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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안 가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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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 : 2022-04-04 09:29

제10회 한카문학상 산문(수필)부문 버금상
박광일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밴쿠버 공항의 보안 검색대를 들어가기 전에 아들이 말한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기도 하면서도 마음이 아리다. 그렇지만 단호하게 “안돼”라며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보다 더 나은 교육과 자연환경을 자녀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한국에서의 모든 기득권과 특권을 포기하면서 이민을 온다. 나도 그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 우연히 마주한 신문광고를 보고 이민을 신청했고, 비교적 순조롭게 캐나다로 오게 되었다. 오기 전에 도서관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면서 캐나다에서 직업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아무 일이라도 할 각오로 왔다. 상황은 내가 예상한 것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으로 체득한 것이기에, 적응을 못할 경우 1~2년 후에는 한국으로 되돌아가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캐나다로 향했다. 그러다 보니 홀어머니에게도 잠시 아이들 공부 때문에 캐나다에 가겠노라고 했고, 이삿짐도 본가와 처가에 분산시켜 놓고 일부만 가지고 왔다.

  큰 아이는 9학년 그리고 작은 아이는 7학년에 편입되었다. 7학년은 한 교실에서 하루 종일 같은 반 학생들과 수업을 듣다 보니 작은 아이는 담임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9학년은 이동식 수업이다 보니 초등학교보다는 학교와 친구 적응에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같았다. 큰 아이는 10학년쯤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을 사귀면서 축구게임이나 스타크래프트 정도의 게임에서 좀 더 중독성이 강한 리니지에 빠지게 되었다. 대학을 가려면 서서히 내신을 신경 써야 할 학년인데, 집에서는 숙제가 없다 거나 학교에서 했다며 게임에 몰두하더니, 11학년 올라가서는 가끔은 학교를 빠지고 도서관으로 가기 일쑤였다. 1인당 40분간 컴퓨터를 쓸 수 있는 것을 이용하여 가족 도서관카드로 게임을 하는 것을 몇 번 목격도 했다. 12학년이 되어서는 오전에 일어나지 못해서 학교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감선생님과 상담하여 오전 수업을 빼기로 했지만, 오후 수업조차 안 가는 날들도 있었다. 잔소리도 하고 야단도 치고 칭찬도 하고 나름 격려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학교 상담 선생님과 면담도 여러차례 했고, 외부의 상담도 받았다. 혹시라도 캐나다 생활에 적응을 못하여 우울증이 있나 해서 검사도 받았지만 다른 이상은 없었다. 진로를 알면 변화가 올 듯하여 진로상담 지도도 받았고, 축구를 좋아하기에 UBC에 다니는 강사와 축구를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기를 바랐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워서 목사님 들에게 도움도 청했고, 한국의 게임중독 치료센터에 자문도 받았지만, 게임에 빠진 아이는 참으로 거칠기만 했다. 한국 뉴스를 보니 아버지가 컴퓨터를 부수고, 아이를 골프채로 때렸다는 기사를 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그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내는 울기도 많이 울고,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다. 내가 너무 무기력해 보였다.

  한국으로 돌아갈 까도 고민을 하며, 한국에 돌아가면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는 한국학생들을 따라 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되었다. 다행인 것은 작은 아이가 적응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있는데, 처음 이민 올 때처럼 가볍게 움직일 수만은 없었고, 첫째 아이도 나이 들고 본인이 스스로 깨달으면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뿐이었다. 나와 아내는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좋고, 대학교에 안가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갖어야 힘이 들어도 견뎌낼 수 있다는 입장인데, 나와 아내는 오랫동안 교육에 종사했지만, 내 아이에게만은 속수무책이었고, 어디 가서 교육직에 있었다며 말하기는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었다.
큰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육청의 디플로마 과정을 이수하고 사무직으로 취직을 했고, 일을 하면서 고등학교 과정을 업그레이드를 해서 4년제 대학을 가겠다고 고등학교의 일부 과목을 수강신청 했다. 아내와 나는 현재의 고교 성적으로 일단 2년 과정의 공부를 해보고 계속 공부할 마음이 있으면 4년제에 편입할 것을 권했지만,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았으나, 2개월정도 다니다가 마무리 단계에서 게으름을 피우더니 원하는 성적을 얻질 못했다. 스스로 결정했으면 열심히 해서 성취를 해야 하는데, 목표를 향한 추진력과 인내심이 부족했다. 경쟁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남들 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남들 만큼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이런 게으른 삶에서 탈출은 헤세의 ‘데미안’에서 나오듯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본인이 깨닫고 본인의 힘으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와야 한다. 그것은 부모도 친구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본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생활에서 그것을 깨닫고 생활에 옮기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이 들어 캐나다 군입대를 권유했다. 설득 끝에 입대지원을 했고, 구술 및 서술 그리고 체력 테스트와 레퍼런스 확인 과정을 거쳐 지원한지 1년후에 입대가 확정되었다. 입대가 확정되니, 입대 기간 전까지 열심히 체력훈련을 한다. 일부 부모들은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 이민을 하는 경우를 보았는데, 우리는 반강제로 아들을 군대에 입대시켰다. 캐나다에 온지 5년만에 집에서 수천 Km 떨어진 군대에 보내려니, 마음이 찢어지듯 아프지만, 우리 부부는 큰 아이가 멋진 청년으로 변하여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결정하였다. 군입대시 같이 가려 했지만, 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부대 버스로 이동한다기에 아들만 보내기로 하고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탑승게이트로 들여보내는데 정말 가슴이 아리다. 어느 부모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자식에게 권하겠냐마는 앞으로 멀고 험난한 인생길을 혼자서 헤쳐 나아가야 하며, 본인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야 함을 일깨울 수밖에 없었다.
“안가면 안돼?”하며 보안검색대 앞에서 불안하고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일 때, 먼 이국 땅 캐나다에서 가족과 멀리 떨어져 고된 훈련과 복무과정을 생각하며 잠시 마음이 아프고 잠시 흔들렸지만, 여기서 흔들리면 또 다시 게으른 생활로 돌아갈 것이고, 앞으로 변화는 더욱 어려워지리라 생각하며 큰 아이의 미래를 위하여 현재의 아쉬움과 이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아들과 인사를 나눴다. 큰 아이가 인사를 마치고 탑승구를 향해서 들어간다. 부디 건강하게 아주 멋진 청년으로 다시 볼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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