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얼마 전에 외숙모가 전화를 하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아무래도 격조하게
되었는데 수년 만에 연락을 하신 것이다. 돌아가신 친정 엄마와 친 동기간처럼 가깝게
지내시던 외숙모의 목소리를 들으니 엄마와 이야기하는 듯하여 반가웠다. 우리 집 근처에
사셨던 외숙모는 오다가다 자주 들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가시곤 하셨다. 외숙모는
‘형님, 형님’ 하며 엄마를 잘 따랐었다. 엄마 생전의 살가운 정경들이 떠오르며 뭉클한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와 미안함을 안고 그동안의
근황을 물었다. 출가 시킨 삼 남매가 모두 두 명씩 아이를 낳아서 손주 보는 기쁨에 사신다고
한다. 외숙모가 자식 얘기를 하실 때는 자랑스러움이 가득 배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외삼촌이 일찍 세상을 떠나 외숙모 혼자 아이들을 키우셨던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잘 자라
제각기 성가한 모습이 몹시 뿌듯하신 것이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외삼촌이 살이 계실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가지 험한 일들을 하셔야 했다. 옛날 일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고이시는 듯 말씀에 물기가 가득하셨다. 그때는 오로지 신앙의 힘으로 버티던
시절이었다고 하신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다 공감하지만 어려울수록 신의 섭리와
도우심을 절실히 체험하게 된다. 외숙모는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나날들을 보내며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많이 겪었고, 그 믿음을 의지 삼아 아이들을 키워냈다고 하신다. 지금
자식들이 모두 번듯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만으로 큰 위로와 보람이라고 하시는 것이 마음
깊이 공감이 되었다.
외숙모와 함께 엄마의 생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아버지는
칠순을 맞기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엄마는 우리 앞에서 슬픈 내색을 별로 하지
않으셨다. 그저 잘 견뎌 내시는 줄로만 알았는데 외숙모에게는 그 허전하고 외로운 사무침을
내비치셨다고 한다. “나는 부부간에 사이가 좋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 사람이 쓰던 물건,
손길이 닿은 곳만 봐도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픈데, 금슬도 좋던 자네는 동생 떠난 뒤에
어떻게 견뎠는가” 라고 하시며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상실의 허전함을 나눴단다.
외숙모는 아버지와 싸우고 나서 웬수 운운하던 예전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뜻밖의 감정을
느끼셨다고 한다. 나도 부모님이 자주 싸우시던 모습만 기억에 남아 엄마가 얼마나 상심하고
슬퍼하는지 잘 헤아려드리지 못했다. 자식은 늘 부모에게 기대지만 정작 부모가 어려울 때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회한이 들었다. 엄마는 아버지가 말년에 투병하실 때 정말 헌신적으로
간호하셨었다. 그 당시를 떠올려보니 생각이 모자랐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엄마는 뇌졸중으로 운신이 어렵게 된 아버지를 간병하시느라 오랫동안 고생하셨다.
평소에는 부모님이 자주 싸우셨기에 서로 애정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나서 엄마가 아버지의 병간호를 참으로 지극정성으로 하셔서 ‘부부의 정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다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는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며
재활치료에 온 힘을 다하셨다. 덩치가 크신 아버지를 운동시키고 돌봐주느라 당신도 몸이
많이 상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병을 얻었다. 엄마도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아버지를 돌보시다가 정작 자신도 병을 얻었으니 자식의 입장에서 안타까웠었다. 나는 내
새끼들 키우느라 바빠서 고생하시는 엄마를 많이 도와드리지도 못하였으니 그런 불효가
없었다. 사려 깊지 못해서 내가 알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한 부모님의 사정이 더 많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삶을 자식이 다 짐작하기 어렵고 또 부부 사이의 일은 타인이 잘 알기 어렵다. 다른
이가 보기에는 사이가 좋지 않아 보여도 사실 서로에게는 더 없는 의지처이자 가장 편한
동반자였을 것이다. 삶의 무수한 갈피를 넘다가 힘이 들 때는 더러 싸우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연 많은 시간 동안 같이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서로 원망과 푸념의 대상이 되어주는 것도 어쩌면 사랑의 한 형태였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눈을 감으시자 ‘당신 없이는 안돼’ 라고 외치며 주저앉아 우시던 엄마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준다. 평탄하지 않은 인생의 파도를 함께 넘어온 부부는 세월이 만들어준 정의
두께로 그만큼 든든한 동지가 된다. 나와 남편도 그렇게 함께 세월을 견뎌왔고 이제는
부모의 사정을 조금은 헤아리게 되었다. 두 분이 돌아가시고 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조금씩
그 마음과 사정을 짐작이라도 하게 되는 자식의 불효를 자애로운 부모님께서
이해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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