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삶 그리고 일기

정효봉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8-08 11:42

정효봉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초등학교 시절부터 바른 글씨체로 책 속의 글을 베껴 쓰는 것을 좋아했었다.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의 내용을 발췌해 정자체의 글씨로 문장을 따라 쓰는 것을 연습하곤 하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문학 대전집을 당시 월부로 구매해서 선물로 사 주셨는데, 이 전집에서 처음 골라 읽게 된 책이 그 유명한 '처칠 회고록' 이었다. 처칠 회고록을 시작으로 한 권 한 권 읽으면 읽을수록 너무 재미있어서 24권의 대전집을 모두 섭렵하게 되었다. 특히 책에 나오는 글귀들이 내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길 때는 그 글들을 노트에 빽빽하게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책 속의 글에 나의 생각을 덧붙여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적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창작한 글도 함께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글쓰기의 시작은 책 속에서 감명 받은 문장을 베껴쓰는 글씨 쓰기 연습에서 비롯된 것 같다.
   글씨 연습을 하는 이 습관은 중학교 시절 이후 저녁마다 매일 일기를 쓰는 일상으로 바뀌었다. 처음엔 노트에 그 날의 날짜와 날씨를 기록하고 간단한 메모형식으로 수첩에 남겨두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간단한 메모는 문장으로 바뀌었으며 메모수첩은 일기장으로 바뀌었다. 사춘기 시절 일기 쓰는 밤은 하루를 돌아보며 마무리하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일기는 점점 사적인 비밀의 내용이 곁들어졌고 나만의 비밀을 간직한 비망록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동생이 대뜸 이렇게 물었다. " 형, 누구 좋아해? " 순간 난 동생에게 큰소리로 화를 내었고 그 날부터 학교에 일기장을 가지고 다녔다. 일기장을 집에 두면 동생이 또 뒤져볼까봐 수첩형태로 만들어진 일기장을 책가방에 매일 넣고 다니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가을로 기억되는데, 그 당시 고교 진학 시험 준비로 밤늦게까지 자습을 했었다. 어느 날 내 짝과  함께 저녁도시락을 먹으면서 메모할 내용이 있어서 수첩을 꺼낸다는 것이 그만 일기장을 꺼내고 말았다. 아차 싶어 급히 가방에 다시 집어넣었는데, 이를 눈치챈 그 친구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가방에서 일기장을 몰래 꺼내가지고 사라졌다. 자습시간이 끝날 무렵 친구는 피식피식 웃으며 내 일기장을 가지고 나타났다. 화가 치밀어 오른 나는 친구를 보자마자 코피가 날 정도로 마구 때렸다. 이때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친구와 나는 교무실로 불려가서 반성문을 쓰고 일기장도 압수당했다. 내 비밀을 모두 들킨것 같아서 창피하고 자존심 상했던 그 때 그 마음은 한동안 잘 다스려지지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당시 선생님이 왜 일기장을 가져가셔야만 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도 일기쓰기는 계속 되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윤동주 님의 '서시'를 처음 접했을때 난 온 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그 시에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 그로부터 매일 저녁마다 하루일과를 한 편의 시로 표현하려고 노력하였다. 일 년여 정도 시적 감성으로 가득차 있던 일기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다시 변화하였다. 피천득 님의 수필집을 읽고 나서 그 분의 문체를 흉내내가며 일기를 써 내려갔다. 어느새 짧았던 나의 일기는 점점 서 너 쪽이 넘는 한 편의 수필로 바뀌어갔다. 이 때부터 나의  문학창작 활동의 기틀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대학 시절에는 'TIME' 동아리에 가입하여 회원들과 영문일기를 쓰고 함께 토론하는기회를 자주 가졌다. 졸업 때까지 계속된 나의 영문일기는 하루일과를 서툰 영어로 작성하면서 일기라기 보다는 영작문을 연습하는 영어 공부의 기능이 더 컸었던 것 같았다. 그 이후 사회인이 되어서는 직장생활에 바쁘다는 이유로 잠시 일기쓰기가 중단되었다. 한참 동안 일기의 존재를 잊고 지내다 결혼 후 첫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메모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일기는 다시 새롭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일기에는 가족들에 대한 사랑,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나 삶의 애환이 깃든 많은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다. 큰 아이가 하키토너먼트 결승전에 연속 세 골을 넣고 우승하여 환호했던 날의 그 흥분된 감정으로 썼던 일기, 둘째 아이가 열감기에 걸렸을 때 빨리 나아지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글, 그리고 어려울 때마다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기도문 형식의 일기들. 지난 과거의 많은 일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스쳐 지나가며 인생의 지나온 길이 일기 속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가 있었다.
   초로에 접어든 지금 나는 아들과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보다는 손주에게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일기를 쓴다. 일기 속의 나의 과거들을 동화처럼 재미있게 들려주면 귀를 쫑긋 기울이고 듣고 있을 손주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 일기는 나 혼자만이 간직하는 비밀이 아니라 지나간 내 인생사를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추억의 자료들이다. 가끔 책꽂이 한 켠을 가득 채운 예전 일기장 한 권을 집어들어 회고록처럼 다시 읽어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거리이다. 과거의 일기를 꺼내 읽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있는 영화 주인공처럼 그리운 그 시절로 돌아가는 추억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일기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힘들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난 어김없이 아침 저녁 아무때나 일기를 찾아 두서없이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면 일기 친구는 아무 말없이 편안히 다 받아주고 나에게 마음의 위안을 안겨준다. 오늘도 잠자리에 들기 전 어김없이 펜을 들고 일기장을 펼쳐 본다. 일기쓰기는 나에게는 일상의 소중한 습관이며, 이 시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나의 소중한 글벗 일기, 늘 내 곁에 있어서 고맙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해주길 바란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별밤의 곡예사 2022.09.06 (화)
누구의 그리움인가?누구를 향한 그리움인가?별 하나 꽁꽁…나 하나 꽁꽁…늙은 분수처럼 잦아든 세월 뒤로꽁꽁 숨어버린나비 가슴꽃 가슴문둥이 같은 그리움은어둠으로나 만나지나영글다 만 가슴 들판을밤바람 에돌다 가면그대는잉크 빛 하늘 속에 외로운 곡예사외줄 끝에 매달려별똥별로 오시는가별 둘 꽁꽁…나 둘 꽁꽁…Acrobat in the Starry Nightwritten by Bong Ja AhnWhose longing is it?Whom is it longing for?One star deep in the sky…One star deep in my heart…Time has gone dry...
안봉자
말로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에는 대중을 상대로 하는 강연이나 설교가 있고, 서로 만나서 대화나누는 것이 대표적이다. 강연이나 설교는 말하는 사람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전하지만 대화는쌍방향이어서 서로 의견을 실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목적은 말하는 사람의생각을 상대방에게 알도록 전하는 것이다. 대화의 경우 상대방의 생각을 잘 못 알아듣거나의문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강연이나 설교는 일방적 이어서...
김의원
벽속에 갇힌 벌레 한 마리, 간헐적으로 숨 멎는다 어둠이 벽을 타고 내려온다 어디로부터 오는어둠의 굴레인가어둠이 소리를 난타한다 난타 된 소리들이 모서리마다 걸린다 실오리같이 갈갈이 찢겨지는소리의 발광체,발광체 속에서 벌레 한 마리 간헐적으로 팔닥인다 숨 멎을 듯 곤두박질치는저만치 고개 숙이고 가는 이 누구인가저 강 언덕을 내려간 한 사람을 지우듯어둠은 나를 지우며 간다물안개 피는 저녁 무렵이다한 사람의 등 뒤에서 그림자...
이영춘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김춘희
별밤의 곡예사 2022.08.29 (월)
누구의 그리움인가?누구를 향한 그리움인가?별 하나 꽁꽁…나 하나 꽁꽁…늙은 분수처럼 잦아든 세월 뒤로꽁꽁 숨어버린나비 가슴꽃 가슴문둥이 같은 그리움은어둠으로나 만나지나영글다 만 가슴 들판을밤바람 에돌다 가면그대는잉크 빛 하늘 속에 외로운 곡예사외줄 끝에 매달려별똥별로 오시는가별 둘 꽁꽁…나 둘 꽁꽁…Acrobat in the Starry Nightwritten by Bong Ja AhnWhose longing is it?Whom is it longing for?One star deep in the sky…One star deep in my heart…Time has gone dry...
안봉자
(하)  이곳에 있는 동안은 온통 소리에 민감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마음과 귀를 열어 온전히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 그 시간이 너무 소중했다.날개를 펼쳐 날아오를 때 붉은 깃털이 너무도 예쁜 붉은 날개 검은 새 (Red- winged blackbird)하루에도 몇 번 씩 방문하여 작은 배를 채우며 먹는 거에 진심인 귀여운 다람쥐 (Squarrel)네 마리가 날아와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가 한 마리 씩 차례로 먹고 날아가는 질서 정연한 회색 어치 (Canada Jay / Gray Jay /...
김혜진
어제 하루는왠지미안하고안쓰럽고눈물 나고너에 대한 집착이전부인 하루였구나오늘 하루도괜히넘어질라아파할라힘들까여전히 걱정하는 마음떠나지 않는구나또 내일도뜬금없이일은 없는지잘 있는지괜찮은지너의 좋은 하루가 희망이되어버린 일상의 나날들물난리가 났다는 데폭염 경고가 내렸다는 데넌, 괜찮은지하루, 한 시도 스쳐 지나가는 법이 없는부질없는 걱정에 자꾸만 애가 타지만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는부모의 간절한 마음사랑의...
나영표
세비야의 노을 2022.08.29 (월)
재작년 계획을 세웠다가 2년여 발이 묶였던 아내의 늦은(?) 환갑 여행을 스페인으로 떠났다. 개인여행이다 보니 두 달여에 걸친 준비와 나름 꼼꼼하고 치밀한 작전계획을 수립하여 여행을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포루투칼을 포함 총 15박 16일의 일정은 그야말로 교통편과의 한 판 전쟁이었다.  소위 ‘분노’여행이라고 그간 발이 묶였던 울분을 한번에 터뜨리느라 유럽의 공항마다, 기차역 마다 엄청난 승객들이 몰려들어서 턱없이 부족한...
霓舟 민완기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