 직원으로 있던 리치몬드의 한 중고차 매장에서였다. 첫 만남에서 김 씨는 반듯한 정 씨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했고, 그 이후에도 그로부터 차량 한 대를 구입하는 등 한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지난 2016년 김 씨는, 본인 소유의 부동산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정욱진 씨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았다. 밴쿠버에 막 입국해 자금이 부족한 중국인들이 쉽게 고급 차량을 구입할 수 있도록, 리스를 통해 차를 판매한다는 내용의 사업이었다. 차는 캐나다 최대 중고차 옥션 회사인 맨하임(Manheim)으로부터 구매하고, 이 차량을 리스 회사로 넘겨 수수료를 챙기는 형식이었다.

처음에 정욱진 씨는 김 씨에게 약속한 만큼의 이익금을 지불하고, 실제로 존재하는 파이낸스 담당자 S 모 씨와 주고받은 중고차 매매와 관련한 이메일과 문자 내용 등을 일일이 보여주면서 투자자를 안심시켰다.

실제로 김 씨는 중고차 매매가 이루어졌다는 출고증과 그에 대한 금액이 입금됐다는 내용을 하루에 많게는 세네 번씩 이메일을 통해 보고 받았다.

또한 정욱진 씨는 중고차 매매로 받은 미쓰비시 노스밴쿠버 대리점 이름의 체크를 김 씨에게 보여주면서, 거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당시 피해자 김 씨가 중고차 옥션 회사로 부터 받은 출고증. 이는 가해자 정욱진 씨가 만들어낸 가짜 출고증이다. (김헌배 씨 제공)

▲매매과 완료된 후 받았다는 미쓰비스 대리점 체크. 이 역시 가짜였다. (김헌배 씨 제공)

위조 서류·체크로 투자자 속여

그러나 이는 모두 정욱진 씨가 만들어낸 허구였다. 정 씨는 파이낸스 담당자 S 모 씨와 중고차 옥션 회사의 메일 주소를 가짜로 만들어, 출고증과 매매가 완료됐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본인과 김 씨에게 허구로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즉, 있지도 않은 차량을 서류 위조 및 메일 조작을 통해 차량이 거래됐다고 투자자를 속인 것이다.

정욱진 씨 사업체 직원을 통해 이상한 낌새를 알게 된 김 씨는 지난 2019년 5월 정 씨를 만나 사실을 추궁했지만, 그는 잠깐 확인할 것이 있다며 집에 들른 후 도주했다.

가해자 정 씨는 이 내용에 대해 모두 인정을 하면서도, 투자자인 김 씨의 압박에 시달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라고 변호했다.

정 씨의 진술에 따르면 투자자 김 씨는 투자금을 늘리며 더 많은 배당금을 요구하는 등 그를 압박했고, 결국 비즈니스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그리고 본인이 오랫동안 운영하던 비즈니스까지 김 씨가 결국 가져갈까 두려워졌고, 차량이 실제로 거래된 것처럼 꾸밈으로써 위기를 벗어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투자자 김 씨는 본인이 김 씨를 압박했다는 진술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며 분노했고, 법원도 정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메이어 판사는 “증거들을 볼 때, 피고인 정 씨가 비즈니스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사업을 지탱할 돈을 원고인 김 씨로부터 공급받기 위해 사기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 “투자금 도박으로 날려 무일푼”

한편, 김 씨는 피고 정욱진 씨로부터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정 씨는 반환하지 않은 모든 돈을 금괴로 바꾸거나 카지노와 사설 도박장에서 날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설 도박장이 어디 있냐는 질문에 정 씨는 기억이 나지 않고, 그 이후 그와 가족의 생활비는 형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 김헌배 씨는 본지와 인터뷰를 통해 “무일푼이라던 정욱진은 그 이후에도 은닉한 자금을 통해 호화스러운 생활을 유지했고, 이번 소송에서도 두 곳의 대형법률회사를 고용하며 뻔뻔하게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며 “그가 우리에게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를 주었음에도,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이제 판결을 받았으니 그가 은닉한 재산을 파악하는 데 집중하겠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며 “또 이 사실을 한인 사회에도 알려 본인과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손상호 기자 ssh@v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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