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정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최근 한동안 감기가 유행했다. 이 감기라는 놈이 얼마나 독했는지, 코로나보다 더 오래 여러 아이가 멈추지 않는 기침과 고열에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 우리 아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일주일 내내 기침하느라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갇혀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래도 더디게 조금씩 회복되더니 어느새 큰 아이는 깨끗이 나아 다시 학교에 나가고 친구들을 만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반면 좀 더 어린 둘째 아이는 쉽사리 낫지 않아 본인은 물론 우리 가족 모두 함께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런데 처음엔 감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다른 증상들이 또 나타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온몸이 가렵다고 긁길래 살펴보니 빨갛게 두드러기가 여기저기 일어난 상태였다. 그러더니 또 배가 아프다고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너무 걱정되었다. 그저 감기로 아픈 줄 알았는데, 이건 또 무슨 병일까? 패밀리 닥터에게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그 시기로부터 2주가 지난 후에나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급히 워크인 클리닉을 검색해서 찾아갔더니, 더 이상 대면 워크인 클리닉은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온라인으로만 만날 수 있으니, 집에 가서 다시 온라인으로 접속해 만나라는 것이다. 아이는 당장 아프다고 난리이고 나는 지금 의사를 봐야만 했다. 그런 심정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응급 케어 센터 (Urgent Care Centre)로 향했고, 4시간 반을 기다린 끝에 의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아이는 의사를 만나는 그 순간 너무 멀쩡해 보였다. 몇 시간을 내내 아프다고 보채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차분하고 편해 보였다. 심지어 대기 중 복통을 호소하며 화장실을 자주 오가던 아이는 그 마저도 없다며,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로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한 모양새였다. 결국 우리는 소득 없이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아이는 또 밤새 잠을 자지 못하며 복통을 느꼈고, 나도 아이 곁을 지키며 아이를 돌봐야 했다. 어디가 아픈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는지. 별다른 도움이 되진 못하지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어려서 엄마가 나에게 해주던 것을 아이에게도 똑같이 해주었다. 손을 비벼 따뜻하게 만든 후, 아이의 배에 대고 문지르며 아주 단조로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엄마 손은 약손, 아들 배는 똥배.”
예전 노래는 희한하게 모든 멜로디가 하나다. 자장가도 그렇고, 아플 때 부르던 노래도 그렇고, 일하며 힘들 때 부르던 노래도 그랬다. 엄마 뿐만 아니라, 어려서 엄마가 일을 가면 우리 남매들을 돌 봐주시던 할머니가 종종 저렇게 불러 주셨는데, 아주 단순하고 약간은 음치가 부르는 듯한 그 음을 따라 작은 목소리로 부르며 아이를 달랬다. 한국어로 대화하지만, 조금은 어색한 억양을 구사하는 아들도 그 노랫소리가 좋은 지 작게 따라 웃더라. 그리고 묻더라 자기 배는 왜 똥배냐며.
“이렇게 아픈 배는 똥배인 거야. 그래서 아픈 거야. 엄마 손이 약이니 문지르면 나을 거야.”
그렇게 한 시간을 같은 자세로 문지른 것 같다. 어깨가 조금씩 아려 오는데 아이가 스르르 잠들더라. 나도 너무 지친 하루였 던지라 옆에서 조용히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나보다 먼저 일어난 아이가 멀쩡한 듯 뛰어다니고 형하고 장난도 치고 싸움박질도 하더라. 안도의 숨이 나왔다. 나았나 보다. 진짜 엄마의 손은 약손인지, 약을 써도 아프다고만 하던 아이가 씻은 듯이 나은 모습에 고맙기도 하고, 다행스러움을 크게 느꼈다. 동시에 나 한테 엄마가 이렇게 해 줬었는데 하는 그리움도 느꼈다. 그때도 엄마의 손은 만능 약손이라 어떤 병도 낫게 하곤 했는데, 지금 나의 손이 아이를 낳게 하는 손이 되었나 보다.
문득 한국에 계신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난 유독 복통이 잦아 엄마는 약손으로 내 배를 문지르며 밤을 지새우곤 하셨는데. 그때 엄마의 간절함 크기는 어땠을까? 그때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걱정스럽고 괴로웠을까? 이제서야 보이는 것들이 아쉽기만 하다. 늘 다짐하듯, 오늘도 다짐한다. 더 자주 연락 드리고 찾아봬야지. 지켜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면 또 다짐하고 또 다짐하리라. 엄마의 약손에 감사함을 전하지 못한 걸 반성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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