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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중퇴한 수포자 ‘수학 노벨상’ 받았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김은경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7-05 09:00

허준이 교수, 필즈상 수상··· 한국계 최초



허준이 교수는 필즈상을 받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학자로 인정받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대학원에서부터 수학을 공부한 늦깎이 수학자다. 어린 시절 수학과 담을 쌓고 시인이 되길 원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수학에 입문한 것이다. 허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초·중·고나 대학 때는 수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수학·과학 전문 매체인 콴타매거진은 허 교수가 박사 학위를 받기 전에 세계적 수학 난제를 푼 데 대해 “테니스 라켓을 열여덟에 잡았는데 스물에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라고 비유했다.

◇수학 늦었다고 일찌감치 포기

허 교수의 부친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나와 미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은 허명회 전 고려대 통계학과 교수다. 어머니는 서울대 노어노문학 교수를 지낸 이인영 교수다. 아버지는 허 교수가 초등학생 때 수학 문제집을 풀게 한 적이 있지만, 허 교수는 몰래 답안지를 베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이를 눈치채고 답안지를 몽땅 잘라 숨기자 동네 서점에 가서 답을 적어왔다. 허 교수는 “그때 일로 혼이 났고 아버지는 더 이상 수학 가르치기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중3 때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역시 포기했다. 선생님이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한 것이다. 허 교수는 “그 시절 나는 스스로 수학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며 “지금 생각하면 어떤 일이라도 시작하기에 늦은 일은 없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시인이 되고 싶어 고교를 중퇴했고, 검정고시와 재수 학원을 거쳐 서울대 물리학과로 진학했다. 학업보다는 다른 곳에 관심이 많아 F 학점이 수두룩했고 그 탓에 대학을 6년이나 다녔다.


◇“수학은 열린 마음으로 봐야”

허 교수는 나중에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을 거쳐 미국 유학길에도 올랐다. 1970년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교수가 추천서를 써줬지만 미국 대학 12곳 중 일리노이대만 합격했다. 대학을 6년이나 다녔고 성적도 나빴으니 당연했다. 박사과정 첫해 수학의 난제인 리드 추측을 해결하자 한 해 전 그를 떨어뜨렸던 미시간대로 옮겨 박사 학위를 마쳤다.

허준이 교수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 어린 시절 수학과 멀어졌었던 듯하다”며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쉽지는 않겠지만, 부담감 없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면 수학의 매력을 야금야금 찾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의 전 국민이 수학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데 대해 “수학이 문제가 아니라 입시 구조가 문제”라며 “내년부터 입시에 수학을 안 넣겠다고 하면 바로 수학 스트레스가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우스개를 했다. “미국에서 보니 그렇게 수학 공부를 많이 하고 온 한국 학생들이 뜻밖에 수학에 대한 깊이가 낮았어요. 그런데 수학 스트레스는 한국 학생이 심하죠. 입시 수학의 병폐입니다.”

허 교수는 “사람들이 수학의 가치와 매력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순수 수학은 인류가 지난 수천년간 꾸준히 발전시켜온 놀이 문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전 세계의 수많은 수학자들이 오직 즐겁기 때문에 수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수학자가 아니더라도 수학의 가치를 이해하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허 교수는 “수학은 답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과 방향이 사람마다 달라도 정답은 하나”라며 “요즘처럼 의견 대립하다가 지치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어물쩍 결론 내리는 세상에선 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흔들리지 않고 계속 창의적 연구할 것

허준이 교수는 “필즈상 수상으로 앞으로 조용한 삶이 흔들릴까 걱정이 되다가 친구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들뜨기도 한다”면서 “그래도 목표는 아름다운 구조를 만들고 발견하는 것, 계속 창의적이고 흥미를 갖는 것, 동료 수학자와 더 큰 사회를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필즈상 수상에 대해 무엇보다 가족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허 교수의 아내 김나영씨는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 동기다. 그는 아내가 두 아이를 키우느라 공부를 그만둬 늘 미안하다고 했다. 수학 이외의 생활은 그래서 늘 가족에게 집중한다고 했다.

사진=허준이 교수(출처=ICM2018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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