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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증도 시각장애도 뛰어넘었다, 패럴림픽 鐵의 여인

성진혁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1-08-29 15:28

스페인 여의사 로드리게스, 도쿄패럴림픽 트라이애슬론 金
수사나 로드리게스(오른쪽)가 28일 도쿄 패럴림픽 여자 트라이애슬론 시각장애 등급 경기에서 가이드인 사라 로어와 함께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 의사인 로드리게스는 코로나 감염자를 치료하면서 이번 패럴림픽을 준비했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수사나 로드리게스(오른쪽)가 28일 도쿄 패럴림픽 여자 트라이애슬론 시각장애 등급 경기에서 가이드인 사라 로어와 함께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 의사인 로드리게스는 코로나 감염자를 치료하면서 이번 패럴림픽을 준비했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수사나 로드리게스(33)는 백색증(白色症)을 안고 태어났다. 멜라닌 색소 결핍으로 신체 대부분이 하얗다. 이 선천성 유전 질환의 영향으로 양 눈의 시력은 5~7% 정도만 남았다.

로드리게스는 28일 도쿄 패럴림픽 여자 트라이애슬론(오다이바 마린 파크) 시각장애 등급에 스페인 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땄다. ‘가이드’인 사라 로어와 호흡을 맞춰 수영 750m, 사이클 20km, 달리기 5km를 1시간07분15초 만에 가장 먼저 마쳤다. 수영과 달리기는 끈으로 가이드와 몸을 연결한 상태로, 사이클은 가이드가 앞 좌석에서 방향을 잡아주는 2인용 탠덤 바이크를 타고 했다. 이들은 한 번도 선두를 뺏기지 않았다.

2018·2019 세계선수권 1위였던 로드리게스는 “오늘 우리는 완벽하게 계획을 수행했다. 그동안 패럴림픽 메달만 없었는데, 가장 큰 대회에서 정말 뜻깊은 승리를 했다”고 기뻐했다.

백색증을 지닌 사람에게 야외 스포츠는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태양의 자외선에 노출되면 화상을 입거나 피부암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햇빛은 눈에도 나쁘다. 밖에 나갈 땐 선크림과 선글라스가 필수다.

로드리게스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의사이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고, 재활의학과 레지던트 과정까지 마쳤다. 스페인에서 시각장애인이 의대를 졸업한 역대 두 번째 사례였다고 한다. 책이나 인쇄물의 글자를 확대해주는 전자 기기와 특수 안경을 이용해 공부를 했다.

어려서부터 두 살 터울 언니와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인식했을 때부터 패럴림픽에 나가고 싶었다”는 로드리게스는 4세 때 수영을 배웠고, 10세 무렵엔 육상에 입문했다. 2008 베이징 패럴림픽 육상 출전권을 놓치자 트라이애슬론에 새롭게 도전했다. 패럴림픽 데뷔 무대였던 2016 리우 대회 땐 5위를 했다.

로드리게스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도쿄 패럴림픽 출전을 거의 포기했다. 우선 심장에 이상이 발견돼 제대로 훈련을 할 수 없었다. 격렬한 운동, 특히 수영을 할 때 위급 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걱정이었다. 로드리게스는 자신이 몸담은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한 끝에 심장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모니터기를 가슴에 삽입했다.

이 무렵 스페인의 코로나 사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갔다. 국가적인 비상 상황에 직면한 로드리게스는 의사로서 사람들을 돕는 일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돼 심하게 앓은 이들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재활 프로그램을 짜고, 전화 상담을 했다.

작년 3월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1년 연기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다시 희망을 품은 로드리게스는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병원 근무를 한 다음 오후 6시부터 집에서 땀을 흘렸다. 트레드밀에서 달리고, 롤러 위에 설치한 사이클을 타고, 로잉 머신과 씨름했다. 수영장이 폐쇄됐던 기간엔 바다에서 헤엄을 쳤다.

작년 가을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나선 의사 업무를 잠시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패럴림픽을 준비했다. 지난달엔 미국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스포츠 덕분에 의사로 매일 일할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의사라는 직업은 건강과 스포츠의 중요성을 일깨워줘서 좋다고 한다.

로드리게스는 이번 도쿄 패럴림픽 육상에도 출전했다. 29일 오전 육상 1500m(시각장애) 예선 2조에서 남성 가이드 셀소 페레이라와 나란히 뛰며 4분51초38로 2위를 했다. 3위였다가 결승점을 70m쯤 남기고 스퍼트해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다. 골인하고 나선 트랙에 누워 가쁜 숨을 골랐다. 이틀 연속 체력 소모가 극심한 경기를 한 탓이었다. 패럴림픽에서 서로 다른 두 종목에 출전한 첫 스페인 선수가 된 로드리게스는 “몸은 힘들지만, 프로페셔널답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500m 결선은 30일 오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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