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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왔구나” 死地 탈출 튀르키예인들과 한국 교민 극적 상봉

아다나(튀르키예)=정철환 특파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23-02-11 13:57

9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지진 피해 교민들이 따뜻한 밥과 국, 김치를 나누고 있다./정철환 특파원
9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지진 피해 교민들이 따뜻한 밥과 국, 김치를 나누고 있다./정철환 특파원

“살아왔구나!”

9일 오후 7시(현지 시각)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 외곽의 호텔 크로노스.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교민 조미선(38)씨가 자동차 소리가 들리자 부리나케 뛰쳐나갔다. 규모 7.8 강진이 남부 지역을 강타한 뒤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애태웠던 튀르키예인 친구 야으무르씨였다. 10시간에 걸친 대장정 끝에 남편, 어린 아들과 함께 피난처인 호텔에 무사히 도착한 것이다.

두 사람은 눈발이 휘날리는 호텔 입구에서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지켜보던 교민들이 “정말 다행”이라며 이들의 등을 다독였다. 야으무르씨는 이번 지진의 진앙(震央)인 카라만마라슈에서, 조씨는 다른 교민 9가구 25명과 함께 지진 피해가 심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아다나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조씨는 야으무르씨 아들을 번쩍 안고 따뜻한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 수만명의 생명이 한 순간에 스러져 간 비극의 현장이지만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은 인간애가 빛을 발하고 있다.

6일 새벽 아다나의 한국 교민들은 말 그대로 땅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과 진동에 잠을 깨 잠옷 바람으로 뛰쳐나왔다. 노숙으로 하루를 보내고, 성한 차량을 몇 대를 모아 7일 아다나를 탈출했다. 이들은 크로노스 호텔에 임시 피난처를 차렸지만, 피해 현장에 남아있을 튀르키예인 친구와 이웃들의 안위가 걱정돼 맘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조씨는 “(진앙지인) 카라만마라슈에 살던 친구 야으무르의 생사가 너무도 걱정이 됐다”며 “천만다행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친구가 살아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하지만 붕괴된 건물 속에서 수많은 친척과 이웃이 목숨을 잃은 참상을 목격한 야으무르씨는 “살아도 산 게 아니다, 나도 곧 죽을 것”이라며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조씨는 “다른 생각 말고 일단 내가 있는 크로노스 호텔에서 만나자”며 설득했다. 애타는 친구의 호소가 실의에 빠진 야으무르씨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남편과 용케 차량과 연료를 구했고, 6명의 다른 가족과 함께 카라만마라슈를 떠났다.

9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앙카라에 위치한 호텔 크로노스에서 사지를 빠져나온 한국인과 튀르키예인들이 상봉하고 있다./정철환 특파원
9일(현지 시각) 튀르키예 앙카라에 위치한 호텔 크로노스에서 사지를 빠져나온 한국인과 튀르키예인들이 상봉하고 있다./정철환 특파원

아다나의 한국인들이 앙카라로 피신할 수 있었던 데는 이곳 교민들의 지원이 있었다. 김영근(55) 아다나한국문화센터 원장은 “옷가지 하나 챙기지 못하고 맨몸으로 겨우 빠져나온 우리를 위해 앙카라에서 (교민들이) 속옷과 양말, 외투 등을 앞다퉈 건넸다”고 했다.

이날 저녁 한국과 튀르키예 피난민들은 앙카라 교민들이 마련한 조촐한 저녁 밥상을 받았다. 따뜻한 밥과 국을 꾹꾹 삼키며 이들은 동포애를 새삼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름 밝히기를 사양한 한 교민은 “동포끼리 돕는 게 당연하지 그게 무슨 대수냐”라며 밥을 더 담아줬다. “이럴 때일수록 든든하게 먹고 다시 힘과 용기를 내야 하지 않겠어요.”

호텔 크로노스의 한국인들은 10일 아침 사흘간의 피난 생활을 마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어머니들과 아이들은 이스탄불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고, 남자 어른들은 다시 아다나로 돌아간다. 현재 아다나와 카라만마라슈, 가지안테프, 안타키아 등 주요 지진 피해 도시는 현재 크고 작은 여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수도와 난방이 끊겼고 전기 사정도 좋지 못하다. 기둥과 벽에 쩍쩍 금이 간 아다나의 집은 붕괴 위험이 커서 들어갈 수 없다. 물과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김 원장은 “절망에 빠져 있을 이웃들이 눈에 밟혀 어쩔 수 없다”며 돌아가겠다고 했다. “가서 도와야죠. 어떻게든 도울 방법을 찾아야죠. 함께 부대끼며 살아온 이웃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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