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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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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1-12 11:26

반숙자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옥련나무 잎에 바람이 설렁대는 아침이다. 아파트 뒤뜰이라 해가 비치기에는 이른 시각에 주방
창 앞에 새가 한 마리 날아들었다. 새는 힐끔거리며 경계를 하는 듯했다. 아침마다 하는 일로
핸드밀에 커피콩을 넣고 가는 중이다. 커피 향이 코끝에 감도는 이 순간이 좋아서 커피 맛도
제대로 모르며 아침마다 거룩한 예식을 하듯 커피콩을 간다. 내가 커피 향에 취해 커피를 내리는
동안 새는 여전히 두리번거리며 유리창으로 나를 관찰한다.
비둘기다. 잿빛 머리에 초록과 보라색의 목 털을 두른 새가 부리를 들고 나를 본다. 눈이
빨갛다. 새도 불면으로 새웠나 종종걸음으로 방향을 바꾸고 나무를 올려다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디론 지 날아가 버린다.
나는 조간신문을 펴 들고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상쾌하게 여는 중이다. 하루가 커피만큼만
감미롭다면 노인의 시간은 살아있는 것. 이만한 평화, 이만한 안정 감사한 일. 바로 그때 푸드득
새가 날아들었다. 좀 전에 온 새가 아니다. 덩치도 더 크고 날개도 커서 작은 창문 반을 가릴
정도다. 이 새는 올라선 자리가 불편한지 자주 몸을 움직이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중심 잡기에
바쁘다. 아마도 수컷인가보다. 어쩌자고 저러나, 새는 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나를 쳐다보기도
하고 불안한 눈빛이다.
아침을 준비한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가지나물을 볶는다. 장밖에는 어느새 새가 바뀌어
암컷이다. 새는 입에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물고 있다. 아뿔싸 저기에 집을 지으려나 보다. 새는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저 꺼칠한 노인 네가 짓궂지나 않는지. 노인네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지
심사숙고하는 모양이다. 나는 새에게 ‘거기는 위험해, 너무 좁아서 안 돼’ 조용조용
이른다. 말벗 하나 생겼다. 코로나19로 고요 적적하던 집에 말벗이 생겼다는 것은 독백일지라도
반가운 일이다.
사람들은 애완견을 기르라 한다. 아무도 당신의 친구가 되어줄 수 없으니 강아지라도 곁에
있으면 말벗이 될 거라고. 체온이라도 나눌 수 있다고. 고마운 말이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내 몸 추단도 힘이 드는데 강아지 한 마리를 책임질 일이 아득해서다. 씻기고 먹이고
배설물 처리하랴, 병이 나면 동물병원에 데리고 다니랴, 번거로움이 겁이 나서다. 거기까지는

조금 무리하면 가능하다. 강아지가 주는 위로며 기쁨을 생각하면 번거로움이 대수랴. 강아지
수발드는 일로 운동도 되고 말동무도 생기는데…. 그보다 더 겁나는 게 있다. 바로 이별이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두 마리가 부산하게 들락거리더니 조용하다. 도대체 얘들이 뭘 보고
여기에 둥지를 틀려고 하나 싶어 창문을 가만히 열었다. 창턱이다. 넓이라야 3, 4센티미터 정도
목련 나무 가지로 보면 중간층이다. 말하자면 로열층. 나는 이 듬직한 목련 나무로 봄을 맞고
보내던 터다. 그러나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득하다. 만약에 둥지를 틀어 알을 낳고 새끼를 쳤다가
불상사가 생겨 아래로 떨어지면 끝장이다. 위험 부담을 알고는 나는 갈등한다. 둥지 트는 것을
묵살하면 생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목련 나무 품새도 넉넉할 텐데, 그 건너편 벚나무는 잎이
무성해 아늑할 텐데 왜 하필이면 까막진 아파트 작은 창 앞을 택했을까.
그렇다면 새들은 왜 급박하게 여기에 집을 지으려 하는가. 새의 세계를 알지 못하는 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라 유추할 뿐이다. 여기는 아파트 단지, 시골 마을이라 소음이나 단속도
거세지 않다. 새가 둥지를 트는 것은 알을 낳기 위해서다. 알을 낳아 암수가 번갈아 품어
부화시키는 것. 그것은 암컷의 본능일 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생기는 종족 번성의
자연의 법칙. 얼마나 다급하면 3cm도 안 되는 문턱에 둥지를 틀려고 하나.
아침을 천천히 먹으며 신문을 뒤적인다. 혼자가 되고부터 생긴 나쁜 버릇이다. 앞면부터 큰
활자를 더듬어 가다가 구미에 당기면 멈춰 읽어보는 시간. 사실 뉴스는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신문을 끊지 못하는 것은 종이 냄새가 좋아서다. 종이책이 설자리를
잃어간다는 얘기에 고향을 잃는 것 같은 허탈함을 느끼는 것은 구시대라서 일까. 깊은 겨울 밤
스탠드를 낮추고 책장을 넘기는 그 소리는 내 정서의 샘물일 터. 우리 사회 곳곳의 무게가 실려
있는 신문은 광고도 많지만 사회의 속살을 보인다.
무심코 눈이 멈춘 곳은 사설란이다. ‘전세난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안 보이나’ 이사 철을 맞아서
서울 전세난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64주째 상승하고 있다는 것. 그
사설 위로 배가 불러 걸음이 뒤뚱거리는 젊은 여인이 여기저기 공인중개사 문을 밀치고 나오는
모습이 겹친다. 바로 우리들의 딸의 모습이고 며느리의 모습이다. 이 세대의 주인인 그들이
언제까지 문밖의 손님이 되어야 하나.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새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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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후 2022.01.24 (월)
겨울 강처럼 깊은 당신 눈빛만 보아도그 세월 어찌 홀로 견뎠을지뼈 마디마디 스며든 고독내 아픔인 양 가슴 저미어와당신 외로움 안아봅니다그대 아련한 기억 속에그대 따스한 가슴 속에보잘것없는 촛불 하나꺼뜨리지 않고 간직해준 그 사랑으로마른 장작 같은 이 가슴어찌 이리 활활 타오르게 하시나요고치 속에 갇혀 산 세월당신 묻지 않으셔도 어찌 다 아시고이리도 아름다운 사랑으로세월의 상처 어루만져 주시어눈물짓게 하시나요흰 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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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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