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 캐나다 한국문협 회원
12월이 되면서 수선화 싹이 나왔다. 평평하던 땅이 소복하게 들려 있는 곳은 수선화 싹이 나온 곳이다. 낙엽을 헤치면 아직은 얼마 나오지 않아 세모꼴인 잎들이 무리 지어 솟아나고 있다. 크리스마스 로즈는 11월부터 줄기 분얼이 활발해져 12월 들어서도 새 줄기가 끊임없이 올라온다. 연두빛 새 잎들이 튼실한 줄기 사이에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은 언제 봐도 기특하다. 다른 나무와 꽃들이 모두 한 해를 마무리할 무렵, 매서운 추위가 목 전에 닥친 강파른 시기에 이 아이들의 한해살이가 시작된다.
일 년 내내 푸른 잎을 달고 있는 크리스마스 로즈지만 겨울 초입이 되면 생기가 돈다. 정원이 황갈색으로 스산해지면서 더욱 눈에 띈다. 올여름 집중 호우로 우리 마당이 잠시 침수되었을 때 수해를 입어서 이 아이들 중 많은 수가 녹아내리듯이 사라졌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꽃 중의 하나여서 참으로 속상했었다.
크리스마스 로즈는 개화 후 거의 3개월 이상 피어있어서 꽃을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2월 말에 우리 정원에서 가장 먼저 피기 시작해서 한여름이 되기 바로 전까지 계속 꽃을 달고 있다. 우리 집처럼 추운 지역에서 월동도 무난하고 개화 기간도 길고 그다지 손도 타지 않아서 정원에서 키우기엔 최고의 꽃이다. 이 아이들 중 반 이상이 갈색으로 변해 죽어갔다. 생명력이 강해서 뿌리는 살아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섞인 기대를 품었는데 죽은 자리에서 다시 싹이 나지 않는다. 다만 그 옆에서 아주 조그만 새싹들이 여기저기 돋아나고 있었다. 땅속에 있던 씨앗들이 발아한 모양이다. 십여 년 키우는 동안 씨가 발아한 것은 본 적이 없고 주로 줄기가 분얼하여 번식했다. 식물체가 무성할 때는 햇빛을 받지 못해 발아하지 않다가 햇빛 가리개가 없어지니 발아 하기 맞춤한 환경이 되었나 보다. 식물체가 죽은 자리에서 생명을 이어가고자 작은 새싹들이 애쓰고 있다. 예기치 않게 나타난 이 싹들을 보자니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그득 찬다.
겨울이 되며 휑해진 마당에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크리스마스 로즈와 수선화, 튤립 같은 추식구근류이다. 겨울이면 이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여느 해마다 즐거운 일이었지만 요즘 힘든 시기를 보내는 나에게 더 각별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식물을 워낙 좋아하여 2년 전 농학 공부를 새로이 시작했다. 나이 들어 새로운 영역의 공부를 하려니 머리를 쓰는 것도 만만치 않고 체력도 턱없이 부족하여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생긴 게 불안증이다. 과제물을 작성하거나 시험 준비를 하다 보면 ‘내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결국 해내지 못하고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과 걱정이 한껏 달려든다. 그렇찮아도 힘든데 불안감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꾸준히 하다 보면 다 할 수 있는 일이고, 못할 것도 없다고 스스로 타일러도 마음은 생각대로 잘 따라주지 않고 제멋대로 불안을 키웠다.
맵찬 기운이 스며드는 겨울 아침에 정원에 나가면 보잘것없는 작은 새싹들이 시선을 오래도록 끌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머리가 하얘지듯 생각이 비워지고 마음도 그렇게 맑아진다. 살고자 애쓰는 새싹들의 진심이 이심전심 전해진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혼자 다짐하고 노력하는 것도 도움이 안되는 건 아니겠지만 내 마음에는 이 말없이 전해지는 진심이 더 큰 약인 것 같다. 이 약의 효과는 누그러짐이다. 날카롭고 뾰족해서 안절 부절 하던 마음이 나도 모르게 누그러지고 있었다.
얼마 전 사극을 보다가 인자불우(仁者不憂) 지자불혹(知者不惑) 용자불구(勇者不懼)를 논하는 대사가 귀에 들어왔다. 논어의 <헌문>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는 미혹되지 않고 용감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질지 못하다는 것은 욕심이 많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빨리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과 조바심이 불안을 불러온다는 통찰이다. 정곡을 찌르는 단순한 해답이 고전의 힘이다. 그런 해답을 들으며 몸의 힘이 슥 풀렸다. 그 말을 듣는 것 만으로 마음이 지옥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병의 원인을 아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가 된 것이다. 어쩌면 바른 답이 있다는 것 만으로 마음의 위로가 되었을지 모른다. 마침 자라던 새싹들이 위로를 주고, 우연히 만난 논어는 몸과 마음의 긴장을 다 풀어주었다. 마음의 지옥을 겪는 사람에게 어느 우연이 말없이 가닿을까. 시련을 겪는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위로가 닿았으면 좋겠다. 나는 생각지 않은 도움을 받으며 이달에 2년 간의 공부 과정을 모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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