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수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오랜만에 알버타에 사는 언니와 얼굴을 보고 통화를 했다. 언니와 나는 20년 전, 밴쿠버에 와서 처음으로 만나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웃고, 울면서 외로운 타지 땅에서 아름다운 기억을 쌓았었다. 언니는 참 재밌는 사람이다. 웃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운 언니의 얼굴은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다. 본인은 늙었다고 환한 대낮에도 내가 선물해준 핑크색 극세사 잠옷을 입고 입을 하마처럼 벌리고 감을 먹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야! 라고 부르짖으며 날 또 웃기고 웃겼다. 언니는 결혼을 밴쿠버에서 하자마자 알버타로 떠나기 전, 여전사처럼 당당히 잘 살겠다고 큰소리치고 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인생을 살면서 가족 다음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수많은 타인들...난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흘려 보내고 또 다음에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거나 때로는 모른 척을 했다. 아픈 기억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생을 살면서 좋다는 생각을 한게 요즘 들어 생각해 본다. 전에는 아픈 기억 속 내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은 전부 인생에서 꼭 지워야 할 오점으로 치부하고 혼자 화를 참아내느라 힘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아픈 기억들이 전부 말캉해 져 있었다. 처음에는 떫고 텁텁해서 죽을 것 같더니만....
"언니, 감이 그렇게 맛있어?" "그럼, 얼마나 달콤한데..벌써 3개째야. 열심히 일하고 쉬면서 먹는 감이 너무 맛있어."
"언니가 감을 그렇게 좋아해서 남편을 잘 잡았나 봐..." "그치, 내가 그래서 감이 좋아. " 우리는 또 하하 호호 웃었다.
감만큼 좋은 과일이 또 있을까 싶다. 단감은 피로회복, 비타민C가 많고, 곶감은 타닌이라는 설사를 멈추는 효능이 있고 기관지염에 좋다. 심혈관 건강에 도움을 주고 혈액순화 시켜주는 홍시는 매년 가을에 나타나 돌아가신 아빠가 즐겨 드시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재주까지 가졌다.
아빠의 마지막 임종 소식을 전화기로 통해 듣게 되었을 때, 난 내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인생도 감처럼 때가 되어 떨어질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떫고 딱딱해서 혀를 마비시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지나면 너무도 달콤하고 쫄깃하고 부드러운 감이 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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