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숙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회원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눈물 나도록 고맙고 소중한 분들이 많이 있다. 그때는 감사하고 소중한 줄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나 값지고 소중한 사랑이었다.
첫째인 딸이 한 살 때였다. 우리는 광주 근교에 있는 교회 담임 전도사로 부임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사모였지만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교회에 있을 때 남편이 목사 안수를 받아 잊을 수 없는 사역지였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사택에 돌아오면 매일 아침 부엌문 앞에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다. 호박, 상추, 쑥갓, 파, 배추, 무, 때로는 김치, 고구마, 감자, 과일 등등. 누구의 손길인지 알 수 없지만, 사랑이 많은 천사가 다녀간 흔적임은 틀림이 없었다. 또 주일 아침이면 매번 허리가 60도로 굽은 김 권사님이 콜라 한 병과 과자 한 봉지를 꼭 가지고 왔다. 콜라는 목사님 설교를 마치고 목이 마르지 않도록 드리라는 배려이고, 과자 한 봉지는 한 살된 딸의 선물이었다.
허리 굽은 권사님이 교회에 오기까지 4km가 넘는 길을 홀로 걸어오는 것도 힘든 일인데 찬송가와 성경책을 넣은 가방에 콜라와 과자까지 챙겨 오는 것은 보통 정성과 사랑이 아니면 힘든 일이다.
그런데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주 빼지 않고 기쁨으로 봉지를 내미는 김 권사님의 모습은 분명 천사였다. 김 권사님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을 잃고 자식도 없이 혼자 힘겹게 살아왔다. 노점에서 야채를 팔며 생계를 유지해 온 것이다. 파, 상추, 깻잎 등을 깨끗이 손질해 조금씩 팔면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입술에는 감사가 넘쳤다.
자신을 위하여는 1원도 아까워 쓰지 못하면서도 십일조를 드리며 교회 일과 봉사는 최선을 다하며 헌신한다. 어려운 이웃들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때마다 도와주는 사랑 많은 권사님이다. 그래서 성도들이나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다들 좋아하고 존경했다. 그곳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군목으로 떠나려고 이삿짐을 챙기는 날, 부엌 바닥에 앉아 하염없이 우시던 김 권사님!
"사모님! 이제 떠나시면 우리 목사님 콜라는 누가 사주나요? 설교 끝나시고 목이 마르지 않으셔야 할 텐데...... 우리 린나 가 과자 먹고 싶다고 하면 어떡해요? 내가 사가지고 거기까지 갈 수도 없잖아요" 하시면서 눈물만 훔치시던 우리 권사님!
가을비 내리는 요즘 부쩍 권사님이 보고 싶다. 지금쯤 천국에서 우리를 보고 계실 텐데…
그때는 몰랐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 것임을....... 그때는 못 했다. 마음 깊이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한마디 말을.......
"김 권사님! 그 큰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늘을 향해 외쳐 본다.
오늘 가만 다짐해 본다. 지극히 작은 일처럼 보이는 하찮은 것 이라도 감사의 표현에 인색하지 말자고, 또다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범사에 감사하자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 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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