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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이란 신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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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1-09-27 09:14

심현숙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부부간에도 자기 위주의 지나친 기대와 욕심은 정상적이던 관계마저 깨트린다. 처음엔 원망의 감정이 상대를 거부하는 마음이 되고, 결국 억압적 마음상태는 파탄의 결과에 이르게 한다.”라고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저자 존 그레이는 말한다.

 

 나는 졸혼이란 말을 3-4년 전 동생을 통하여 처음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결혼도 졸업이 있다니 의아했다.

 요즈음 TV에서 연예인 부부들의 프로그램 가운데 졸혼이 언급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그만큼 졸혼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졸혼의 뜻은 부부가 이혼하지 않으면서 각자 자신의 삶을 즐기며 사는 생활방식으로 결혼을 졸업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04년 일본작가 스기야마 유미꼬의 저서 <졸혼을 권함>을 통해 알려졌다고 하나 사실 졸혼의 유래는 인도의 간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법률적 혼인관계는 유지하되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실상 별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집에 살더라도 졸혼 했다면 졸혼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졸혼과 별거는 판이하게 다르다. 졸혼은 쌍방의 합의하에 각자의 삶을 존중해주는 상태이고 별거는 사이가 나빠져서 헤어져 사는 이혼 전 단계라고 보면 맞다.

 졸혼은 결혼생활 유지와 이혼의 중간 단계에서 부부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줄여보고자 생각해낸 것이라 생각된다.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자녀들에 대한 걱정, 오래 함께 해온 사람으로서 이혼하기에는 서로에게 고통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 졸혼이라는 신 풍습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상대방 배우자가 부양료 지급을 청구할 경우 지급해야한다고 한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희생하기보단 자기 자신의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졸혼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기지 않았나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졸혼이 과연 바람직한 건가 안타깝다.

 

 60대에 들어서 자기 발전을 위해 독립을 선언하고 나서는 아내를 막지 못하는 이유는 젊어서 쌓지 못한 부부간의 신뢰와 아내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고 살아온 남편들의 횡포에 대한 결과가 아닌가한다.

 그러나 70대가 넘어 80세가 가까워지면 건강에 따라 졸혼이라는 생각은 없어지고 ‘저 원수한테 의지하자’로 마음이 바뀌는 모양이다. ‘늙어서 보자’며 가슴속에 날 하나 세우고 살다 어느 날 ‘너에게 기대고 살자’로 슬그머니 생각이 옮겨갔다는 친구의 말에 공감이 갔다. 젊을 때 노비취급 받으며 살아온 세월에 분노하다 보니 우울증이 생기고 병원치료까지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이 우울해 보이면 ‘저 사람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러다가도 TV에서 자기가 젊은 시절 겪었던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면 지금도 가슴 밑바닥에 앙금처럼 깔려 있던 화가 다시 날개를 펴고 솟아오른다고 한다. 한번 받은 상처는 마치 폐결핵을 앓았던 흔적마냥 남아있는 것 같다.

 나름대로 60대와 70대 남녀 지인들을 전화로 인터뷰해 봤는데 60대는 졸혼이 필요하다면 하는 것도 좋다. 70대는 서로를 지켜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참고 살아야한다 라고 가닥이 잡혔다. 남편들의 불만은 아내가 ‘밖에서 일하는 남편의 기를 꺾는다.’ 그리고 ‘남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라고 했다.

 졸혼 후에는 부부 중 한사람이 집에서 나와 사는 것이 상례인데 형편이 안 될 때는 원래 살던 집에서 살기도 한다. 보통 아내들은 안방과 주방을 차지하고 남편들은 조그만 버너를 놓고 현관 쪽 방에서 취사를 해결한다고 한다. 이정도면 이혼을 하고도 남을 상황인데 서로의 사정과 이기심으로 한 지붕아래에서 부부 아닌 부부로 살아가는 가정이 많다니 서글픈 일이다. 아내한테 버림받고 사업까지 실패하고, 살아갈 이유를 잃은 가장은 죽음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문제가 한국의 술 문화와 대기업의 목표달성으로 인한 직원들의 혹사를 꼽고 싶다.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사랑을 나눌 시간이 부족하다고 본다. 유능한 가장일수록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들어오는 실상이 아닌가. 이곳도 졸혼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국처럼 번지지는 않는 것 같아 다행이다. 그만큼 가족이 함께 한 시간이 많을뿐더러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살게 되는 이민자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이성간의 사랑도 우정부터 시작해야한다’는 한 교수의 주장에 공감한다. 오랜 시간 친구로 사귀다 결혼한 커플이 실패할 확률이 더 적다고 본다. 그 만큼 서로에게 서로의 존재가 각인되어 있고 존중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상대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바뀌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남편 말에 공감하고 남편은 아내의 조언을 경청하는 것도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이다. 뭐니 뭐니 해도 부부간에 언어폭력에서 오는 상처가 가장 클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존중받지 못할 때는 ‘내가 큰 모욕감이 들고 큰 상처가 된다. 그런 자리에 나를 두고 싶지 않다’고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고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어느 정신과 의사는 조언한다. 말하기 전에 쉼을 갖고 서로 존중하며 수평적 관계가 이루어질 때만이 행복한 가정이 영위된다.

 누군들 남남이 부부되어 사는데 다툼이 없고 갈등이 미풍처럼 스쳐만 가겠는가. 오죽하면 부부란 전생에 원수가 만났다고 했을까. 나도 지난날을 돌아보면 용기가 없어 가출 한번 못 했지 마음속으로는 몇 번 쯤 반란을 꿈꾸었을 것이다. 많은 부부들이 끊임없는 불화 속에서도 가정을 지키는 것은 가족이 함께 해온 수목의 나이테와도 같은 희로애락의 세월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있겠는가. 이웃과 특히 가족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없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인 부부야말로 어떤 업, 혹은 어떤 숙명에 의해 맺어지는 인연이리라.

 부부란 건강하고 젊을 때는 서로의 소중함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한 쪽이 쓰러질 때 비로써 그 때서야 상대방의 소중함을 넘어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알게 된다. 부부란 첫사랑과 달리 해줄 수 없는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랑의 관계이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든 결혼생활이라면 모르나 자기의 일과 꿈을 위해 졸혼을 상대에게 강요한다면 진지하게 결혼의 의미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서로가 가정을 위해 공들였던 노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 그런 과정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졸혼을 결정하기 전에 신혼여행 같은 둘만의 여행을 떠나 허심탄회하게 대화부터 나누어 보면 어떨까.

  당신이 지금 힘겹게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해도 살아온 세월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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