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군, 북부 3州 탈환··· 탈레반은 ‘피의 숙청’ 시작

이민석 특파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대한 저항을 선언한 아프가니스탄 정부 잔존 세력이 수도 카불 북쪽 일부 지역을 추가 탈환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21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탈레반은 이들을 격퇴하기 위해 이 지역에 병력을 급파했다. 반(反)탈레반 무장 세력이 저항의 거점으로 삼은 카불 북부에서 탈레반과 반군 세력 간 ‘내전’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VOA는 이날 “축출된 아프간 정부를 지지하는 반군들이 전날 바글란주(州) 지역을 탈레반으로부터 탈환했다”고 전했다. 반군은 바글란의 상당 부분을 되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군이 탈레반으로부터 되찾은 지역은 판지시르와 파르완에 이어 바글란이 세 번째다. 이 지역들은 모두 수도 카불의 북쪽 지역에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모두 34주(州)로 이뤄져 있다.

압둘 하미드 반군 현지 사령관은 이날 공개한 영상 메시지에서 “탈레반에 저항하는 봉기가 일어났다”며 “바글란주 전역을 탈환하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에 따르면 교전 과정에서 탈레반 대원 약 15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에 탈레반은 바글란을 다시 빼앗기 위해 북부 최대 도시인 쿤두즈에 주둔하던 병력을 바글란으로 급히 보낸 상태다.

반군 세력의 공격은 아프간 정부 ‘2인자’였던 암룰라 살레 부통령이 대통령 대행을 자임하면서 탈레반에 대한 저항을 선언한 직후 이뤄졌다. 살레 부통령과 함께 아프간의 국민 영웅 고(故) 아흐마드 샤 마수드 장군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 등은 카불에서 북동부로 65㎞ 떨어진 판지시르주에서 반군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 살레 부통령을 지지하는 부대는 최근 카불 북쪽 파르완주의 주도 차리카르도 탈환했다.

반군 세력이 판지시르·파르완주에 이어 바글란주 일부를 포함한 ‘북부 3주’를 차지하자, 탈레반은 당황한 모양새다. 반군의 저항이 거세지면 탈레반이 카불 주둔 병력의 상당수를 이곳으로 옮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의 전투가 장기화될 경우 탈레반이 카불에서 장악력을 잃게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탈레반은 반대 세력 숙청 등 통치 기반 다지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 등에 따르면 탈레반은 바드기스주(州)의 하지 물라 아차크자이 경찰청장을 총살하는 등 당초 “보복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기고 ‘피의 보복’을 시작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아차크자이 경찰청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처형당하는 동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 남성은 천으로 두 눈이 가려져 있고, 손이 포박된 채 무릎을 꿇고 있다. 이후 그는 기관총으로 무참히 살해됐다. 탈레반은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점령한 뒤 아차크자이 청장을 체포했고, 18일 처형했다고 한다.

탈레반은 공포정치를 이어가면서도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새 정부 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 19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Islamic Emirate of Afghanistan)’ 수립을 선언한 뒤 조만간 새 정부 구상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탈레반이 20년 전 ‘이슬람 근본주의’를 앞세워 폭정을 실시했을 당시 내걸었던 것과 같은 이름이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반의 서열 2위 인사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21일 카불에 도착해 새 정부 구상을 위한 본격 협상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탈레반 고위 간부 압둘 카하르 발키는 22일 아랍권 매체 알 자지라와 인터뷰에서 “(새 정부 구성 과정에서) 수도를 카불로 유지할지, (탈레반 발원지이자 제2 도시인) 칸다하르로 옮길지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탈레반 고위급 관계자를 만난 아프간 주재 러시아 대사 드미트리 쥐르노프는 “탈레반 측이 ‘반군 세력과 평화적 해법을 모색하길 기대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했다.

탈레반의 권력 장악 속에 미국 정부의 수배자 명단에 올라있던 거물급 테러리스트들이 카불에 입성하면서 ‘내부 권력 분점’에 나서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테러 작전에 연루된 혐의로 미국의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는 칼릴 알라흐만 하카니가 지난 19일 카불에 등장했다. 그가 이끄는 탈레반 연계 조직 ‘하카니 네트워크’는 수도 카불의 치안을 담당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알카에다 수괴 오사마 빈라덴이 아프간에서 탈출할 때 이를 지원하는 등 여러 테러 사건을 배후 조종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물급 테러리스트가 이끄는 테러단체가 아프간 수도의 살림을 맡게 된 것이다. 미 정부는 2012년 하카니 네트워크를 외국 테러 조직으로, 2011년 알라흐만을 국제 테러리스트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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