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

세비야의 노을

霓舟 민완기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2-08-29 08:46

霓舟 민완기 /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재작년 계획을 세웠다가 2년여 발이 묶였던 아내의 늦은(?) 환갑 여행을 스페인으로 떠났다. 개인여행이다 보니 두 달여에 걸친 준비와 나름 꼼꼼하고 치밀한 작전계획을 수립하여 여행을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포루투칼을 포함 총 15박 16일의 일정은 그야말로 교통편과의 한 판 전쟁이었다.
 
 소위 ‘분노’여행이라고 그간 발이 묶였던 울분을 한번에 터뜨리느라 유럽의 공항마다, 기차역 마다 엄청난 승객들이 몰려들어서 턱없이 부족한 그라운드 직원 숫자와, 거기다가 이상 폭염까지 더해 매일 연착과 결항과 취소가 반복되었다. 전체 일정의 호텔 예약과 현지 투어까지 부킹을 해놓은 입장에서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나가 펑크나면 줄줄이 펑크가 이어질 수 밖에 없어서 한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날에는 예약된 교통편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자리를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차대한 미션이 되었다.
 
어찌어찌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세고비야, 톨레도 그리고 그라나다와 세비야 일정을 계획대로 마치고 이제 내일이면 포루투칼로 넘어가는 날인데 그만 항공편이 캔슬 되었다는 이메일이 아침 일찍 도착하였다. 출발 전 두 달간의 준비와 노력, 그리고 사전 티켓팅을 했음에도 비행기좌석을 담보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어이없고 믿어지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였다. 이런 상황이 오자 평소에는 잘 없던 전우애가 생겨나 부부가 똘똘 뭉쳐(?)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불타오르게 되었다.
 
과감하게 그날의 투어 일정을 포기하고, 나는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가고 아내는 숙소에서 짐을 꾸리며 내 연락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아내는 기차나 버스 편으로 국경을 통과하는 플랜 B를, 나는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여 직접 운전해서 이동하는 플랜 C를 또한 계획하였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보딩라인은 인산인해이고 직원들은 내 다급한 요청에도 그저 기다리라고 서로 핑퐁을 쳐댄다. 보딩이 끝나면 도와주겠다는 한 직원의 말을 믿고 2시간후에 찾아가니 이번에는 매니져로 보이는 분이 곧 새로운 보딩이 시작되니까 그 보딩이 끝나면 오란다…  보통 이러한 경우라면 항공권을 포기하고 차를 렌트헤서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맞겠지만, 나의 간절한 눈빛을 그녀가 틀림없이 보았으리라 믿고 한번 더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또 다시 두시간 반의 시간이 흐르고, 보딩데스크 앞에 서서 하염없이 매니져 쪽을 바라보는 내 모습이 가엽고 긍휼했는지 매니져는 그제서야 나를 불러 내 예약번호를 메모하더니 오피스로 들어가고 30여분이 지나, 만면에 미소와 양손에 프린트 된 종이 2장을 들고 내게 걸어오는 것이 아닌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해서 미안하다는 얘기와 내일 우리가 탈 비행기는 활주로 사정으로 캔슬 되었으니, 그 3시간 뒤에 뜨는 바로 다음 비행기로 가라면서 좌석까지 지정된 보딩패스 2장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내일은 줄 서지 말고 공항에 오는 대로 직원에게 바로 가서 짐만 부치면 된다고 따로 메모까지 해두었단다. 그간 스페인에서 가우디 성당과 피카소의 그림들, 그리고 알함브라 궁전을 거닐며 느꼈던 감동과는 사뭇 다른, 더 깊은 감동이 순간 밀려왔다.
 
그날 오후 늦은 시간,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리 부부는 세비야 메트로폴 파라솔을 찾아 노을과 야경을 즐겼다. 이 세상 어디서나 sunset 타임은 똑같이 흘러가겠지만, 유독 세비야의 일몰은 빠르게 느껴졌다. 온통 주홍으로 붉어진 해가 불타는 노을을 놔두고 쑤욱 언못에 빠지듯이 사라져가자 그때부터 진짜 본격적인 아름다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마치 우리의 삶이 그랬으면 하듯이… 대성당과 히랄다탑, 황금의 탑에 스팟 조명들이 켜지고 메트로폴 파라솔 격자 지붕은 LED조명으로 빛이 형형색색 바뀌어가며 세비야의 밤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아마도 한 사람의 따뜻한 친절함이 이토록 잊지못할 아름다움을 선사한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보았다. 아내는 이번 여행중에서 그곳이 가장 좋았다고 지금도 얘기한다.
 
  황홀함에 빠져서 연신 사진을 찍어대는 중에 문득 서정윤의 시  ‘노을’이 떠 올랐다.  ‘누군가 삶을 마감하는가 보다/ 하늘에는 붉은 꽃이 가득하다/ 열심히 살다가/ 마지막을 불태우는 목숨/ 흰 날개의 천사가/ 손잡고 올라가는 영혼이 있나 보다/ 유난히 찬란한 노을이다’. 그 날밤 세비야의 하늘은 정말 유난히도 아름답기만 하였다.    
 


밴쿠버 조선일보가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기사의 저작권과 판권은 밴쿠버 조선일보사의 소유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허가없이 전재, 복사, 출판, 인터넷 및 데이터 베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 서비스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이제 신문도 이메일로 받아 보세요! 매일 업데이트 되는 뉴스와 정보, 그리고
한인 사회의 각종 소식들을 편리하게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광고문의: ad@vanchosun.com   기사제보: news@vanchosun.com   웹 문의: web@vanchosun.com

오후 2022.09.19 (월)
내 시야를 간지럽히는 이 태양을좀 더 쬐게 하여 주시옵소서 노을이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습니다 지나는 철새와 간드러진 아이의 웃음벼랑 끝에 달린 풀꽃의 흔들림까지 아직은 만나 손잡고 사랑해야 할 내 생애의 아쉬움이 너무 많습니다 조금만 더 이 햇빛 아래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김경래
   "어우, 짜.김치가 너무 짜.” 19살 딸이 겉 절이 김치를 먹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어떡하지, 요즘 내 입이 이상해…맛을 못 보겠어.” 갱년기가 왔는지 요즘 따라 입맛도 밥맛도 없는 내게 커다란 파도 같은 기억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예전에 엄마에게 했던 말이었다. 엄마가 갱년기를 심하게 앓고 있을 때, 난 엄마의 아픔이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음식이 짜다 달다 라고만 투정을 했었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리고 “안 먹어.”하면서 밥...
허지수
무궁화나무 2022.09.19 (월)
아침마다 피던 꽃 무더기잎새 푸른 칠월 꽃 피어나면서늘바람 불어올 때까지 수천 송이피고 지고 또 피는 무한 꽃 차례올해도 변함이 없을 줄 알았다몰랐다, 내내 기다려 보아도봄 날에 눈이 나고 잎이 피는그런 찬란한 시간 오지 않고무겁고 어두운 기운만이 온몸을휘감아 버릴 줄 진정 몰랐다팔월이 마루에 다 오르도록이파리 하나 없이 텅 빈 그 자리지난 겨울 답치기로 쳐내 버렸던얼기설기 얼크러졌던 가지는가시 못 되어 점점 박여오는데마침내...
강은소
트럭커의 신세계 2022.09.12 (월)
내가 살아온  지난 70여 년은 과거 어느 시대와 비교가 안 되는 천지 개벽의 삶을 살아온  느낌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서울은  6.25전쟁 이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농경사회의 풍경이 남아있었다. 종로통 도로변에는 기와집이지만 골목에는 초가집들이 있어 가을에는 초가집 지붕 갈이를 하였으며, 거리에는 소달구지가 배추나 장작을 날랐다. 집집마다 화장실은 푸세식이라 몇 달마다 변이 차면 똥퍼 아저씨가 와서 치워야 했다. 심지어...
김유훈
맷돌 2022.09.12 (월)
긴 세월  갈던 것이 녹두와 콩뿐이랴 어머니                      온갖 정성                 넣고 넣고 돌리시니   그 사랑 눈에 맴돌아빈 맷돌을 더듬네  (임인년 추석을 맞으며)
늘샘 임윤빈
인생의 시계가 황혼을 향해 움직일 때누군가를 받아들이고, 또 누군가를 토닥거리며마음 졸이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고사랑할 수 있는 날이내겐 정말 얼마나 남았을까? /김재진(시인)오래전부터 허리가 부실해 쉬는 날이면 자주 산책하러 나간다. 침도 맞고 여러가지 한방치료도 해봤지만 좋아지는 듯하다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고는 한다. 전문가들 말로는 많이 걸어서 허리 근육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산책하며 이런저런 사람과 마주친다....
이현재
속살 드러낸 채 벌러덩 모래밭쉼 없이 달려드는 검푸른 파도태고적 이래 대자연 신비이려한 생각이 커피 한잔에 머무네헉헉대며 오르내리락 발길이너울 너울 춤추는 갈매기 쫓아구부정한 여섯 마디 아픈 허리건너편 산 자락에 모로 뉘었네속절없이 흐르는 게 세월이여분별없이 사는 게 달관이라니어여어여 허리 매인 세상 살이노을 속 아침 나팔꽃을 피우네구 만리장천을 나는 대붕이려삼천척 허공을 나는 폭포 수려한 생각 일어나 한마음...
우호태
코로나 바이러스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별러 왔던 동생들의 방문길도 열렸다. 혼자 사는 큰동생과 막내 부부가 서로 때를 맞추어 드디어 나를 찾아 주었다. 8월은 분주한 달이었다. 아들 집 아래층(Suite in law)에 사는 나의 조용한 공간이 형제들의 만남으로 꽉 찼다. 거동이 불편한 큰동생의 방문은 어렵사리 준비한 여행이었기에 뜻깊었고, 미국에서 찾아온 막내 부부의 방문은 여의찮은 형편에서 용단을 내린 여행이었기에 감사할 일이었다....
김춘희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