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캐나다 2인자가 러 제재 선봉에 선 이유는?

뉴욕=정시행 특파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3-07 08:32

캐나다, 러시아 석유 금수 세계 첫 단행
제재 주도하는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부총리
스탈린의 우크라이나인 3만명 학살 첫 보도한 기자 출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서방국가의 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캐나다가 유독 강도 높고 독특한 제재를 이끌어 주목받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이는 캐나다 정권 2인자인 부총리로, 우크라이나계다. 그는 구(舊)소련의 치부를 파헤쳐 비밀경찰(KGB)의 추적까지 받은 기자 출신이다.

지난 6일(현지 시각) 미국과 유럽 등 각국은 러시아에 대한 석유 수입 금지 제재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의존과 각국의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손대지 못했던 제재다. 

지난달 28일 캐나다가 세계 최초로 이 조치를 단행하면서 동참하자는 분위기가 확산한 것이다. 캐나다는 러시아 시가총액 1·2위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과 로스네프트 고위 인사 10명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이날부터 영국과 독일, 폴란드 순방에 돌입,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동맹 협력 강화에 나섰다.

트뤼도 내각은 지난 3일 러시아를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에서 퇴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서방에선 러시아가 해외로 도피한 정적(政敵)이나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인터폴을 악용해왔다고 오랫동안 우려했지만, ‘인터폴 퇴출’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내든 건 캐나다다. 캐나다는 또 우크라이나 피란민에겐 최대 2년의 임시 거주 자격을 부여하는 ‘긴급 여행 허가’를 무제한 허가했다. 지난 1월엔 서방국 중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에 특수부대를 파견하고 무기를 지원했다.

러시아의 직접 위협을 받지 않는 캐나다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일까. 캐나다는 우크라이나계 주민이 136만명에 달한다. 러시아(190만명)에 이어 우크라이나 교민이 가장 많이 모여 사는 국가다. 나라를 세우지 못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19세기 말부터 각종 분쟁과 1·2차 세계대전을 피해 캐나다로 넘어와 서부 지역에 많이 정착했다고 한다.

특히 러시아산 석유 금수(禁輸) 조치 등을 내린 크리스티아 프릴랜드(54)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모계(母系)가 우크라이나다. 프릴랜드는 남편이 영국인이지만, 세 자녀와 우크라이나어로 대화한다고 캐나다 일간 글로브 앤드 메일은 전했다.

프릴랜드는 미국 하버드대 사학과 재학 중이던 1989년 우크라이나로 건너가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면서 스탈린 치하의 우크라이나인 처형과 아사(餓死)의 비극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그는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북동쪽 소나무숲 ‘비키브니아 공동묘지’에 암매장된 우크라이나인 3만명이 소련의 주장대로 독일 나치에 학살된 게 아니라, 스탈린에 의해 처형됐다는 사실을 취재해 뉴욕타임스에 처음 보도했다. 소련은 우크라이나의 반(反)소련 인사 등 정치범들을 고문하고 학살한 뒤 이 숲에 매장했으며, 1970년대 이곳을 콘크리트로 덮어 대형 버스 터미널을 지으려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비키브니아 공동묘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인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갈 당시 3만명을 처형해 묻은 곳으로, 소련은 이 무덤을 '나치의 만행'으로 선전해왔지만 소련 패망 직후 자신들의 짓이었음을 실토했다. 이 사실을 1989년 뉴욕타임스 보도로 세계에 처음 알린 사람이 바로 현 캐나다의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부총리다. /페이스북
우크라이나의 비키브니아 공동묘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스탈린이 우크라이나인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갈 당시 3만명을 처형해 묻은 곳으로, 소련은 이 무덤을 '나치의 만행'으로 선전해왔지만 소련 패망 직후 자신들의 짓이었음을 실토했다. 이 사실을 1989년 뉴욕타임스 보도로 세계에 처음 알린 사람이 바로 현 캐나다의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부총리다. /페이스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당시 고위 간부로 있던 KGB는 비키브니아를 취재하던 프릴랜드에게 ‘프리다’라는 코드명을 붙여 추적하고 취재물을 압수하려 했다. 하지만 프릴랜드는 캐나다 외교 행낭에 사진과 기사를 넣어 보낸 뒤 피신했다. 소련은 패망 직후에야 ‘비키브니아의 진실’을 인정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1990년대에 발굴된 우크라이나 내 집단 매장지가 210곳에 달했다. 희생자 숫자는 수십만명에 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명성으로 프릴랜드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모스크바 지국장, 로이터통신 부국장이 됐다. 러시아 개혁 개방의 과정을 다룬 책, 러시아 지배층의 자산 축적 방식을 파헤친 책을 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프릴랜드는 트뤼도 총리가 2015년 집권한 뒤 국제무역 장관, 외교장관, 부총리 등으로 발탁됐다. 그는 ‘트뤼도의 오른팔’이라고 불린다.

프릴랜드는 지난 3일 대러 경제제재를 발표하면서 “우리는 일주일 전만 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며 “푸틴과 올리가르히(정권과 유착된 신흥 재벌)는 우리가 (제재를) 계속할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크리스티아 프릴랜드 부총리(출처=Chrystia Freeland Facebook)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캐나다, 러시아 석유 금수 세계 첫 단행
제재 주도하는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부총리
스탈린의 우크라이나인 3만명 학살 첫 보도한 기자 출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서방국가의 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캐나다가 유독 강도 높고 독특한 제재를 이끌어 주목받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이는 캐나다 정권 2인자인...
2차 접종 만으로는 예방 효과 떨어져
3차는 오미크론에 대한 항체 25배 증가
코로나 신종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이 기존 코로나 백신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미국 제약사 화이자가 자사 코로나 백신 3차 부스터샷을 맞으면 오미크론 변이...
캘리포니아 주민 백신 다 맞고 남아공 여행갔다가 확진
미, 모든 국제선 여행객에 하루 이내 음성 결과 요구키로
미국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 감염자가 확인됐다. 미국 첫 확진자도 우리나라 확진자와 마찬가지로 백신을 2차까지 접종하고 돌파 감염된 경우여서, 오미크론 변이에...
캐나다 옛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어린이 유해가 대거 발견된 사건과 관련, 일부 시위대의 분노가 영국 여왕에게까지 향했다.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에서 ‘원주민 인종청소 규탄 시위대’가 지난 1일(현지 시각) 주의회 앞에 설치된 현 엘리자베스 2세(95) 영국...
(이키토스 AP=연합뉴스) 인구당 코로나 사망자가 세계 최고인 페루에서 코로나 사망자들을 묻은 공동묘지. 페루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코로나 사망자가 18만명에 이르며, 올해 5개월여...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