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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나의 버킷 리스트

민완기 ch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1-24 08:57

민완기 / 한국문인협회 밴쿠버지부
꼬박 만 2년여를 팬데믹의 우울한 잿빛 그림자 속에서 지내온 셈이다.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아 6호선 3번 열차에 떠밀려 탑승을 하게 되면서, 문득 쳐다본 달력 위 ‘2022’라는 굵은 숫자는 진정 어린 시절의 공상과학 소설과 ‘새소년’ 잡지의 미래특집난에서나 만나던 숫자로 다가온다. 중년의 입문 단계에 서서, 특히나 아직도 오미크론과 델타 그리고 부스터 샷 등등 기이한 공상과학 만화의 용어들이 난무하는 이 수상한 시절에 나의 버킷 리스트를 새롭게 한번 점검하는 것은 그야말로 심기일전과 그리고 나를 채찍질하는 주마가편의 기회가 되어 주리라 생각해 본다.

나의 현재 삶 가운데 아직 없거나 못 이룬 소망을 담는 것이 일반적인 버킷 리스트이겠지만, 역설적으로 첫번째 순서는 스마트한 세계를 좀 멀리 벗어나보았으면 하는 소망이다. 언제부터인가 지나치게 똑똑한 문명의 이기에 포로가 되어서, 눈을 뜨면 날씨를 확인하고 플립보드를 열어 간밤에 업데이트된 뉴스를 열람한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는 카톡 단체방에 지인들이 보내온 영상과 글들을 클릭한 채로 밥을 먹고, 마주앉은 아내와 다정한 대화는 커녕 폰의 볼륨이 너무 큰지 확인하느라 가끔씩 눈길만 주곤 한다. 차에 오르면 제일 먼저 블루투스를 켜고 구글맵을 열어 언제나 그 분(?)의 친절하고도 단호한 지시에 순응을 한다. 직장생활을 한다면 꿈도 꾸지 않았겠지만, 자영업의 몇 안되는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일하는중간 중간 짬이 날때마다 유투브로 내가 구독한 프로들과, 특히나 대선을 앞두고 각종 정치 평론가들의 현란한 판세 분석과 뉴스까지 챙겨 보고 듣느라 늘상 우측 손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은 바쁘기만 하다.

저녁시간 집에 와서도 넷플릭스 새 영화와 각종 오디션 프로를 시청하느라 여전히 손가락과 안구는 열 일을 한다. 그리고는 아침이면 밤늦도록 달린 후유증으로 찌뿌둥한 얼굴이 되어 또 다시 날씨 화면을 들여다보고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부끄럽기 한이 없지만 무엇보다 첫번째로 리스트에 적을 것은 바로 나의 내면의 생각은 점차 메말라가고, 겉도는 정보와 말초적 자극만 가득찬 이 페이크 스마트의 세계로부터 과감하게 멀찌감치 물러나 앉는 것이다. 물론 내가 아무도 살지않는 대자연의 호수가로 돌아가 ‘월든’을 집필한 은둔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될 수 없음은 잘 알지만…

둘째로는 2019년을 끝으로 발이 묶인 해외여행을 훌쩍 떠나는 것이다. 이왕이면 아내의 바램대로 스페인 마드리드 중심의 투어도 좋겠고, 아니면 아직까지 합의는 안되었지만 함께 카마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10여년 만에 파리를 다시 찾아도 좋을 것만 같다. 작년에 마침 몇 분의 지인 분들과 뜻이 맞아, 샹송을 원어로 불러보는 것을 목표로 좋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불어 공부를 틈틈이 줌으로 하곤 했었는데 그 즐거움이 기대보다 커서 현지 여행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과 또 몽마르뜨 언덕을 다시 지나며 버스킹하는 젊은 가수를 만나게되면 그 때는 따라 부를 수 있는 정도는 되고 싶은 마음에 좀 더 외국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해보리라는 다짐인셈이다.

그 밖에도 손주들과 함께 샌디에고 씨월드를 찾아 우비를 차려 입고 앞자리에 앉아 물을 흠뻑 뒤집어 쓰면서 범 고래쇼를 함께 보는 것과, 25년 구력의 골프 인생에 홀인원을 한번 함으로써 화려한 마침표를 찍고 싶은 소망도 있다 또 얼마전 교회에서 색스폰 연주로 ‘어메이징 그레이스’ 특송을 듣고는 황홀한 마음에 악기를 한 번 배워서 찬양곡 한 곡을 내 손으로 연주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끝으로 버킷 리스트에 소중히 담아 놓을 것은 중년의 가장 멋진 일은 사람들과의 화해라는 말처럼, 혹시나 나의 행동과 말과 선택으로 인해 틀어진 관계들이 생각난다면 그 즉시 화해하고 용서를 구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을 적을 것이다.

‘어떠한 사람도 한 번에 한 벌씩 밖에는 옷을 입을 수 없다’라는 서구의 속담은 인간이 갖고있는 시간과 경제적인 한계의 속성을 드러내는 말이리라. 그러나 마음만은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어도, 반으로 줄어들지 않는 유일한 것이다. 팔복의 세번째와 복과 일곱번 째 복을 하늘위에 차지하는 벅찬 소망을 담아서 새롭게 버킷 리스트를 꾹꾹 눌러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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