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 중독 확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면서, 펜타닐 원료의 최대 생산·수출국인 중국과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청나라)은 19세기 영국이 시작한 아편전쟁의 피해자였는데 이제는 미국으로 밀반입되는 마약성 진통제의 원료를 제공, 21세기판 ‘아편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펜타닐은 원래 고통이 극심한 암 환자 등에게 극소량 투약하는 초강력 진통제다. 중독성은 헤로인의 50배, 모르핀의 100배다. 미국에선 최근 10년 새 유통량이 꾸준히 늘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엔 폭증세다. 마약성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인한 미국의 사망자는 2019년 5만여 명에서 2020년 7만여 명으로 1년새 약 30% 늘었다. 2021년엔 10만7600여 명으로 다시 전년도보다 50% 늘었다. ‘7분에 1명씩 펜타닐 때문에 죽는다’고 할 정도다. 현재 18~49세 미 청년층의 사망 원인 1위는 코로나나 교통사고, 총격 사고 등을 제치고 펜타닐 중독이 차지한다. 팬데믹이 촉발한 경제난과 사회적 고립, 의료 서비스의 질 하락 등이 복합적으로 빚은 결과다.
이 때문에 요즘 미국은 펜타닐 중독·사망자 급증 소식으로 공포에 휩싸여있다. 청소년들이 소셜미디어로 쉽게 펜타닐을 구매하며 중독돼 치아가 녹고 좀비처럼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 핼러윈에 어린이들이 받는 사탕 바구니에 색색의 펜타닐이 들어가고, 농촌 주부들부터 월가 직장인까지 펜타닐인지도 모르고 손을 댔다가 중독됐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미국에 범람하는 펜타닐의 직접 생산자는 남부 국경을 맞댄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지만, 그 원료를 대는 건 중국이다. 중국 화학 기업들은 펜타닐 성분인 4-AP와 4-ANPP 등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해 멕시코로 실어 나른다. 중국·멕시코 펜타닐 동맹들은 미국 내 중국계 온라인 은행을 통해 가상 화폐 등으로 거래 대금을 주고받아 추적을 피한다. 미 마약단속국(DEA)은 지난 20일 올 들어 국경 지대 등에서 압수한 불법 펜타닐 분량이 총 4.5t이라며 “치사량이 불과 2㎎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성인 3억7900만명, 즉 미국 인구(3억3200만명)를 모두 죽이고도 남을 양”이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2018년부터 중국의 불법 펜타닐 원료 생산자들을 규제하기 위해 협력해왔다. 2019년 미·중 무역 협상 타결 전후 중국이 트럼프 정부의 비위를 맞출 당시엔 펜타닐 규제를 최고로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미·중 갈등이 고조되자 중국이 펜타닐 수출 규제의 고삐를 느슨하게 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4일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가 중국 공산당의 신장·위구르족 인권 탄압이나 대만 침공 우려 등을 제기할 때마다 미국 내 펜타닐 유통량이 급증하는 패턴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중국의 반발 속에 대만을 전격 방문한 후, 중국 측이 모든 펜타닐 규제 관련 회담 창구를 닫아버렸다고 미 당국자들은 WSJ에 말했다. 미국이 주미 중국대사관 등 여러 외교 경로를 통해 대화를 촉구했지만 중국이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1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후 양국 관계가 개선되는 듯 보였지만, 미국 내 펜타닐 불법 유입만큼은 줄지 않고 있다. 뉴욕·텍사스 검찰의 중국인 펜타닐 제조업자 수배령에도 중국은 협조하지 않고 있다. 유엔마약위원회는 지난 3월 규제 물질 목록에 4-AP를 추가했으나 회원국인 중국의 거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문제 제기에 “미국인들의 과도한 마약 의존이 문제인데 왜 남 탓을 하느냐”(중 외교부 대변인), “누가 타인을 칼로 찔러 죽였다면 (칼 원료인) 철광 생산이 불법인가”(중 펜타닐 원료 생산업체)라고 반박하고 있다. 중국은 미·중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막대한 이윤을 내는 펜타닐 원료 생산업체들을 크게 규제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외교 전문지 디플로맷은 “중국은 불법 마약 수출을 단속할 수 있는 수많은 수단을 갖고 있지만 방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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